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는 코스알엑스, 제미나이는 토리든, 퍼플렉시티는 라운드랩, 클로드는 이니스프리를 선택했다. 같은 ‘스킨케어 1위’를 묻더라도 생성형 인공지능(AI)에 따라 답은 제각각이었다. 범위를 넓혀보면 공통점도 뚜렷했다. 스킨케어부터 마스크팩, 색조, 뷰티 디바이스까지 주요 카테고리 상위권을 국내 브랜드가 대거 차지했다.
최근 해외 시장에서 빠르게 몸집을 키우고 있는 K뷰티 브랜드들이 생성형 AI의 추천과 언급에서도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10일 AI 브랜드 분석기업 에이아이빅스랩에 따르면 챗GPT·제미나이·퍼플렉시티·클로드의 한국어 답변을 토대로 뷰티 9개 카테고리 265개 브랜드의 AI 브랜드 경쟁력 지수 ‘AIBIX’를 분석한 결과, 국내 브랜드가 대부분 부문에서 종합 1위를 차지했다.
조사는 지난달 23일부터 이달 4일까지 스킨케어와 선케어, 클렌징, 마스크팩, 베이스 메이크업, 색조 메이크업, 남성 화장품, 뷰티 디바이스, 탈모 샴푸를 대상으로 진행됐다. AIBIX는 4개 생성형 AI 응답에서 브랜드 등장률과 언급 점유율 등을 분석해 100점 만점으로 환산한 지표다.
종합 1위는 스킨케어와 선케어에서 라운드랩, 마스크팩 메디힐, 베이스 메이크업 헤라, 색조 메이크업 롬앤이 차지했다. 남성 화장품은 이니스프리, 뷰티 디바이스는 메디큐브, 탈모 샴푸는 닥터포헤어가 선두에 올랐다. 클렌징에서는 마녀공장과 바닐라코가 공동 1위를 기록했다.
AI별 판단은 상당히 달랐다.
스킨케어에서는 챗GPT가 코스알엑스, 제미나이가 토리든, 퍼플렉시티가 라운드랩, 클로드가 이니스프리를 각각 가장 높은 순위에 올렸다.
색조 메이크업에서도 챗GPT와 제미나이는 롬앤을 1위로 평가했지만 퍼플렉시티와 클로드는 에뛰드를 선택했다. 뷰티 디바이스는 챗GPT에서 포레오가 1위였지만 나머지 3개 AI에서는 메디큐브가 선두였다.
가장 극단적인 차이는 탈모 샴푸에서 나왔다. TS샴푸는 챗GPT에서 77.5점을 받았지만 클로드에서는 0.1점에 그쳤다. 같은 브랜드를 두고 AI에 따라 77.4점 차이가 벌어진 것이다.
반대로 AI 4종의 답이 완전히 일치한 분야도 있었다.
마스크팩에서는 메디힐이 챗GPT·제미나이·퍼플렉시티·클로드 모두에서 1위를 기록했다. 종합 점수도 81.3점으로 2위 토리든(32.6점)을 48.7점 차로 따돌렸다. 전체 답변의 74.2%에서 메디힐이 가장 먼저 언급됐다.
실제 판매 현장에서도 메디힐의 마스크팩 경쟁력은 확인되고 있다.
서울시와 메디힐이 지난해 12월 선보인 ‘마데카소사이드 에센셜 마스크 흔적 리페어 해치 에디션’은 올리브영 명동·홍대점과 공항 면세점 등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매장에서 판매됐다. 출시 약 한 달 반 만에 1차 생산 물량이 조기 소진돼 추가 생산에 들어갔다.
올해는 후속 제품으로 ‘마데카소사이드 흔적 토너 패드 해치 에디션’까지 나왔다. 해당 토너 패드는 올리브영 어워즈 패드 부문에서 2년 연속 1위를 기록한 메디힐의 주력 제품이다.
