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옳다고 밀어붙일 순 없죠”…천영길 KCL 원장의 리더십 [리더의 나침반]

30년 공직생활 후 KCL 원장 취임 2년차​
“조직 위해 옳은 일도 구성원 설득 필요”
“아무리 조직의 리더라도 내 마음대로 할 수는 없죠. 조직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해도 구성원들의 동의를 구하고 설득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천영길 KCL(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 원장은 지난달 28일 서울 서초구 한 음식점에서 만난 취재진에게 기관장이 된 뒤 가장 크게 배운 점을 이같이 밝혔다.

천영길 KCL원장이 업무를 보고 있다. KCL 제공

천 원장은 1994년 기술고시 30회로 공직에 입문한 뒤 산업통상자원부(현 산업통상부)에서 중견기업정책관, 에너지전환정책관, 에너지정책실장을 거쳐 무역위원회 상임위원을 지냈다. 2024년 11월 KCL 원장에 취임한 그는 30년간 몸담았던 공직을 떠나 한 조직의 경영을 책임지면서 ‘결정하는 것’과 ‘조직을 움직이는 것’은 다르다는 사실을 체감했다고 했다.

 

천 원장은 “공무원으로 일할 때는 위에서 조직을 위해 바꿔야 한다고 판단하면 결정한 것을 추진할 수 있었지만, 여기서는 기관장이 회사에 도움이 되는 방향이라고 생각한다고 해서 마음대로 밀어붙일 수 있는 게 아니더라”며 “직원들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동의를 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실제 그는 기관장이 된 뒤 임금과 복지, 근무 형태 등을 놓고 노동조합과 협상하는 과정을 처음 경험하며 노사관계가 조직 경영에서 차지하는 무게를 체감했다고 덧붙였다. 공직에 있을 때는 좀처럼 경험하기 어려웠던 영역이었다.

 

대표적인 사례는 KCL의 ‘사명 변경’ 추진이다. KCL의 정식 명칭은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이다. 하지만 사업 영역은 이미 건설∙생활 분야를 넘어 반도체, 자동차, 전기용품 등으로 확장된 상태다. 천 원장은 ‘건설’이라는 기존 사명이 기관의 업역을 제한적으로 보이게 해 신성장 분야를 개척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위험 신호가 레이더에 잡히고 있다”는 게 그의 진단이었다.

 

그가 구상한 방안은 이미 업계에서 브랜드로 자리 잡은 ‘KCL’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었다. 그러나 내부 구성원들의 생각은 달랐다. 오랫동안 기존 명칭을 사용해온 일부 직원들에게 사명은 단순한 간판이 아니라 조직에 대한 자부심과 정체성의 문제였다. 천 원장은 여러 차례 직원들과 소통하며 변경의 필요성을 설명했으나 투표 결과 반대 의견이 더 우세했다.

 

사명 변경은 원칙적으로 기관장의 경영 판단에 속하는 사안으로 직원들의 동의를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천 원장 역시 사명 변경을 강행할지를 놓고 고민했지만, 직원들에게 의견을 묻고 그 결과를 따르겠다고 공지한 만큼 일단 변경 추진을 유보했다.

 

천 원장은 “기관장이나 경영진이 바라보는 시각과 직원들이 바라보는 시각은 다를 수밖에 없다”며 “장기적으로 보면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투표를 하겠다고 공지한 만큼 일단 직원들의 투표 결과를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놓았다.

 

결국 그가 기관장이 된 뒤 고민하게 된 것은 ‘권한이 있느냐’가 아니라 ‘그 권한을 어디까지 행사할 것이냐’였다.

 

공무원에서 기관장이 된 뒤 가장 무겁게 다가온 권한으로는 단연 ‘인사권’을 꼽았다. 그는 인사권을 ‘칼’에 비유했다. 조직을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수단 중 하나인 만큼 행사하는 순간 조직 전체에 미치는 파급력도 크다는 의미다.

 

천 원장은 “인사권이 제일 무섭더라. 누군가는 인사권을 칼이라고 하는데, 칼은 칼집에 있는 게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사의 파급력을 향기에 빗대 “조금만 해도 향기가 퍼진다”고 했다. 강력한 권한일수록 행사하는 것보다 절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게 그가 기관장이 된 뒤 체득한 리더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