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들 중 하나가 ‘아편전쟁’(1839∼1842)이다. 이 전쟁에서 중국 청나라가 영국에 패하며 홍콩이 영국 식민지가 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청나라와의 무역에서 적자를 보던 영국은 아편 밀거래를 타개책으로 꺼내 들었다. 청나라 사람들한테 몰래 아편을 팔아 통상 과정에서 유출된 은화(銀貨)를 회수하려 한 것이다. 1838년 청나라 정부의 특명을 받은 임칙서(林則徐·린쩌쉬)가 영국 상인들로부터 아편 상자를 압수한 뒤 불태우자 영국 국내 여론이 악화했다. 그 시절 영국은 지금의 미국처럼 세계 최강국이자 패권국이었다. ‘이번 기회에 청나라를 응징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했다.
마침내 영국 해군이 ‘해결사’로 나섰다. 청나라 군대의 구식 대포로는 영국 전함의 철갑을 뚫을 수 없었다. 영국 해군이 청나라 앞바다를 장악한 가운데 이번에는 육군이 뭍에 상륙했다. 중국 남부의 대도시이자 경제 수도라고 할 난징(南京)이 함락 위기에 놓이자 청나라도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1842년 9월 체결된 난징 조약에 따라 청나라는 홍콩을 영국에 할양했다. 이는 세계의 중심을 자처하던 중국이 유럽 열강에 무릎을 꿇은 첫 사례로 기록됐다. 다만 아편 때문에 전쟁까지 일으킨 영국 제국주의의 ‘민낯’은 두고두고 지탄을 받았다. 오늘날에도 역사학자들은 아편 전쟁을 “인류 역사상 가장 더럽고 추악한 전쟁”이라고 부른다.
청나라가 망하기 직전인 1898년 영국과 청나라 간에 홍콩의 지위에 관한 새로운 조약이 성사됐다. 애초 홍콩은 영국 식민지나 다름없었는데, 새 조약은 ‘영국이 홍콩을 99년간 조차(租借)한다’고 규정했다. 다만 영국은 조약문에 “영원한 것이나 다름없다”(as good as forever)는 단서를 첨부했다. 조차 기간이 만료되는 1997년 이후에도 계속 영국이 홍콩을 지배할 수 있을 것이란 오만함이 묻어난다. 1949년 중국 대륙에 마오쩌둥(毛澤東)이 이끄는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섰다. 영국의 기대는 산산조각이 났다. 1997년 7월1일 홍콩에서는 영국 찰스 왕세자(현 찰스 3세 국왕)가 참석한 가운데 홍콩 관할권을 중국에 넘기는 의식이 거행됐다. 당시 찰스의 암울한 표정은 더는 세계적 강대국이 아닌 영국의 퇴락을 상징하는 장면으로 받아들여졌다.
둥젠화(董建華) 전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부주석이 8일 89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그는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1997년 기존의 영국 총독을 대신하기 위해 신설된 ‘홍콩 행정장관’으로 임명됐다. 젊은 시절 영국에 유학해 영어가 유창한 그는 이른바 ‘일국양제’(一國兩制: 중국과 홍콩은 한 나라이되 정치 제도는 사회주의·자유주의 둘로 분리한다) 시대에 홍콩을 이끌 적임자로 평가됐다. 하지만 홍콩을 ‘접수’한 중국은 역시나 사회주의 체제 이식을 밀어붙였다. 자유주의자로 알려진 둥젠화는 중국 당국이 보기엔 ‘눈엣가시’였을 것이다. 결국 그는 임기 도중인 2005년 스스로 물러나는 길을 택했다. 이미 허울만 남은 홍콩의 일국양제는 과연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