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빙하기·화산활동 반복 45억년 기후변화로 본 지구史 산업혁명 이후 온실가스 급증 네팔 대홍수 등 삶의 터전 위협
위기 처한 건 지구가 아닌 인간 결국 미래는 우리 선택에 달려
기후 빅 히스토리/ 마이클 E 만/ 박경미 옮김/ 조천호 감수/ 여해와함께/ 2만8000원
지난달 26일 네팔에서 발생한 대홍수는 빙하와 암석 붕괴가 촉발한 것으로 추정된다. 계곡을 따라 쏟아진 물과 토사는 마을과 교량, 수력발전 시설을 집어삼켰고 막대한 인명·재산 피해를 남겼다. 기후변화로 빙하와 영구동토층이 불안정해진 히말라야가 극한재해에 더욱 취약해지고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게티이미지·생성형 AI 이미지
이번 대홍수를 기후변화 하나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지질학적 조건과 강수, 빙하와 영구동토층의 변화, 계곡 개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온 상승이 빙권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극한재해의 위험 조건을 바꾸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기후위기가 더는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의 삶과 문명 기반을 직접 흔드는 현실이라는 얘기다.
이런 시점에 최근 번역 출간된 세계적인 기후과학자인 펜실베이니아 대학 석좌교수 마이클 E 만의 ‘기후 빅 히스토리’는 기후위기를 바라보는 시야를 45억년의 지구 역사로 넓힌다. 저자는 생명의 탄생부터 인간의 진화, 농업과 도시의 등장, 문명의 발전에 이르기까지 장대한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며 기후가 생명과 인간 문명의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추적한다. 고기후 기록과 최신 과학 연구를 통해 과거의 기후변화와 오늘날의 온난화를 비교하면서 현재 우리가 마주한 위기의 성격을 설명한다.
마이클 E 만/ 박경미 옮김/ 조천호 감수/ 여해와함께/ 2만8000원
저자의 핵심 메시지는 의외로 단순하다. 기후변화가 지구를 멸망시키는 것이 아니다. 진짜 위험에 처한 것은 인간과 인간 문명이다. 지구 역사에는 지금보다 훨씬 뜨거웠던 시대도 있었고 지구 전체가 얼음에 뒤덮였던 시기도 있었다. 대규모 화산활동과 운석 충돌, 급격한 온난화와 냉각이 반복됐다. 여러 차례 대멸종이 일어났지만, 그럼에도 생명의 역사는 끝나지 않았다. 일부 종이 사라진 자리에 다른 종이 등장하며 생명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왔다.
그렇다면 과거에도 기후가 크게 변했으니 지금도 괜찮다는 뜻일까. 저자는 정반대라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기온이 얼마나 변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빠르게 변하고 있느냐이기 때문이다.
인류가 경험한 빙기와 간빙기의 기후변화는 매우 긴 시간에 걸쳐 진행됐다. 생태계와 생명체가 변화에 적응할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산업혁명 이후 인간은 석탄과 석유, 천연가스 등 화석연료를 대량으로 태우면서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를 급격하게 높였다. 저자가 1990년대 후반 동료들과 발표한 ‘하키스틱 그래프’는 이런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산업화 이전까지 비교적 완만했던 기온 변화가 20세기에 들어 급격하게 상승하는 모습이 하키스틱처럼 나타난다. 과거에도 자연적인 기후변화가 있었지만, 최근의 온난화는 변화의 속도와 원인에서 다르다는 것이다.
인간의 역사는 기후와 함께 움직였다. 인류는 기후에 적응하면서 진화했다. 불안정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도구를 만들고 협력했으며 농업을 시작했다. 관개시설을 만들고 도시와 국가를 건설했다. 자연환경에 적응하는 존재에서 자연환경을 바꾸는 존재로 발전한 것이다.
그러나 문명을 발전시킨 바로 그 능력이 이제 인간을 위협하고 있다. 화석연료는 산업혁명과 현대 문명을 가능하게 했다. 하지만 온실가스를 대량 배출하면서 지구의 에너지 균형을 바꿨다. 기후에 적응하던 인간이 어느 순간부터 기후를 변화시키는 종이 된 것이다. 문제는 현대 문명이 특정한 기후조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농업은 일정한 계절과 강수 패턴을 필요로 하고, 도시는 안정적인 물과 식량 공급을 전제로 한다. 해안의 대도시는 비교적 안정된 해수면을 바탕으로 성장했다.
따라서 기후위기의 본질은 단순히 지구가 더워지는 데 있지 않다. 인류가 의존해온 안정적인 기후조건이 빠르게 흔들리는 데 있다. 그렇다면 이미 온난화가 진행된 지금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저자는 여기서 ‘기후위기가 너무 심각해 이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체념을 경계한다.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1.5도 이내로 막는 것이 가장 좋지만, 설령 1.5도를 넘더라도 2도에서 멈추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2도도 넘는다면 2.5도, 3도에서라도 최대한 상승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1.5도에 실패했으니 포기하자”가 아니라 “1.5도에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2도, 2.5도, 3도 중 어디에서든 최대한 낮게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온난화를 완전히 막지 못한다고 해서 감축의 의미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온실가스 배출을 하나라도 줄이면 그만큼 미래의 온난화와 피해를 줄일 수 있다. 화석연료 인프라를 하나 덜 만들고, 온실가스를 조금이라도 덜 배출하며, 홍수와 폭염에 취약한 지역의 적응 능력을 높이는 것 모두 미래를 바꾸는 행동이라는 것이다.
책 전반에서 저자가 던지는 질문은 ‘지구가 살아남을 수 있는가’가 아니다. “우리는 어떤 기후에서 어떤 문명을 살아남게 할 것인가”이다. 지구는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다. 기후위기는 지구의 위기가 아니라 인간 문명의 위기다. 그러나 미래가 이미 결정된 것은 아니다. 온실가스 배출을 얼마나 줄이고, 변화한 기후에 어떻게 적응하느냐에 따라 우리가 살아갈 세상의 모습은 달라질 수 있다.
“기후가 역사를 만들어왔다면, 이제 인간이 바꾼 기후가 우리의 미래를 바꿀 것이다. 그리고 그 미래를 어떤 모습으로 만들지는 결국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