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 눈] 용산공원 개발 논란에 부쳐

120년 넘어 시민 품에 돌아왔건만
서울 주택 공급난에 후보지 부상
생태·평화·역사 공원 가치 지켜내
미래 세대에 소중한 자산 남겨야

열흘 전 점심시간에 ‘용산어린이정원’을 찾았다. 일터에서 가까운데도 바빠서, 때론 게을러서 눈에만 담아둔 곳이다. 그날 끼니도 거른 채 가보기로 마음먹은 건 용산공원 조성 부지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부동산 민심 악화에 몸이 단 정부가 서울의 주택 공급난 해소책의 하나로 용산공원 부지를 점찍으면서다.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달 14일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용산공원 내 일부를 주택공급지로 활용하겠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힌 게 불을 댕겼다. 서울시는 곧바로 “서울의 마지막 대규모 녹지이자 미래 세대에게 온전히 물려줘야 할 소중한 자산인 용산공원을 훼손하면 안 된다”며 반발했고 용산공원 개발 논란이 들불처럼 번졌다.

이강은 산업부장

정부와 더불어민주당 등 여권은 군인아파트와 옛 방위사업청 부지, 어린이정원 일부 등 용산공원 내 ‘녹지 기능을 상실한 곳’에 청년·신혼부부용 공공임대주택을 짓자는 쪽이다. 이를 위해 2007년 노무현정부 시절 제정된 용산공원조성특별법도 고치려 한다. 특별법이 반환될 미군 기지 부지 전체를 국가공원으로만 조성하도록 해놨기 때문이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이 법을 방패로 삼아 “용산공원 본체 훼손은 1cm라도 동의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거리를 5분 남짓 걷자 어린이정원이 나타났다. 주출입구 주변에 근조화환 수십 개가 엄숙하게 서 있었다. 화환 리본마다 ‘미래 세대를 위한 푸른 숲을 해치지 말라’, ‘국가의 책임하에 공원으로 조성하도록 약속한 땅이다’ 등 용산공원 개발을 반대하는 구호가 선명했다.

 

어린이정원(약 30만㎡)은 먼저 돌려받은 주한미군 부지를 정비해 2023년 5월부터 시민에게 임시 개방한 곳이다. 전체 용산공원 조성 예정 부지(약 300만㎡)의 10분의 1 정도를 차지한다. 초입에 자리한 홍보관부터 들렀다. 1882년 임오군란을 계기로 청나라 군대가 주둔한 이후 일제강점기에 일본군 기지를 거쳐, 해방 후 주한미군이 꿰찼던, 우리 품에 돌아오기까지 120년 넘게 걸린 용산공원 일대의 아픈 역사가 펼쳐져 있었다.

 

홍보관을 나와 정갈하게 정돈된 거리를 걸으며 이색적이고 흥미로운 공간들을 살피는 재미가 쏠쏠했다. 푸르름을 한가득 머금은 ‘잔디마당’을 지나 ‘전망언덕’에 오르니 도심에선 보기 힘든 장관이 한눈에 들어왔다. 전망언덕만 해도 함박꽃나무와 라일락, 철쭉, 조팝나무 등 15가지 식물이 심어져 야외식물원을 방불케 했다. 옥에 티라면 자태가 빼어난 소나무 아래 세워진 비석이다. 불법 계엄으로 탄핵당한 대통령 부부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한사코 청와대를 거부하고 용산으로 간 이들은 어린이정원 개방을 기념해 이 소나무를 심었다.)

 

인근 분수정원에서는 물놀이에 흠뻑 빠진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싱그러웠다. 다양한 국적의 부모가 어린 자녀들과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중이었다. 요즘 인기가 한창인 국립중앙박물관(국중박)도 공원과 잘 어울리는 위용을 자랑했다.

 

들꽃산책로를 따라 돌아오는 길에 공원 여기저기 고층 아파트가 들어선 모습을 그려봤다. 공공주택이라 해도 최대 공급 효과를 누리려면 고밀 개발이 불가피해서다.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용산공원은 단순한 녹지공원이 아니라 ‘생태·역사공원’이자 치유와 회복의 의미를 담은 ‘평화공원’으로서 의미가 대단해서다. 공원 개발 논란에 남산마저 한숨짓는 듯했다.

 

부동산 안정과 주택 공급난 숨통을 틔우고자 한시가 급한 정부 여당의 심정은 이해한다. 그래도 성급하게 용산공원 부지를 건드렸다가 국가·사회적으로 득보다 실이 많을까봐 걱정스럽다. 오히려 잘 가꾸고 보존해 내외국인이 즐겨 찾는 세계적 명소로 조성했으면 좋겠다. 우리 역사와 문화, 자연이 어우러진 공원 말이다.

 

20년 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용산기지 공원화 선포식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침략과 지배, 전쟁과 고난의 역사를 과거로 보내고, 자주와 평화의 대한민국, 세계를 향해 비상하는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기념비적 공원이 들어서게 될 것입니다. 용산공원은 지금 세대만이 아니라 미래 세대들에게도 소중한 자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