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1일(현지시간) 문재인 당시 대통령은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차 아르헨티나를 방문해 시릴 라마포사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과 회담했다. 문 대통령은 라마포사 대통령에게 남북한 긴장 해소와 한반도 비핵화를 목표로 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대한 지속적인 지지를 당부하며 “남아공은 역내 안정과 평화를 위해 자발적으로 핵개발 프로그램을 폐기한 경험이 있는 만큼 비핵화 과정에 있는 북한에게 좋은 모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독자적으로 핵무기를 개발·보유했다가 자발적으로 폐기하고, 국제사회의 검증을 거쳐 비핵화를 완료한 유일한 국가가 남아공임을 상기하며 협조를 당부한 것이다.
그러나 비핵화를 위한 우리 정부의 노력에도 약 8년이 지난 지금 북한의 핵능력은 당시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고도화됐다. 국제정세도 크게 달라졌다. 남아공식 비핵화 과정을 북한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단 얘기다. 그럼에도 남아공 사례는 북한의 핵 동결과 비핵화를 유인하기 위한 조건과 경로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유효한 시사점을 준다.
◆‘안보불안’·‘국제고립’, 핵 개발·포기 계기
남아공이 1970년대 중반 본격적인 핵무기 개발에 나섰다. 두 가지가 배경이 됐다.
하나는 당시 인종차별·분리정책(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으로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으면서 고립이 심화되며 안보 우려를 키운 것이다. 1977년에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418호에 따른 의무적 무기금수 조치가 시행되면서 재래식 무기 확보에도 제약을 받게 됐다.
다른 하나는 냉전 구도 속에서 진행된 주변국의 정세 변화다. 앙골라 내전이 격화된 것이 특히 컸다. 1975년 앙골라 독립을 전후해 소련의 군사 지원과 쿠바의 대규모 병력 파견이 본격화하면서 앙골라 내전은 미국, 소련을 비롯한 강대국과 주변국이 개입하는 냉전의 대리전 성격을 띠게 됐다. 남아공은 소련·쿠바의 개입과 주변국의 공산권 영향력 확대를 자국에 대한 군사적 위협으로 받아들였다.
국제제재에 따라 재래식 전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대외적인 안보 위협 요인이 커지자 남아공은 독자적인 전략적 억제수단의 필요성을 인식했다. 이런 고민의 결론이 핵무기 개발이었다. 남아공은 1980년대 후반까지 핵무기 6기를 완성했고 7번째 핵무기 제작에 필요한 무기급 고농축우라늄(HEU)도 확보한 상태였다.
그러나 이즈음 상황이 급변했다. 1988년 남아공·앙골라·쿠바 간 협정을 계기로 쿠바군 철수가 시작됐다. 냉전 종식과 함께 소련, 쿠바의 영향력도 약화됐다. 남아공 국내적으로는 1989년 프레데리크 빌렘 데클레르크 당시 대통령이 아파르트헤이트 개혁에 착수하면서 정치적 환경이 바뀌었다. 핵무기 프로그램을 폐기하기로 결정했고 1990년부터 핵무기 해체와 관련 시설·핵물질 정리 작업에 들어갔다. 남아공은 1991년 7월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한 뒤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안전조치협정을 체결하고 사찰과 검증을 받았다. 이후 IAEA는 남아공의 핵물질과 과거 핵무기 프로그램을 검증해 핵무기 프로그램이 완전히 종료·폐기됐음을 확인했다.
◆북·남아공, 무엇이 다른가
남아공의 핵개발과 이후의 비핵화 경험을 북한에 그대로 대입하기는 어렵다. 목적, 핵무기에 부여한 전략적 가치, 안보환경 등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1993년 데클레르크 당시 남아공 대통령은 의회 연설에서 핵무기 프로그램과 핵무기 6기 완성 사실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그는 남아공이 핵무기를 실전용이 아닌 ‘정치적 억제수단’으로 개발했다고 밝혔다. 아파르트헤이트로 인해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상황에서 외부 침공을 받을 경우, 핵보유 사실을 공개해 미국 등 서방의 군사·외교적 개입을 유도하려는 목적이었단 것이다. 억지에 필요한 최소 수량(7기) 중 6기를 제작한 후 안보위협이 완화하자 마지막 7번째를 개발하던 단계에서 자발적 폐기를 결정한 배경이다. 데클레르크 대통령은 연설에서 “남아공의 NPT 가입은 미국이 남아공에 부과했던 핵 관련 제재를 해제하는 결과를 가져왔다”며 “국제적 협력과 신뢰라는 새로운 장을 열 수 있을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반면 북한에게 핵무기란 체제 보장과 한·미의 군사적 우위 상쇄를 위한 핵심적인 전략 수단이다. 북한은 핵무력 정책을 헌법에 명기하고 핵보유국 지위를 사실상 불가역적인 것으로 규정하며 핵무력 강화 의지를 분명히 했다. 데클레르크 전 대통령 역시 이 차이를 지적했다. 그는 2018년 7월 미국의소리(VOA)와의 인터뷰에서 “전체주의 독재자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최우선 관심사는 세습 통치를 유지하는 것이고 핵무기를 이 과정에서 중요한 협상 카드로 여기고 있다”며 “정권에 대한 위협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확신이 없으면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남아공이 개발을 완료한 핵무기 수는 6기였던 데 비해 국방부와 국내외 연구기관들은 북한이 약 57기에서 많게는 120기 이상의 핵무기를 보유하거나 제조할 수 있는 핵물질·시설 능력을 갖춘 것으로 추정한다.
