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더 일찍 데려왔더라면?… 펫로스, 죄책감은 왜 생기나 [펫 상실학 개론]

김덕용의 ‘펫 상실학 개론’은 1500만 반려인의 가슴 아픈 사연을 소개하기 위해 세계일보가 만드는 코너입니다. 반려동물을 잃고 깊은 상실감에 빠진 이들, 그리고 다가올 이별이 두려워 오늘을 불안해하는 모든 반려인을 위한 ‘상실학 교과서’입니다. 집안 곳곳에 남은 아이의 흔적을 마주하는 법부터 죄책감을 털어내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는 법까지, 우리가 미처 배우지 못했던 이별의 과정을 차근차근 짚어보려 합니다.

 

사진은 기사 이해를 돕기위해 AI(인공지능)을 사용하여 제작한 사진. 생성형 AI 이미지 생성

“그때 조금만 더 일찍 병원에 데려왔더라면.”

 

반려동물을 떠나보낸 보호자들이 진료실에서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반대로 “제가 너무 서둘러 보낸 건 아닐까요?”라고 묻는 분도 있다. 한쪽은 늦게 알아챈 것을, 다른 한쪽은 일찍 결정한 것을 자책한다. 방향은 정반대인데 뿌리는 하나다. 이미 지나간 일에 대고 “만약 그때 다르게 했더라면”을 자꾸 돌려 보는 것이다. 이 되돌리기에는 끝이 없다. 일찍 데려왔어도 결과가 같았다면 괜히 고생만 시켰다고 자책했을 것이고, 늦게까지 곁에 두었더라도 더 아프게만 했다고 자책했을 것이다. 어느 쪽을 택했든 택하지 않은 쪽이 남아 마음을 찌른다. 그러니 죄책감이 크다는 것은 잘못이 컸다는 뜻이 아니다. 끝까지 놓지 않으려 했다는 뜻이다.

 

죄책감은 늘 구체적인 장면에 달라붙는다. 조금 더 일찍 이상을 알아챘어야 했다는 장면, 바빠서 마지막 며칠을 함께 있어 주지 못한 장면, 아파서 예민해진 아이에게 나도 모르게 화를 냈던 장면. 그 장면 하나하나가 “내가 더 잘했더라면”이라는 문장으로 바뀐다. 이상한 일이다. 잘해 준 수백 번의 날들은 떠오르지 않고 못 해 준 몇 장면만 선명해진다.

 

이 마음이 얼마나 흔한지는 연구에서도 확인된다. 2025년 리스본대학교 연구진은 반려동물을 떠나보낸 보호자 123명을 조사해 국제 학술지 Journal of Veterinary Behavior에 결과를 발표했다. 안락사를 경험한 보호자들은 그렇지 않은 보호자들보다 평균적으로 죄책감은 낮았지만, 애도 반응의 강도는 더 높았다.

 

더 눈여겨볼 대목도 있다. 수의사에게 안락사 결정 과정에서 배제됐다고 느낀 보호자일수록 애도 반응이 더 강했다. 반대로 수의료팀이 자신의 정서적 필요에 잘 반응했다고 느낀 보호자일수록 죄책감은 낮았다. 이 연구는 병의 상태와 안락사 여부만큼 혹은 그와 별개로, 보호자가 그 결정을 의료진과 함께 내렸다고 느끼는 경험이 사별 뒤의 마음과 관련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나는 진료실에서 그 차이를 여러 번 보았다. 같은 병, 비슷한 선택인데도 어떤 보호자는 시간이 지나며 담담해지고 어떤 보호자는 오래 앓는다. 그 갈림은 대개 그날 곁에 누가 있었는가, 그 사람이 자기 마음을 봐 주었는가에서 생겼다. 결정을 혼자 짊어졌다고 기억하는 사람일수록 그 자리를 더 오래 되돌리고 있었다. “제가 죽인 건가요”라고 묻는 보호자도 여러 번 보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안다. 그 결정은 그분 혼자 내린 것이 아니라는 것을. 검사 결과를 함께 들여다보았고, 남은 시간을 함께 저울질했고, 마지막 날을 함께 정했다. 지난 회에 썼듯이 그 방에는 언제나 두 사람이 있었다.

 

그 저울질은 매번 어렵다. 검사 수치는 나빠지는데 아이는 아직 밥을 먹고 꼬리를 흔든다. 며칠을 더 기다릴지 오늘 편안하게 보낼지, 정답이 없는 물음 앞에서 보호자와 나는 함께 머뭇거린다. 그 시간을 지나야 결정이 선다. 그러니 그것은 어느 한 사람이 내린 판단이 아니라 두 사람이 함께 버틴 시간의 끝에 남는 것이다. 사실은 나도 되돌린다. 그때 다른 약을 권했다면, 하루만 더 지켜보자고 했다면. 결정의 자리에 함께 있던 사람도 같은 문장을 안고 산다. 그러니 그 되돌리기는 당신이 무정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그 자리에 있던 누구라도 겪는 일이다.

 

박근필 성장연구소 소장

그런데 우리는 그 사실을 자주 잊는다. 마지막 순간의 무게가 너무 커서 결정을 혼자 짊어졌다고 기억한다. 그러니 그 자리에 함께 있던 사람이 무슨 말을 했는지 떠올려 보기 바란다. “우리가 함께 내린 결정이었습니다”라는 한마디를 붙들면 된다. 연구가 말한 ‘헤아림’이 바로 그것이다.

 

되돌리기를 억지로 멈출 수는 없다. 다만 방향은 바꿀 수 있다. “더 잘했어야 했다”가 떠오르면 “그래도 이건 해 주었다”를 옆에 하나씩 놓아 보는 것이다. 아이와 함께한 시간은 못 해 준 몇 장면보다 훨씬 길었다. 지금도 그때를 되돌리고 있는 분에게 말하고 싶다. 당신은 그때 알던 것 안에서 최선을 다했다. 지금 아는 것으로 그때의 당신을 심판하지 마라. 그리고 그 자리에 혼자 있지 않았다는 것을, 곁에서 함께 저울질하던 사람의 얼굴을 한 번 더 떠올려 보면 좋겠다.

 

글∙박근필 성장연구소 소장

 

■ 누구보다 깊은 사랑을 주었고, 그렇기에 더 아픈 이별을 경험한 반려인들을 위해 연재물 김덕용의 ‘펫 상실학 개론’에서 독자 여러분의 소중한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가슴속에 묻어둔 아이와의 추억, 그리고 남겨진 슬픔을 함께 나누며 서로를 위로하는 시간에 참여해 주세요.

△참여 대상 : 반려동물을 먼저 떠나보내고 그리워하는 모든 반려인

 

△작성 분량 : 예) A4 용지 1장 내외 또는 자유 분량

 

△우대 사항 : 아이의 생전 모습을 담은 소중한 사진 첨부

 

△접수 방법 : 이메일(kimdy@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