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멘 찍고 이라크 간 ‘57년생 이란 실세’…다음 전선은 어디인가

이란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 에스마일 가아니

‘친이란’ 후티, 홍해 입구 페림섬 진출…바브엘만데브 해협 압박
이라크발 드론, 호르무즈 우회하는 사우디 핵심 송유관 타격
이란혁명수비대 정보수장 출신 타엡 복귀…대내외 전시태세 강화
韓 호르무즈 파병 뒤 혁명수비대와 충돌한다면…누구와 소통하나

이란의 대외 군사작전을 이끄는 에스마일 가아니 이란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의 최근 행보에 관심이 쏠린다. 예멘을 공개적으로 거론한 데 이어 이라크 친이란 세력 지도부를 직접 만난 가운데, 최근 예멘과 이라크·사우디를 둘러싼 군사적 긴장도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에스마일 가아니 이란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이 2023년 12월 28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에서 국기에 덮인 사이드 라지 무사비 혁명수비대 준장의 관에 입을 맞추고 있다. 무사비는 사흘 전인 12월 25일 시리아에서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숨졌다. AP연합뉴스

가아니는 지난 7월25일 예멘 문제를 공개적으로 거론했다. 가아니는 사우디아라비아를 향해 “11년간 이어진 예멘 봉쇄를 해제하는 것은 억압받는 예멘 국민의 정당하고 인도적인 요구”라며 봉쇄 해제를 촉구했다. 미국의 “비이성적이고 값비싼 행동”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는 경고도 덧붙였다.

 

보름여 뒤 가아니는 이라크 바그다드를 찾았다. 현지에서 시아파 민병대 고위급과 정치권 핵심 인사들을 만나 무장해제 문제 등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이라크에서는 정부가 무장세력에 무장해제를 압박하고 카타이브 헤즈볼라 등 강경파가 이에 반발하면서 양측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었다. 역내 친이란 무장세력과의 관계를 총괄하는 쿠드스군 수장이 이런 민감한 시기에 직접 바그다드를 찾은 것이다.

 

이후 긴장은 사우디로 번졌다. 지난 11일 사우디의 핵심 에너지 시설인 동서 송유관이 이라크에서 날아온 드론 여러 대에 피격됐다. 사우디 외교부는 “이라크에서 날아온 여러 대의 드론이 리야드와 메디나 지역의 동서 송유관을 공격했다”며 강하게 규탄했다.

 

공격의 배후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가아니가 예멘을 공개적으로 거론하고 이라크의 친이란 세력과 접촉한 이후 예멘과 이라크, 사우디를 둘러싼 군사적 긴장은 한층 높아졌다.

지난 9일(현지시간) 이란 수도 테헤란의 거리 모습. EPA연합뉴스

◆솔레이마니 20년 보좌…‘저항의 축’ 관리하는 가아니

 

가아니의 움직임을 눈여겨봐야 하는 이유는 그가 이란의 대외 군사작전을 책임지는 쿠드스군 수장이기 때문이다. 이란혁명수비대 정예부대인 쿠드스군은 이란 밖에서 군사·정보 작전을 수행하는 동시에 이란이 ‘저항의 축’으로 부르는 역내 친이란 세력과의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

 

1957년생으로 알려진 가아니는 가셈 솔레이마니 전 쿠드스군 사령관의 오랜 측근이다. 이란·이라크전쟁에 참전한 뒤 1990년대 후반부터 20년 넘게 쿠드스군 부사령관으로 솔레이마니를 보좌했다. 솔레이마니가 트럼프 1기 시절인 2020년 1월3일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미군의 드론 공격으로 사망하자 쿠드스군 지휘봉을 넘겨받았다.

 

알리 하메네이 전 이란 최고지도자는 당시 가아니를 후임으로 임명하며 그가 “오랜 기간 쿠드스군에서 순교한 사령관과 함께 역내에서 임무를 수행했다”고 강조했다.

 

오랜 기간 솔레이마니와 함께 역내 군사 네트워크를 관리한 데 이어 현재는 이를 직접 지휘하고 있다. 가아니가 어디를 찾고 누구를 만나는지가 이란의 다음 행보를 읽는 단서로 꼽히는 이유다.

2020년 1월3일 알리 하메네이 당시 최고지도자는 “명예롭고 고귀한 순교자 하지 가셈 솔레이마니 장군이 세상을 떠남에 따라, 이슬람혁명수비대 쿠드스군의 지휘를 에스마일 가아니 준장에게 맡긴다”고 밝혔다. 하메네이 엑스(X) 캡처

호르무즈 이어 홍해까지…사우디 원유 수출 ‘진퇴양난’

 

가아니가 지난 7월 공개적으로 거론한 예멘에서도 전선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이란이 ‘저항의 축’으로 부르는 역내 친이란 세력인 후티가 홍해의 관문인 바브엘만데브 해협의 주요 거점을 잇달아 장악하면서다.

 

후티는 지난 10일 홍해 연안의 전략적 항구도시 모카를 장악한 데 이어 이튿날 바브엘만데브 해협의 페림섬까지 진출했다. 페림섬은 해협을 두 갈래 항로로 나누는 전략적 요충지다. 예멘 정부군이 철수한 뒤 후티 병력이 섬에 진입하면서 바브엘만데브에 대한 후티의 통제력도 크게 강화됐다.

 

후티의 진격은 사우디의 원유 수출에도 위협이 되고 있다. 사우디는 동쪽의 호르무즈 해협과 서쪽의 홍해를 통해 원유를 수출한다. 호르무즈 통항이 어려워지면 동부 유전지대에서 생산한 원유를 동서 송유관을 통해 홍해 연안 얀부항으로 보내 수출할 수 있다.

