할리우드 영화 ‘오디세이’가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 인기를 끄는 가운데 요즘 섬나라 영국 국민의 관심은 프랑스에서 출발해 바다를 건너온 11세기의 예술 작품에 쏠린다. 노르만족의 잉글랜드 정복 과정을 기록한 일명 ‘바이외(Bayeux) 태피스트리’가 오는 10일(현지시간)부터 런던 영국박물관에서 대중에게 공개되기 때문이다. 거의 1000년 전에 만들어진 이 태피스트리는 프랑스의 국보이자 유네스코 지정 세계유산이다.
7일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영국박물관의 바이외 태피스트리 특별 전시회 개막을 앞두고 영국인들의 관심이 치솟고 있다. 성인은 33파운드(약 6만원), 16∼18세 학생은 25파운드(약 4만5000원)의 비싼 입장료를 내야 하지만 올해 12월 말까지 이용이 가능한 티켓은 발매 개시 이후 불과 몇 시간 만에 매진됐다. 이를 통해 영국박물관 측이 올린 매출액만 250만파운드(약 45억5000만원)에 달한다. 오는 2027년 1월1일부터 3월31일까지 쓸 수 있는 입장권 예매는 10월 중순에야 시작된다.
바이외 태피스트리가 무엇이길래 이토록 영국인의 훙미를 끄는 걸까. 11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섬나라 영국은 세계는 물론 유럽에서도 변방에 불과했다. 그런데 프랑스 노르망디 지역에 정착해 살고 있던 노르만족이 1066년 바다 건너 영국에 상륙해 오늘날의 잉글랜드 지역을 점령했다. 당시 프랑스 귀족 신분이던 노르만족 지도자는 스스로 잉글랜드 국왕으로 즉위해 1087년 사망할 때까지 통치했다. 오늘날 흔히 ‘정복왕(Conqueror) 윌리엄’으로 불리는 윌리엄 1세가 그 주인공이다.
이는 잉글랜드, 더 나아가 영국 역사의 서막을 연 결정적 사건으로 평가된다. 윌리엄 1세는 잉글랜드 국왕인 동시에 프랑스 국왕의 신하이기도 했다. 그 때문에 훗날 잉글랜드와 프랑스 간에 이른바 ‘백년전쟁’(1337∼1453)이 발발했다. 이 전쟁이 최종적으로 프랑스 승리로 끝나며 잉글랜드(영국)와 프랑스는 완전히 별개 국가가 되었다.
1066년 윌리엄 1세의 잉글랜드 정복 모습을 섬세한 자수(刺繡)로 기록한 것이 바로 바이외 태피스트리다. 세로 길이는 50㎝에 불과한 반면 가로는 무려 70m에 달한다. 프랑스 노르망디 해안가의 소도시 바이외의 한 성당에 오랫동안 보관돼 지금의 이름이 붙었다. 영국 역사학자들은 이 태피스트리가 윌리엄 1세의 잉글랜드 정복을 기리는 의미에서 약 950년 전인 11세기 후반 제작된 것으로 추정한다. 잉글랜드에서 만들어진 뒤 당시만 해도 윌리엄 1세의 영지 일부이던 노르망디로 옮겨졌다는 것이다.
영국사의 가장 중요한 장면이 담긴 귀중한 사료임에도 바이외 태피스트리가 영국에서 전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영국 언론이 ‘1000년 만의 귀환’ 등 표현을 써 가며 연일 대서특필하는 이유다. 프랑스가 이 국가유산을 영국박물관에 대여하는 결단을 내린 것은 에마뉘엘 마크롱 현 대통령 임기 동안 프랑스·영국 관계가 크게 개선된 결과로 풀이된다. 마크롱 부부는 최근 런던을 방문해 찰스 3세 영국 국왕 부부, 앤디 버넘 총리 부부 등과 함께 태피스트리를 감상하며 두 나라의 오랜 우정을 강조했다.
영국박물관의 바이외 태피스트리 특별 전시회는 오는 2027년 7월11월까지 약 10개월간 계속된다. 박물관 측은 “귀중한 역사 기록이자 뛰어난 예술 작품”이라며 제한된 기간 안에 영국인 모두가 관람할 것을 강력히 권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