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훈 기자] 객관적인 전력이 열세라는 것은 자명했다. 그런데 이렇게나 차이가 날 줄은...한국 남자배구 대표팀이 세계랭킹 6위이자 명실상부 아시아 최강인 일본을 만나 힘 한 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셧아웃 패배를 당했다. 잠시나마 꿈을 꿨던 2028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 직행 티켓도 사라지고 말았다.
이사나예 라미레스(브라질) 감독이 이끄는 한국 남자배구 대표팀은 12일 일본 후쿠오카 기타큐슈 시립체육관에서 열린 2026 아시아선수권 4강전에서 일본에 0-3(13-25, 11-25, 14-25) 완패를 당하고 말았다.
지난 10일 한국은 고전이 예상됐던 중국과의 8강전에서 세터 한태준(우리카드)의 물 오른 경기 운영 아래 허수봉(현대캐피탈)-임동혁(대한항공)의 ‘좌우쌍포’가 나란히 21점씩을 폭격하며 중국 블로커들을 유린했고, 미들 블로커 이상현(상무)도 우리카드 시절 오랜 기간 호흡을 맞춘 한태준과 찰떡 호흡을 자랑하며 14점을 올렸다.
4강 상대는 개최국이자 아시아 최강인 일본. 2026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에서도 내로라하는 유럽 강호들을 연이어 쓰러뜨리며 예선 라운드 12전 전승을 거둔 강팀이었다. 아포짓 니시다 유지, 아웃사이드 히터 다카하시 란, 이시카와 유키로 이어지는 삼각편대를 앞세운 일본의 ‘황금세대’는 현 시점 탈아시아 수준임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중국전에서 보여준 한국의 강점을 발휘한다면 승리는 장담할 순 없어도 세트별로 대등한 경기력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감을 갖게 했다.
뚜껑을 열자 일본은 너무나 강했다. 한국은 강서브로 일본 리시버들을 무너뜨리려 했지만, 일본은 서브 에이스 허용을 최소화했고, 니시다와 다카하시, 이시카와의 강한 공격력으로 한국 코트를 초토화시켰다. 반면 한국 리시버들은 일본의 서브에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이날 서브 득점에서 2-10으로 밀린 게 그 증거다. 그나마 블로킹 득점에선 6-8로 대등하게 맞섰으나 공격력에서 상대가 되지 못했다. 공격 득점에서 19-43으로 밀리다보니 세트별로 15점을 넘기지도 못하고 완패했다. 흡사 성인들과 중고교생이 경기를 하는 듯한 느낌을 줄 정도였다.
1세트부터 일본의 맹공을 버티지 못하고 10-20으로 더블 스코어가 되며 일찌감치 세트를 내준 한국은 2세트도 0-7로 시작하며 세트 초반에 이미 백기를 들어야했다.
3세트에 변화를 주기 위해 라미레스 감독은 주전 세터를 황승빈(현대캐피탈)으로 교체했고, 아웃사이드 히터 한 자리도 임성진(상무) 대신 정한용(대한항공), 미블 블로커 한 자리도 차영석(KB손해보험) 대신 박창성(OK저축은행)을 기용했다. 박창성이 란의 공격을 가로막아 선취점을 올린 뒤 허수봉이 니시다의 공격을 막아냈고, 박창성이 다시 한 번 니시다의 공격을 차다하며 3-0으로 앞서나가며 분위기가 반전되는 듯 했다. 그러나 상대 미들 블로커 오노데라의 서브 때 내리 5점을 내주며 6-8 역전을 허용했고, 이후론 쭉쭉 밀리며 3세트마저 15점을 넘기지 못하고 내줬다.
팀 내 최고득점이 6점의 허수봉일 정도로 한국은 아무런 힘을 내지 못했다. 주포로 나선 임동혁은 25번의 공격을 시도해 단 5점에 그쳤다. 공격 성공률은 20%에 불과했다.
반면 일본은 이시카와가 65%의 공격성공률로 17점을 몰아쳤고, 다카하시가 59%의 성공률로 14점, 니시다는 71%의 성공률로 10점을 몰아쳤다. 삼각편대의 공격 성공률이 이렇게 높았으니 한국으로선 이길래야 이길 수 없던 경기였던 셈이다. 한국과 일본 남자배구의 벌어진 격차가 ‘넘사벽’이라는 것만 확인할 수 있었던 한 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