 

하지만 동서 송유관마저 피격되고, 홍해로 빠져나가는 관문인 바브엘만데브에서는 후티가 핵심 거점을 장악했다. 사우디로서는 호르무즈를 우회하는 육상·해상 수송로가 동시에 위협받는 상황이다.

 

반대로 이는 이란에 유리하다. 호르무즈 통항 차질에 이어 홍해의 핵심 해상로까지 흔들릴 경우 국제유가가 오르면서 미국과 사우디의 부담도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우디의 위기감도 커지고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후티와의 전투를 위한 군사 지원을 요청했다. 하지만 미국은 직접적인 군사개입에는 선을 긋고 정보 지원 등에 무게를 두는 것으로 알려졌다. 호르무즈에 군사력을 집중한 상황에서 예멘에 또 다른 전선이 형성되는 데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풀이된다.

 

가아니가 예멘을 언급하고 이라크 측과 접촉한 사이 예멘과 사우디를 중심으로 무력 충돌이 격화되고, 이라크까지 긴장에 휩싸이고 있다. 이번 중동 전쟁을 더 이상 호르무즈 해협에 국한된 충돌로만 보기 어려워진 이유다.

지난 2020년 9월 24일 부산 남구 해군작전사령부 부산작전기지에서 파병길에 오르는 최영함. 뉴시스

혁명수비대 ‘정보통’ 17년 만에 바시즈 지휘봉

 

트럼프 대통령이 연말 종전을 언급하고 있지만 이란 내부에서는 장기전에 대비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10일 혁명수비대 정보조직을 13년간 이끌었던 호세인 타엡을 바시즈 수장에 다시 임명한 것이 대표적이다.

 

타엡은 2009년 대선 전후 바시즈 사령관을 지냈다. 2009년 이란 대선 이후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을 당시 바시즈를 지휘했으며, 이후 혁명수비대 정보조직 수장으로 자리를 옮겨 2022년까지 약 13년간 재임했다. 바시즈는 이란 전역의 지역사회와 대학, 관공서, 모스크 등에 조직망을 두고 있다. 전쟁 장기화에 대비해 정보·방첩과 내부 통제 역량을 강화하려는 인사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처럼 이란은 대외 군사 네트워크와 국내 정보·통제 체계를 동시에 강화하고 있다. 국외에서는 가아니가 역내 친이란 세력과의 연결망을 관리하고, 국내에서는 정보조직 수장 출신인 타엡이 바시즈를 지휘한다. 미국과의 장기전에 대비해 대내외 전열을 정비하는 모습이다.

지난 11일(현지시간) 예멘 수도 사나의 알사빈 광장에서 후티 지지자들이 항구도시 모카 지역 장악을 지지하는 야간 집회를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대통령 뺨까지 때렸다”…막강한 혁명수비대 권력

 

전선이 확대되면서 우리 정부의 대이란 소통 체계도 중요해지고 있다. 우리 정부는 이란 외무부와 소통 채널을 유지하고 있지만, 혁명수비대와의 위기관리 소통은 또 다른 문제다. 이란의 군사·안보 의사결정에서 외무부를 비롯한 행정부가 갖는 권한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란에서 대통령과 행정부의 제한적인 권한은 2010년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미국 외교전문에 잘 드러난다. 외교전문에는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당시 대통령이 그해 1월 국가안보회의에서 모하마드 알리 자파리 당시 혁명수비대 총사령관에게 뺨을 맞았다는 정보원의 전언이 담겼다. 아마디네자드가 반정부 시위에 대응해 언론을 비롯한 개인·사회적 자유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자파리가 격분해 뺨을 때렸다는 내용이다.

 

이란은 대통령 위에 최고지도자가 있고, 최고지도자가 군 통수권을 행사하는 ‘옥상옥’ 권력구조를 갖고 있다. 이란 대통령과 외무장관이 외교·안보 분야의 모든 의사결정을 주도하기 어려운 배경이다.

 

외무장관이 군부의 움직임을 제때 파악하지 못한 사례도 있다. 2020년 1월 혁명수비대가 우크라이나국제항공 민항기를 미사일로 격추해 176명이 숨졌을 당시 외교장관이던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는 관련 사실을 제때 전달받지 못했다고 훗날 밝혔다.

 

2021년 공개된 비공개 인터뷰 녹취에 따르면 자리프는 민항기 격추 이틀 뒤 알리 샴카니 당시 최고국가안보회의 사무총장과 모하마드 바게리 군 총참모장 등이 참석한 회의에서 미사일 격추 가능성을 제기했고, 참석자들은 이를 문제 삼아 자리프를 질책했다. 참석자들은 오히려 자리프에게 미사일 격추 사실을 부인하는 트윗을 올리라고 요구했다.

 

한국군의 호르무즈 파병이 현실화할 경우 이란과의 위기관리 채널은 더욱 중요해진다. 혁명수비대와 우발적으로 충돌하거나 한국 선박을 둘러싼 긴급 상황이 발생하면 이란 측과 즉각적인 의사소통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란 외무부조차 혁명수비대의 군사행동을 제때 파악하지 못한다면 한·이란 외교장관 간 통화만으로 위기를 관리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정부가 파병 여부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최고지도자실과 혁명수비대에 우리 측 의사를 신속하게 전달할 수 있는 소통 체계가 갖춰져 있는지도 점검할 필요가 있다. 우발적 충돌이 실제 교전으로 번지는 것을 막으려면 현장에서 오판을 차단할 수 있는 위기관리 채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