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오디세이’가 국내에서만 1000만명 이상의 관객을 모았다고 한다. 오디세우스가 등장하는 그리스·로마 신화를 우리는 어릴 때부터 읽었다.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불을 주었고, 오르페우스가 죽은 아내를 찾아 지하 세계로 내려갔으며, 아킬레스의 발뒤꿈치가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이 이야기들은 교과서에 실렸고, 위인전 옆에 꽂혔으며, 성인이 된 후에도 일상의 언어 속에 살아남았다. 그리스·로마 신화가 전 세계 아이들의 공통 교양이 된 것은 그 이야기들이 오랜 세월 다른 나라의 교실 속으로 걸어 들어갔기 때문이다.
8월 초 조용한 뉴스 하나가 들어왔다. 심청전, 춘향전, 흥부와 놀부, 단군신화, 콩쥐팥쥐 등 한국 전래동화와 건국 신화 20편이 중남미 5개국 교과서 14종에 수록됐다. 과테말라, 콜롬비아, 엘살바도르, 아르헨티나, 우루과이의 교실에서 한국 이야기가 읽힌다. 토끼와 거북이는 마야어 4종으로도 번역됐다. 시작은 2016년 과테말라 디지털 교과서에 박혁거세 설화가 실리면서였다. 10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수록 범위는 조용히, 그러나 꾸준히 넓어졌다.
이 소식은 조용했다. 그러나 조용한 것이 덜 중요한 것은 아니다. 한류 콘텐츠 수출액이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거나 한국 영화가 칸에서 상을 받았다는 소식처럼 즉각적인 감흥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이는 한류가 도달한 가장 깊은 층위의 성취일 수 있다. 교과서에 실린다는 것은 세대를 넘어 재생산된다는 뜻이다. 과테말라의 아이가 흥부와 놀부를 읽고 자라면 어른이 된 후에도 그 아이의 감수성 어딘가에는 한국의 이야기가 새겨져 있을 것이다.
물론 그리스·로마 신화와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그것은 서구 문명의 자장 속에서 수백 년에 걸쳐 자연스럽게 확산됐다. 한국 전래동화의 중남미 수록은 한국학중앙연구원이 현지 교육 전문가들과 발로 뛰며 일군 결과다. 그러나 그 교류의 문을 열어준 것은 K팝과 K드라마였다. 대중문화가 먼저 심어놓은 관심이 없었다면 심청이와 춘향이가 그 교실에 들어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K컬처의 성취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너무 자주 매출액, 등수, 수상 실적을 본다. 그러나 그 화려한 숫자들과 트로피들 뒤에서 과테말라의 한 교실에 춘향이의 이야기가 조용히 펼쳐지고 있다. 그리스·로마 신화가 세계 아이들의 공통 교양이 된 것은 콜로세움이나 파르테논 신전이 아니라 그 이야기들이 수백 년에 걸쳐 교실로 걸어 들어갔기 때문이다. 한국의 이야기도 지금 그 길 위에 있다.
이지영 한국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