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 지사님 답해주세요”…이상일 용인시장의 ‘세원’ 전면전 [오상도의 경기유랑]

추미애 지사 ‘법인세 배분’ 제안에 “어디에서 빼가는지 명확히 해야”
“기초지자체 ‘법인지방소득세 공동세원화’?…재정난 시·군에 전가”
삼성·SK 10개 팹 ‘1000조 투자’ 속도전…“정치로 지체된 시간 회복”
“연 1조 세수 확보로 교통·복지 재투자…‘용인 르네상스 2.0’ 완성”
<‘유랑(流浪)’은 정처 없이 헤매는 발걸음이 아닙니다. 땅이 전하는 언어를 들으려 걸음을 늦추는 일이자, 사람과 공간이 나누는 다정한 대화입니다. 타성에서 벗어나 경기도라는 넓은 지도 위를 천천히 음미하며 거니는 기록입니다. 길 위에서 건져 올린 고요한 울림과 예리한 시선이 여러분의 일상에도 작은 여유와 깊은 영감이 되길 바랍니다.>

 

이상일 용인시장이 시청 집무실에서 세계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용인시 제공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달 28일 오후 경기 용인시청. 다독(多讀)으로 유명한 이상일 용인시장의 집무실 책상 위에는 다산 정약용의 사상집과 각양각색 인문사회 서적들이 줄지어 쌓여 있었다. ‘미술관 옆 인문학’과 같은 베스트셀러부터 ‘문화의 바다에 돛배를 띄우고’, ‘철학 다시 오시네’, ‘인생의 의미’ 등 수년간 시장실을 지킨 낯익은 책들이 반갑게 다시 기자를 맞았다.

 

맞은편 벽면을 가득 채운 책장에선 ‘반도체 삼국지’, ‘AI 패권전쟁’, 갈림길의 일본’, ‘저출생과의 전쟁’ 등 최근 대한민국이 처한 대내외 환경을 방증하는 듯한 책들도 눈에 띄었다. 어림잡아 1000권은 넘어 보이는 책들과 200개 남짓 되는 각종 감사패까지 눈이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이 시장의 관심사는 비단 책뿐만이 아니었다. 과거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던 강타자 추신수의 ‘17번’ 등 번호가 새겨진 유니폼부터 동네 어귀 호젓한 갈림길에 서 있을 법한 앙상한 나무를 담은 그림, 앙증맞은 용인시 마스코트 ‘조아용’ 인형들까지 다양했다. 이 중 집무실의 무게를 잡아주는 축은 세계 최대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의 청사진이 큼직하게 걸린 그림판이었다. 

 

이상일 용인시장(왼쪽)이 지난달 7일(현지시간) 베트남 다낭 푸라마 리조트에서 현지 언론과 인터뷰하고 있다. 용인시 제공

◆“秋 지사, 공동세원화인지 입장 밝혀달라”

 

이 시장은 “낙선했더라면 이 많은 짐을 어떻게 처리했을지 고민이었다”고 농부터 던졌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그는 극적으로 기사회생했다. 스스로 패배를 예상하진 않았으나, 인해전술에 맞먹는 여권의 집중유세를 뚫고 1만8963표(3.39% 포인트) 차이로 역전승했다. 당초 열세가 예상되던 기흥구에서 불과 1000여표 차이로 팽팽하게 맞선 덕분이다.

 

1995년 민선 지방자치 출범 이후 용인시는 단 한 번도 현직 시장이 곧바로 연임에 성공한 적이 없던 ‘지방단체장의 무덤’이었지만, 징크스를 깨뜨리며 첫 연임 타이틀을 거머쥔 것이다.

 

이 승리를 두고 용인에선 ‘일 잘하는 행정가’가 정당 지지세를 넘어설 수 있음을 증명한 사례라는 평가가 나왔다. 그는 “선거 내내 투쟁해 온 각오를 되새기며 앞으로 4년간 용인시를 발전시키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화답했다.

 

이 시장은 이날 만남에서 경기도와 도내 시·군 간에 벌어진 첨예한 세수 갈등을 화두로 끄집어냈다. 최근 추미애 경기도지사가 중앙지방협력회의에서 제안한 ‘법인세 5% 광역지자체 배분안’이 도마 위에 올랐다. 

