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반 붕괴 시작해 급류로 전이 대홍수 초래… ‘복합재난’ 양상 기후변화로 산·빙하 균형 불안 지반 움직임 경고 신호 읽어야
지난 8월26일, 중국 국경과 맞닿은 네팔 북부의 계곡을 거대한 흙빛 물결이 덮쳤다. 마을과 도로, 교량과 수력발전소가 순식간에 파괴됐고, 수력발전소에서 일하던 한국인 근로자 9명도 실종됐다. 뉴스는 이 장면을 ‘네팔 대홍수’라고 전했다. 화면만 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그 물결의 정체를 끝까지 따라가면, 이 재난은 강에서 시작된 홍수라기보다 산에서 시작된 붕괴에 가깝다.
지반공학 관점에서 이 재난을 먼저 보는 것은 수위가 아니라 사면이다. 현재까지의 잠정 분석에 따르면 빙하를 포함한 고산 사면이 급격히 무너지면서 얼음과 암반이 수백m 아래 계곡으로 떨어졌다. 거대한 덩어리는 충돌하며 잘게 부서졌고, 일부 얼음은 녹아 물이 됐으며 계곡의 물과 오래 쌓인 흙, 자갈, 바위를 계속 끌어들였다. 처음에는 고체에 가까웠던 붕괴물이 아래로 갈수록 물과 토사가 뒤섞인 토석류로 변했고, 좁은 계곡을 따라 거의 100㎞를 이동했다.
김상엽 건국대학교 교수·소방방재융합학
일반적인 홍수에서 물은 흙과 돌을 운반한다. 그러나 이런 재난에서는 표현을 바꿔야 한다. 산을 이루던 흙과 돌, 얼음이 물의 유동성을 빌려 한꺼번에 움직인다. 맑은 물이 넘친 것이 아니라 ‘지반이 흐른’ 것이다. 따라서 하나의 재난 키워드를 고른다면 홍수보다 산사태, 더 정확히는 빙하·암반 붕괴가 토석류와 급류로 전이된 복합재난에 가깝다. 홍수는 피해가 나타난 마지막 모습이고, 산사태는 그 시작을 설명하는 말이다.
빙하 재난이라고 하면 흔히 빙하호 붕괴를 떠올린다. 녹은 빙하수가 골짜기에 고이고, 빙하가 밀어낸 흙과 돌인 퇴석이 자연댐을 만든다. 하지만 이 댐은 설계도 없고 충분히 다져지지도 않았으며 안전하게 물을 내보낼 여수로도 없다. 호수로 암석이나 얼음이 떨어져 큰 파도가 넘치거나, 불어난 물이 댐 표면을 깎기 시작하면 느슨한 흙과 돌은 순식간에 무너진다. 그러면 저류된 물은 토사를 품고 계곡 아래로 쏟아진다.
다만 이번 사고는 기존 빙하호의 댐이 먼저 터진 전형적인 빙하호 붕괴와는 순서가 달랐다는 점이 중요하다. 초기의 거대한 흐름은 빙하를 포함한 사면 붕괴가 직접 만들었고, 이후 쌓인 붕괴물이 하천을 막아 새로운 자연댐과 호수를 형성했다. 첫 번째 붕괴가 끝난 뒤에도 물은 그 뒤에 고이고, 임시댐이 다시 무너지면 두 번째 재난이 이어질 수 있었다. 산사태와 홍수는 따로 찾아오는 재난이 아니라 서로를 만들어내는 연쇄 과정이다.
이 차이는 단어의 문제가 아니라 관측과 대피의 문제다. 홍수로만 이해하면 비가 얼마나 왔는지, 하천 수위가 얼마나 높아졌는지를 본다. 산사태로 읽으면 빙하의 이동 속도와 균열, 암반 사면의 미세한 변형, 해빙수의 증가, 지진계가 감지한 비정상 진동, 계곡을 막은 토사의 높이까지 함께 살펴야 한다. 광학·레이더 위성과 고지대 카메라, 지상 센서와 하천 관측소를 연결하고 국경을 넘는 정보도 실시간으로 공유해야 한다. 경보가 확보하는 시간이 몇 분에 불과하더라도, 그 몇 분은 계곡 아래 사람에게는 생사의 거리다.
히말라야의 좁은 계곡은 사람과 재난을 같은 길로 안내한다. 평지가 귀한 산악 지역에서 마을과 도로, 수력발전소는 강을 따라 들어설 수밖에 없다. 그러나 생활을 가능하게 한 그 길이 산이 무너지는 순간에는 얼음과 바위, 토사를 빠르게 모아 보내는 통로가 된다. 재난은 자연현상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자연의 이동 경로 위에 누군가의 집과 일터가 놓일 때 비로소 우리의 재난이 된다.
이번 붕괴를 기후변화 하나로 곧바로 단정하는 것은 아직 이르다. 다만 기온 상승은 빙하를 얇게 만들고, 영구동토와 얼음이 붙잡고 있던 암반의 균형을 바꾸며, 고산지대에 더 많은 녹은 물을 남긴다. 기후변화가 매번 첫 번째 도미노를 직접 미는 것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수많은 도미노가 서 있는 바닥 자체를 조금씩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은 외면하기 어렵다. 이번 네팔 사례는 기후변화가 영원히 제자리에 있을 것 같던 산과 빙하의 균형마저 무너질 수 있는 시대에 들어섰음을 세계가 등골 서늘하게 체감한 장면이었다.
불어나는 강물로 재난을 알아보아서는 늦다.
지반이 흐르기 시작하는 첫 순간을 읽어낼 때, 계곡 아래 사람들에게 살아남을 시간을 돌려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