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 스위스 바젤. 도심에서 마주한 노면전차(트램)는 불편하기 이를 데 없었다. ‘제45회 아트 바젤’을 취재하기 위해 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다 우연히 마주한 이 열차는 귀엽고 아담한 유년기 장난감 열차를 떠올리게 했다. 유럽의 이색 교통수단이기에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주저하지 않고 탑승했다.
결과는 낙제점(落第點). 제대로 환기가 되지 않았고, 에어컨이나 선풍기도 없어 ‘성격 급한’ 한국인이라면 실내에 10여분 머무르기도 힘들었다. 34개국 285곳 화랑들이 파울로 피카소의 대형 인물화 등 4000여점의 작품을 내놓은 전시관 안과 달리 밖은 벌써 초여름 날씨였기 때문이다.
당시 경험을 계기로 국내에 트램 도입이 논의될 때마다 일단 고개부터 가로저었다. 탑승했던 트램이 수십 년 전 도입돼 낙후된 교통수단이라는 사실을 안 건 얼마 전 일이다. 이미 유럽 현지에서 무궤도 트램 등이 자리잡은 뒤였다.
◆스위스 바젤에서 첫 만남…구형 트램은 낙제점
수년째 공회전을 해오던 수도권 노면전차 사업이 동탄과 위례신도시를 중심으로 실타래를 풀기 시작했다. 반면 경기 수원, 성남, 부천 등 도내 다수 지자체의 트램 사업은 여전히 원자재 가격 폭등과 경제성 평가(B/C)의 벽을 넘지 못하고 사실상 중단 상태에 놓여 있다.
화성시는 최근 동탄 도시철도(동탄트램) 건설사인 DL이앤씨 컨소시엄이 1단계 기술제안서와 우선 시공분 실시설계도서를 제출함에 따라 오는 10월 계약 절차를 마치고 연내 우선 시공분 착공에 들어간다고 8일 밝혔다. 동탄트램 1단계 구간은 망포역~동탄역~방교동, 병점역~동탄역~차량기지를 잇는 총연장 31.55㎞ 구간으로, 총사업비 6932억원이 투입된다.
당초 2028년 개통을 목표로 추진됐던 동탄트램은 자재비 폭등과 수익성 악화로 6차례나 유찰되는 고초를 겪었다. 화성시가 지장물 이설 비용을 부담하고 공사비를 증액하는 등 사업 구조를 현실화한 끝에 수의계약 발판을 마련, 2031년 12월 준공을 목표로 본궤도에 오르게 됐다. 실시설계와 공사를 통합 수행하는 패스트트랙 방식으로 진행되면 총 공사 기간은 1590일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된다.
◆동탄트램, 연내 착공·2031년 개통 목표
서울 마천역과 복정·남위례역을 잇는 국내 1호 무가선 트램 위례선(5.4㎞) 역시 서울시와 서울경찰청 간의 도로 지정 및 교통안전심의 이견이 최근 극적으로 타결됐다. 오는 12월 개통을 목표로 시험운행 등 막바지 검증 절차를 진행 중이다.
위례선 트램은 국내 최초로 도입되는 트램으로 서울시가 건설을 주도하고 있다. 마천역(5호선)을 출발해 복정역(수인분당선·8호선)과 남위례역(8호선)을 잇는 노면전차 노선이다. 공중전선 없이 차량 지붕에 탑재된 대용량 배터리로 운행하는 무가선 방식을 택했다.
노선이 지나는 경기도와 성남시 역시 교통안전심의 추진을 위해 성남시 구간의 트램 선로를 ‘시도(市道)’로 지정하기로 했다.
이처럼 동탄·위례 트램이 속도를 내고 있지만 도내 다른 지자체들의 트램 잔혹사는 이어지고 있다. 2019년 경기도 도시철도망 구축계획에 반영된 7개 트램 노선 중 상당수가 첫 삽조차 뜨지 못한 상태다. 수원 1호선은 사업비가 2000억원에서 3500억원으로 치솟으면서 10년 넘게 정체돼 있다.
수원시는 2013년 ‘경기도 10개년 철도기본 계획’에 1호선을 반영시켰으나 그동안 추진하지 못했다. 기존 계획에서 노선과 같은 세부 사안이 변경되지 않은 만큼 상황을 낙관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문제는 민간 투자 유치 등 자금이다. 추가 사업비 증가 가능성도 여전히 도사리고 있다.
시흥·부천·안산 등의 노선도 거의 동력을 상실했다. 시흥시는 기존 오이도 연결선의 경제성이 부족하다고 판단해 새로운 노선 추진으로 사업 방향을 전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천·안산 역시 다른 지자체와 비슷한 이유로 사업이 멈춰섰다.
◆곳곳에서 사업비 증가…“의지는 있지만 올스톱”
성남시의 경우 판교·모란트램이 ‘제2차 경기도 도시철도망 구축계획’에 포함되며 재개 의지를 다지고 있으나 경제성 확보 등 넘어야 할 산이 높다.
판교트램(성남도시철도2호선)은 금토동(수인분당선, 신분당선)과 정자역의 남북방향 본선과 운중동과 백현동을 동서로 연결하는 지선 등 총연장 16.86㎞ 트램이다.
사업비로는 6264억원이 잡혔다. 성남시는 당초 판교테크노밸리~판교역~정자역·운중동(13.7㎞)으로 이어지는 판교트램을 국가 재정사업으로 진행하기로 하고 예비타당성 조사를 받았으나 기존 철도의 경제성 분석방법을 트램에도 그대로 적용하면서 통과가 어렵다고 판단했다.
결국 2021년 2월 예타 조사를 철회한 뒤 동탄트램처럼 기획재정부 예타 조사를 거치지 않는 자체재원 조달방식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모란트램(성남도시철도1호선)은 판교역(신분당선, 경강선)과 상대원동 성남하이테크노밸리를 연결하는 트램으로 총연장 9.90㎞에 총 사업비는 3374억원이다. 2호선의 경우 예타를 신청했지만, 비용대비편익(B/C) 값이 1.0을 넘기 어렵다고 자체 판단해 결과 발표 전에 철회했다.
이들 지자체는 “트램은 도로를 점유하기에 차로 축소로 인해 경제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친환경 트램의 특성을 반영한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