 

이는 추 지사가 △국세와 지방세 비율 7 대 3 조정 △지방소비세율 40%로 인상과 함께 제시한 지방정부의 세입 구조 타개책이다. 복지 수요 증대와 부동산 취득세 의존도가 높은 불안정한 세입 구조로 도의 재정 압박이 가중된 상황에서 대안으로 제시됐다.

 

이를 두고 이 시장은 추 지사가 기존 입장에선 선회했는지 되물었다. 기초지자체 몫의 세수에 손대지 않고, 정부 몫의 세수를 요구하는지 물은 것이다. 그러면서 생각이 바뀐 것이라면 상관없지만, 기존 입장을 고수한다면 시·군 세금을 빼앗아 적자를 메우려는 전형적 탁상행정이라고 지적했다.

 

“(기초지자체의) 법인지방소득세 50%를 가져가겠다는 생각은 포기한 건지 명확히 해야 합니다. 반도체 호황기에 들어오는 세금을 가져가겠다는 경기도가, 향후 반도체 불황이 찾아왔을 때 용인시의 세수 구멍을 어떻게 메워줄 것인지 묻고 싶어요. 만약, 실현 가능성도 없는 구상이라면 미리 접는 것이 맞습니다. 법 개정을 위해 국회 동의를 구하더라도 기업이 집중된 수원·평택·화성·이천 등 도내 다른 지자체 국회의원들조차 반대할 겁니다.”

 

인터뷰 중인 이상일 용인시장. 용인시 제공

◆반도체 세수 변동성 심해…미래 투자재원 방어

 

통상 법인세 대비 법인지방소득세 비율은 10%의 구조를 띤다. 2014년 지방세법 개정으로 법인지방소득세가 독립세 체계로 전환됐으나, 과세표준은 국세인 법인세와 여전히 공유된다. 법인지방소득세의 구간별 세율(0.9%~2.4%)은 법인세 구간별 세율(9%~24%)의 정확히 10분의 1 수준으로 책정돼 있다.

 

구조적으로 법인세의 약 10%가 법인지방소득세로 부과되고, 경기도와 같은 도(道) 관할 시·군에선 기초지자체가 이를 모두 가져간다. 다만, 서울·부산과 같은 특별시 및 광역시에선 지방세법상 ‘특별시·광역시세’로 분류돼 광역지자체의 몫이 된다.

 

문제는 추 지사가 요구한 전체 법인세의 5%가 정부 몫(약 90%)에서 가져오는 것인지, 아니면 기초지자체 몫(법인지방소득세·약 10%)에서 빼 오는 것인지 모호하다는 점이다. 여전히 법인지방소득세의 절반(5%)을 달라는 거라면 ‘언어유희’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앞서 이 시장은 도의 시·군 법인지방소득세 공동 세원화 움직임에 대해선 “시·군의 거센 반발을 부를 불합리한 세원 수탈 행정”이라며 전면전을 선포한 터였다. 그러면서 “도의 현금성 지원 사업들도 따져 보면 총사업비의 70%를 시·군이 부담하는 경우가 꽤 있는데, 생색은 도가 내면서 부담은 시·군에 지우는 모양새”라며 “이런 정책들부터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용인시민들은 산단 유치 과정에서 토지 보상과 이주, 도로 정체 등 극심한 희생을 감내해 왔다”며 “이제 막 결실을 보려는 세수를 깎아 도의 적자를 메우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시장은 2024년 반도체 한파 당시 삼성전자가 낸 법인지방소득세가 ‘0원’에 가까웠던 사례를 들어, 업황에 따른 세수의 변동성도 경고했다.

 

600조원이 투입되는 SK하이닉스의 원삼 일반산단. 용인시 제공

◆‘한국의 실리콘밸리’ 용인…1조 기금 적립

 

도와의 세수 공방 속에서도 이 시장의 시선은 초 단위로 움직이는 ‘글로벌 반도체 패권전쟁’의 현장에 고정돼 있었다. 선거 기간 국가산단 이전론에 맞선 시민들의 “반도체를 지켜달라”는 응원도 떠올렸다. 용인에는 이동·남사읍 삼성전자 국가산단(팹 6기)과 원삼면 SK하이닉스 일반산단(팹 4기) 등 총 10기의 초대형 반도체 공장(팹·Fab)이 들어선다. 용적률이 상향되면 롯데월드타워 10개를 합친 것과 맞먹는 팹 10기의 총투자 규모만 1000조~1200조원에 달한다. 500여개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까지 집적되는 ‘세계 최대의 반도체 생태계’가 조성되는 셈이다.

