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내가 나무문이 되어 서 있을게. 긴 겨울과 긴 여름과 긴 장마를 겪고, 끼익 끼익, 어딘가 꺼림칙하고 불길한 소리를 내는……” (‘메리를 위하여’ 부분)
일곱 번째 시집 ‘무서운 이야기’(문학과지성사)를 펴낸 시인 김행숙(56)은 시집의 첫머리에서 영국 소설가 메리 셸리(1797~1851)를 불러낸다. 1816년 여름, 셸리는 스위스 제네바 호숫가에 머물렀다. 인도네시아 탐보라 화산 대폭발 영향으로 유럽 전역이 이상기후에 시달리던 때였다. 연일 이어지는 비 때문에 줄곧 실내에 머물던 셸리 일행은 각자 무서운 이야기를 지어보자는 내기를 벌였고, 그 결과 탄생한 작품이 ‘프랑켄슈타인’이다.
8일 서면으로 만난 김행숙은 시집의 문을 여는 인물로 메리 셸리와 괴물을 선택한 데 대해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은 인간이 만들어냈지만 책임지지 않은 존재”라며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도 그런 것들이 너무 많다”고 했다. “인공지능(AI)과 전쟁이 그렇고, 폭염과 산불이 그렇고, 세계 곳곳의 재난이 그렇다. 버림받은 괴물의 말을 정말 잘 들어봐야 한다. 이제는 거꾸로 인간이 괴물에게 버림받는 세계가 도래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태도가 시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서면 인터뷰 답변에서조차 김행숙은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라는 심정을 전한 뒤 괄호 안에 그와 동일한 제목의 소설집(2025, 문학과지성사)을 발표한 작가 공현진의 이름을 덧붙였다. 자신의 감정을 말하는 순간에도 ‘나’ 안에 섞여 있는 타인의 목소리를 드러낸 셈이다.
왜 이렇게 많은 목소리를 시 안으로 데려오는 걸까. 시인은 “혼자 글을 썼다고 생각하는 것은 언제나 착각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라고 답했다. 이어 “나의 말, 생각, 문장, 꿈, 그 어떤 것도 오롯이 내 것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며 “내게 시적인 상태는 언제나 더 많은 목소리들이 내 몸과 감각을 사용한다는 느낌 속에 있다”고 했다.
책에는 프랑켄슈타인, 피노키오, 시지프스 같은 오래된 이야기들이 새로운 판본으로 되살아난다. 왜 이런 변주를 택했을까. 시인은 “오래된 이야기라면 다르게 읽히고 다르게 기억된 수많은 판본들이 보이지 않는 형태로 존재한다”고 운을 뗐다. “그 이야기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꿈속을 다녀갔겠어요. 오래된 이야기를 건너다닌 숱한 이야기의 유령들은 엉뚱한 길목에서 나를 통과하기도 하겠죠. 그런 순간에 붙들리면 오래된 이야기는 처음 보는 사람처럼 낯설고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얼굴을 꺼내놓기도 합니다.”
시집 3부에는 노년과 돌봄, 가족과 상실을 둘러싼 사유가 두드러진다. 시인은 지난해 아버지를 여의었고, 어머니 역시 병상에 누워 있다. 시편 ‘나의 길’ 속 “젊은 엄마와/늙은 엄마와 죽은 엄마가 마구 구겨져 있었”다는 구절은 이러한 시간을 통과한 사람만이 쓸 수 있는 문장으로 읽힌다.
시인 자신 역시 한동안 아파서 일상이 무너진 나날을 겪었다. 그는 이 모든 경험이 “당연히 시와 시쓰기에 영향을 미쳤다”며 “언젠가부터 삶에서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 쪽에서 삶을 바라보는 눈 한 짝을 가지게 된 것 같다”고 답했다. 이어 “먹는 것, 잠드는 것, 잠에서 깨는 것, 걷는 것, 손을 움직이는 것. 그런 작은 일들이 죽음의 자리에서 보면 너무 놀랍고 기적적인 것이었다”고 했다.
돌아보면 2003년 첫 시집 ‘사춘기’(문학과지성사)를 비롯한 초기작에서 김행숙의 시는 평론가들에게 종종 ‘비인칭’ ‘탈주체’ ‘난해’ 등 키워드로 읽혔다. 일군의 시인들과 함께 ‘미래파의 전위’로 묶였고, 그래서인지 김행숙 시의 감각과 환상은 현실과 무관한 특징으로 이해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 시집에는 기후와 재난, 돌봄과 상실, 정치적 파국 같은 현실의 문제가 그 어느 때보다 두드러진다. 김행숙의 시 세계가 점점 현실 쪽으로 밀착해 가는 것일까? 도식적인 ‘우문’에 시인은 ‘현실’의 진의부터 다시 묻는 ‘현답’을 보내왔다.
“현실 아닌 것이 거의 없다고, 다시 말해 ‘한 개를 보고 아흔아홉 개를 못 보는 것’이 현실이라고 생각하는 쪽”이라고. “현실은 보기에 따라 택배 상자처럼 작아질 수도 있고 우주처럼 무한해질 수도 있다”고 말이다. 그는 “변화가 있었다면, ‘못 보는 아흔아홉 개’보다 우리 모두가 보고 있는 ‘한 개’ 안에서 못 보는 것들을 살피려는 마음이 더 커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시편 ‘서울, 2049년 겨울’에서 시인은 미래 세대를 향한 사랑의 편지를 띄운다. “내일을 기다리지 않는 아이에게/죽은 사람을 질투하는 아이에게/내가 사랑하는 아이에게/쓰게 될 편지를/지금 쓴다.” 재난에 대한 공포는 아직 오지 않은 시간에 대한 상상으로 이어진다. 시인이 끝내 마음을 두는 곳은 자신 이후의 시간을 살아갈 존재들이다. “‘이후의 시간’에 대한 근심은 내가 살아 있지 않을 시간을 살아갈 미래의 존재들에게 연결됩니다. 살아 있지 않을 시간을 사랑하는 일도 살아 있을 때만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