스킨케어와 선케어에서 종합 1위에 오른 라운드랩 역시 K뷰티 인수·합병(M&A) 시장에서 몸값을 인정받았다.
‘독도토너’와 ‘자작나무 수분 선크림’으로 성장한 라운드랩 운영사 서린컴퍼니는 지난해 구다이글로벌에 인수됐다. 인수 가격은 약 6000억원이다. 서린컴퍼니의 2023년 매출은 935억원, 영업이익은 250억원이었다. 구다이글로벌은 조선미녀에 이어 라운드랩까지 품으며 스킨케어 포트폴리오를 확대했다.
라운드랩의 ‘자작나무 수분 선크림’은 현재도 올리브영에서 ‘1등 썬’ 제품으로 판매되고 있다. 올리브영 온라인몰 상품 리뷰도 1만9000건을 넘어섰다.
베이스 메이크업 종합 1위 헤라도 실제 대표 제품의 판매량이 뒷받침한다.
2017년 출시된 헤라 ‘블랙 쿠션’은 올해 기준 누적 판매량 1400만개를 기록했다. 아모레퍼시픽은 블랙 쿠션이 8년 연속 쿠션 브랜드 1위를 이어가고 있다고 밝혔다. 일본과 태국 등 주요 해외 시장에서도 동일한 글로벌 캠페인과 매장 전략을 확대하고 있다.
헤라는 베이스 메이크업 영역도 넓히고 있다. 지난해 선보인 글로우 타입 ‘리플렉션’ 라인을 새로운 성장축으로 육성하며 해외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AI 분석에서 뷰티 디바이스 1위를 차지한 메디큐브의 성장세는 더 가파르다.
에이피알에 따르면 메디큐브 화장품과 AGE-R 뷰티 디바이스를 합친 지난해 브랜드 매출은 1조4000억원을 넘어섰다. 메디큐브 출시 10년 만이다.
화장품 매출만 1조원을 넘어 전년보다 3배 이상 늘었고, AGE-R 뷰티 디바이스 매출도 4000억원을 돌파했다. ‘제로모공패드’, ‘콜라겐 나이트 랩핑 마스크’, ‘PDRN 핑크 펩타이드 앰플’과 뷰티 디바이스를 함께 판매하는 전략이 성장을 이끌었다.
이번 조사에서 눈에 띄는 또 다른 변화는 AI 답변이 브랜드명에 그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클렌징에서는 바닐라코 ‘클린 잇 제로’와 센카 ‘퍼펙트 휩’, 선케어에서는 라운드랩 ‘자작나무 수분 선크림’처럼 제품명이 직접 등장했다. 탈모 샴푸 답변에서는 성분인 ‘미녹시딜’이 전체 답변의 18.3%에 포함됐고, 뷰티 디바이스에서는 ‘하이푸(HIFU)’가 9.2%의 답변에서 가장 먼저 언급됐다.
소비자가 생성형 AI에 제품 추천을 요청하면서 AI가 브랜드뿐 아니라 구체적인 제품과 성분, 기술까지 묶어 답하는 흐름이 강해지고 있다는 의미다.
AI가 참고하는 정보원도 브랜드 공식 홈페이지에 한정되지 않았다. 엘르·하퍼스 바자 등 언론·매체 콘텐츠와 화해·글로우픽 같은 뷰티 플랫폼, 네이버 블로그와 영상 콘텐츠 등이 함께 활용된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앞으로 화장품 업체들의 브랜드 경쟁이 검색 포털과 SNS를 넘어 생성형 AI 답변 영역으로 확대될 가능성을 보여준다.
다만 AIBIX 순위를 브랜드 선호도나 시장점유율로 봐선 안 된다. AIBIX는 일정 기간 챗GPT·제미나이·퍼플렉시티·클로드 등 생성형 AI의 답변에서 특정 브랜드가 얼마나 자주 등장하고 언급되는지를 측정한 지표다. 제품 품질이나 매출, 시장점유율, 전체 소비자의 구매 선호도를 직접 보여주는 수치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