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돌발홍수 생존자 파랑바 장애 딛고 새로운 삶 일궜지만 올해 네팔 대홍수에 생사 불명 위험은 모두에게 똑같지 않아
파랑바 라마. 올해 40대에 접어든 네팔인이다. 그는 2025년 7월 빙하호 붕괴로 인한 돌발홍수의 생존자이기도 하다. 당시 홍수가 네팔과 중국을 잇던 국경 검문소를 휩쓸었다. 그날 9명이 목숨을 잃었다. 파랑바 씨는 살아남았지만, 두 다리를 잃었다. 오랜 재활 끝에 그는 사회로 돌아올 수 있었다. 커피 농장을 운영하며, 자신처럼 장애를 안고 살아가던 이웃들에게 헌신하는 삶을 살아가려 했다.
그런데 그는 올여름 네팔과 티베트를 덮친 대홍수에 휩쓸렸다. 그와 가족들의 생사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실종자만 4000명인 상황. 그의 사연은 국제언론 협력체 커버링클라이밋나우를 통해 짧게 전해졌다. 파랑바 씨와 함께 일했던 현지 영화 제작자는 그가 무사히 발견되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같은 사람이, 같은 이유로, 두 해 연속 기후재난의 한가운데 섰다.
윤원섭 녹색전환연구소 선임연구원
이번 대홍수는 분명 기후재난이다. 미국 콜로라도대 소속 산악지리학자인 앨턴 C 바이어스 박사는 고도 5300m 이상에 형성된 산악 영구동토층이 수천년간 고지대 암석과 빙하를 붙잡아 온 일종의 천연 접착제 역할을 해왔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기후위기로 이 접착제가 물러지고 있다는 점이다. 바이어스 박사는 이 상태를 두고 ‘방아쇠’란 표현을 썼다. 천연 접착제가 이미 물러진 상태라면 작은 지진이나 산사태 등이 언제든지 방아쇠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번 재난은 예견된 사건이었다. 올해 네팔과 티베트를 덮친 대홍수는 빙하가 녹으며 형성된 호수가 범람하는 ‘빙하호 범람’ 때문에 발생했다. 세계기상기구(WMO)와 유엔재난위험경감사무국(UNDRR)은 지난해 ‘다중재해 조기경보시스템 현황 보고서’를 통해 이와 관련한 위험을 상세히 경고한 바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1500만명이 잠재적인 빙하호 범람 위험권에 노출돼 있다. 특히 히말라야 고산지대에는 약 100만명이 빙하호 반경 10㎞ 이내에서 살아가고 있다.
다른 지역에도 비슷한 사건이 여럿 발생한 상태다. 미국 알래스카주 주노에서는 2011년부터 매년 빙하호 범람으로 주택과 도로 일부가 침수되는 피해를 입고 있다. 인도에서는 2023년 빙하호 범람으로 55명이 숨지고 수력발전댐이 파괴됐다. 파키스탄에서는 2025년 폭우가 쏟아지던 시기에 빙하호 범람이 발생하며 수백 채의 가옥이 파괴됐다. 부탄에서도 같은 해 여러 건의 빙하호 범람이 잇따르며, 대응체계 구축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남미 안데스와 유럽 알프스 일대 산악 국가들에서도 비슷한 위험 신호가 감지되고 있다.
위험은 모두에게 똑같이 떨어지지 않는다. 기후재난이 가장 먼저, 가장 자주 두드리는 곳은 이 위기에 가장 작게 책임이 있는 나라들이다. 네팔은 기후위기에 가장 취약한 나라 중 하나다. 정작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0.01%밖에 차지하지 않는 배출 책임이 가장 작은 나라이기도 하다. 현지 매체인 카트만두포스트는 이 상황을 두고 한 기사에 “홍수는 계속되고, 네팔은 끊임없이 다시 시작한다”는 제목을 달았다. 반복되는 기후재난 속에서 처음부터 다시 일어서야 하는 고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 고통 뒤에는 누군가의 얼굴이 있다는 점을 잊지 말자. 파랑바 씨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그는 작년에 기후재난으로 다리를 잃었고, 올해는 가족들과 함께 실종됐다. 이건 비극이다. 그리고 드문 일도 아니다. 그와 비슷한 이야기가 지금 지구 곳곳에서 넘쳐난다. 파랑바 씨는 기후재난이 책임이 가장 작은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가장 반복적으로 찾아온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수많은 사례 중 하나일 뿐이다. 이런 일은 반복되고 있고, 앞으로도 반복될 것이다.
데이터는 이미 차고 넘친다. 어디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위험에 노출돼 있는지, 무엇이 부족한지 다 나와 있다. 문제는 자료가 정책과 예산 그리고 실행으로 이어지지 못한 채 보고서 안에 조용히 머물러 있다는 사실이다. 기후위기 시대, 만능 해결책 같은 건 없다. 이런 기후재난이 내년 아니 다음 달에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오히려 기온이 오르는 만큼, 이런 기후재난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지금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