안보환경도 정반대다. 남아공은 냉전 종식과 함께 안보불안이 해소됐지만, 북한은 미·중 경쟁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신냉전 구도가 굳어지는 환경에 놓여 있다. 진영 간 대립 격화로 지정학적 몸값이 뛴 북한은 중·러와의 밀착을 강화하고 있다. 중국과의 교역 회복과 대러 무기 지원 및 파병을 대가로 막대한 자금·물자가 유입되면서, ‘하노이 노딜’ 전후 강력했던 대북 제재의 실질적 압박 효과도 크게 떨어졌다. 북한 입장에선 대미 관계 개선이나 제재 해제를 대가로 핵을 포기할 유인이 과거보다 현저히 낮아진 셈이다.
전봉근 국립외교원 명예교수는 지난달 19일 국가안보전략연구원(INSS) 주최로 열린 NK포럼에서 “한국 비핵화 외교의 참조 모델이 되었던 우크라이나, 남아공, 아르헨티나-브라질, 리비아 등의 비핵화 사례는 모두 탈냉전기에 들어 안보 위기가 해소되고 뒤이은 정권 교체와 체제 변혁의 결과로 핵포기를 추진한 사례”라며 “반면 북한의 경우 탈냉전기 시대 들어 체제위기와 경제위기가 악화되고, 핵보유 동기가 오히려 강화됐다”고 설명했다.
◆“핵개발 중단 환경 만들어야”
남아공의 핵개발은 국제적 고립과 주변국의 군사적 위협이 맞물려 발생한 전형적인 ‘안보 딜레마’의 결과다. 그리고 비핵화는 핵 보유·고도화의 안보적 명분이 약화해야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북·미 대화의 입구에서 북한이 수용할 만한 파격적인 경제적 상응조치 마련이 어려운 현실을 감안하면, 북한 스스로 핵 질주를 멈추도록 유도하는 방안도 해법으로 거론된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미 연합훈련 규모 축소를 지시한 것 역시 북한의 안보 불안을 덜어 대화 국면을 열기 위한 군사적 긴장 완화 조치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김정섭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지난달 19일 INSS 주최 포럼에서 “북한이 핵탄두를 증강하고 다양한 미사일을 개발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핵전력의 생존성과 2차 보복능력을 확보해 핵억제의 신뢰성을 높이려는 노력으로 볼 수 있다”며 “그것이 충분히 담보됐다고 판단한다면 외부의 압박이나 별도의 유인이 없이도 핵무력 고도화 속도와 강도가 낮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김 위원은 “북핵 중단을 유도하기 위해 정치·경제·보건 등 분야에서 다양한 유인 조치를 검토하면서 북한 스스로 북핵 중단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군사적 여건을 조성해 가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제시한 군사적 여건 조성 조치는 △미사일 방어에 대한 전략적 재설계 △확장억제의 내용적 측면의 조율 심화 △ 9·19 군사합의 선제적 복원 검토 등이다. 북한의 미사일을 모두 막는 데 초점을 맞추기보다 핵심 자산에 대한 방호와 확실한 응징 능력을 갖춰 상호 군비경쟁을 억제하고, 한·미 확장억제 역시 대규모 전략자산 전개 같은 무력시위보다 실제 대응 절차에 대한 공조를 강화해야 한다는 취지다.
황지환 서울시립대 교수도 “단기적으로 북한은 협상을 통해 ‘안전보장’을 얻고, 한·미는 ‘핵위험 감소’를 얻는 구조로 프레임해 북한 핵능력의 추가 고도화를 단기적으로 차단하고, 중장기적으로는 축소와 폐기의 협상으로 연결하는 경로 제시가 필요하다”며 “비핵화가 먼저냐, 안전보장이 먼저냐의 이분법적 딜레마를 넘어 단계적·동시적 프레임으로 장기적 한반도 평화 로드맵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