 

이 시장은 “세계 반도체 시장은 피 말리는 속도전”이라며 정부의 신속한 행정 지원을 촉구했다. 삼성전자가 첫 팹 가동을 2029년 하반기로 1년 앞당겼음에도 부지 조성 공사가 지연되는 점을 짚으며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부지 조성과 국도 45호선 확장, 전력·용수 공급망 구축을 차질 없이 서둘러야 한다고 촉구했다.

 

600조원이 투입되는 SK하이닉스 일반산단 역시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와 국비 지원을 받는 반도체 특별법상 반도체 클러스터로 지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인프라 구축의 핵심인 전력과 용수 수급에 대해서도 꼼꼼한 진단을 내놨다. 삼성전자 팹 6기에 필요한 10GW 규모의 전력 공급을 위해 1GW급 LNG 발전소 3기 건설 및 송전선로 확충이 필수적인데, 가스터빈 수급 난항으로 자칫 가동 일정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부와 경기도가 송전시설 건설 과정에서 발생하는 지역 갈등 해결에도 직접 나서줄 것을 거듭 당부했다.

 

용인시는 2027년부터 연간 5000억원, 향후 1조원 이상의 법인지방소득세를 확보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용인의 미래 투자 재원이다. 

 

이 시장은 “단기 지출이 아니라 도로·철도망 구축과 시민 복지 등 용인의 미래 인프라에 재투자돼야 한다”며 “반도체로 얻은 성과는 시민의 삶에 직결된 교통, 교육, 문화, 복지로 환원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L자형 반도체 벨트를 연결하는 반도체 고속도로와 경강선 연장 등 철도망 구축을 위해 1조원 규모의 사업기금을 단계적으로 적립하겠다. 장애인·비장애인 통합 체육시설인 반다비 체육센터 건립 등 복지 인프라에도 촘촘히 활용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반도체 프로젝트와 도시 인프라를 계획대로 실현해 시민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용인 르네상스 2.0’을 반드시 완성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상일 용인시장(오른쪽)이 기자 시절이던 1993년 초여름 강원도에서 아들을 안고, 선친(고 이진연 의원)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상일 시장 제공

◆오두막이 고달프면 궁전이 위험하다?

 

이 시장은 전남 함평 출신이다. 중학교부터 서울에서 공부하며 서울고·서울대를 졸업한 뒤 중앙일보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정치부 기자, 워싱턴 특파원, 정치부장 등을 거치며 쌓은 인맥이 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계기가 됐다. 선친은 신민당·민주한국당에서 9·10·12대 국회의원을 지낸 고(故) 이진연 의원이다. 

 

이날 이 시장은 두 권의 책을 기자에게 선물했다. 새누리당 대변인으로 활동하던 경험을 풀어놓은 ‘대변인’과 칼럼·에세이집 ‘대통령님, 밥 넘어갑니까?’이다. 

 

2009년 워싱턴 특파원 시절 이상일 용인시장(오른쪽 두 번째)과 가족들. 워싱턴 의회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상일 시장 제공 

지금도 매년 오랜 지인들과 전북 무주로 여름 휴가를 다녀온다는 그는, 언젠가 술자리에서 1993년 초여름 강원도의 한 콘도에 아버님과 가족들을 자신의 첫차인 엘란트라에 태우고 오갔던 추억을 되뇐 적이 있다. 혈기왕성하던 국회 출입기자 시절이다. 

 

그는 자신의 에세이에 적은 ‘오두막이 고달프면 궁전이 위험하다’는 격언을 인용하며 “위정자가 시민의 미움을 사면 돌이킬 수 없다. 국익과 미래를 위해 당파를 뛰어넘었던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결단처럼 사유하는 정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회의원으로 재직하던 2015년 강남대 학생들이 이상일 시장에게 선물한 사진. 당시 재학생들이 자신들의 사진을 모자이크처럼 나열해 이미지를 만들어 선물했다. 용인시 제공

인도 출신 경제학자 메그나드 데사이의 저서 ‘휴브리스(오만)’도 소환했다. 삶과 정치에 관한 사유의 흔적이다. 금융위기의 원인이 오만(傲慢)이었다는 책의 내용을 소개하며, 케인스·신고전주의 학파가 자신들의 이론만 옳다고 생각해 변화와 위기를 감지하지 못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나만 맞다”는 독선과 오만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데사이의 결론이 대한민국의 정치 상황을 그대로 방증하고 있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