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가족이 모여 전을 부치고 음식을 장만하던 추석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명절 음식을 처음부터 직접 만드는 가정은 줄고 간편식을 사서 상을 차리거나 아예 연휴를 이용해 여행을 떠나는 사람이 늘면서다.
소비 변화는 홈쇼핑 판매 상품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10년 전 명절 준비의 필수품으로 꼽혔던 냄비와 프라이팬 등 주방용품 판매 비중은 절반 아래로 떨어진 반면 식품과 건강 관련 상품의 비중은 크게 높아졌다.
13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GS샵이 2015년과 2025년 각각 추석 연휴를 앞둔 3주 동안 TV홈쇼핑과 모바일 앱에서 판매된 상품 매출을 비교한 결과 식품 매출 비중은 9.3%에서 17.9%로 8.6%포인트 높아졌다. 같은 기간 식품 매출액은 80% 늘었다.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 것은 주방용품이다. 냄비와 프라이팬 등을 포함한 주방용품 매출 비중은 8.0%에서 3.3%로 떨어졌다. 매출액도 10년 새 38% 감소했다.
명절 음식을 직접 만들기 위해 조리도구를 장만하는 수요는 줄고, 손쉽게 상을 차릴 수 있는 먹거리를 구매하는 소비자가 늘어난 셈이다. 가족이 한집에 모여 며칠씩 명절을 보내던 방식이 바뀐 것도 영향을 미쳤다.
건강 관련 상품은 식품 못지않게 몸집을 키웠다. GS샵의 건강용품·식품 매출 비중은 2015년 7.0%에서 2025년 15.3%로 두 배 넘게 높아졌고 매출액은 103% 증가했다. 홍삼을 비롯한 건강기능식품이 중장년층을 위한 대표적인 명절 선물로 자리 잡은 영향이 컸다.
옷과 화장품을 찾는 고객도 늘었다.
GS샵에서 의류가 차지하는 매출 비중은 같은 기간 20.8%에서 23.7%로 높아졌다. 이미용 상품은 15.2%에서 16.4%, 신발은 5.3%에서 7.6%로 상승했다.
명절 연휴를 고향집이나 집 안에서만 보내지 않고 여행이나 외출에 활용하는 사람이 늘어난 흐름과 맞닿아 있다.
GS샵이 지난해 7월 고객 14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이런 변화가 나타났다. 명절음식을 만들 계획이라는 응답은 2024년 58.7%에서 2025년 48.3%로 10.4%포인트 줄었다.
가족모임을 계획한다는 응답도 81.1%에서 71.3%로 9.8%포인트 감소했다. 반면 국내·해외여행 등을 계획한다는 응답은 같은 기간 25.2%에서 42.7%로 17.5%포인트 뛰었다.
GS샵은 달라진 수요에 맞춰 이번 추석 식품과 건강기능식품, 패션·뷰티 상품 편성을 확대했다.
올해 설 명절에 호응을 얻었던 프리미엄 김부각 '바삭(VASAK)'을 이달 초 다시 선보였고 '이연복 해물누룽지탕', '해운대 한우등심불고기', '이상민 갈비찜' 등 별도의 조리 부담을 줄일 수 있는 간편식도 편성했다.
건강기능식품도 선물 수요를 겨냥했다. 지난 11일 '정관장 홍삼진고 데일리'를 방송한 데 이어 오는 23일에는 위 건강기능식품 '프롬바이오 매스틱'을 선보인다. 뷰티와 패션 역시 추석 선물 패키지와 2026년 가을·겨울(FW) 신상품을 중심으로 판매한다.
경쟁 업체들도 추석을 앞두고 식품과 건강 관련 상품을 전면에 세우고 있다.
CJ온스타일은 이달 추석을 겨냥한 프리미엄 식품관 '더마스터(The Master)'를 열었다. 가격대만으로 상품을 나누는 대신 산지와 생산자, 품종, 생산 방식 등을 기준으로 상품을 선별한 것이 특징이다.
'흑백요리사2' 출연자로 알려진 '서울엄마'의 제일향미를 비롯해 1++ 한우암소 미경산우 선물세트, 무항생제 한우 사골곰탕 등을 구성했다. 이탈리아 트러플 치즈와 일본 장어 브랜드의 카바야키 장어 구이 등 해외 먹거리도 판매한다.
명절 선물을 단순한 규격 상품이 아닌 '먹는 경험'으로 고르는 수요가 늘었다고 보고 식품의 산지와 생산 과정까지 차별화 요소로 내세운 것이다.
패션 수요에도 힘을 주고 있다. CJ온스타일은 지난달 21일부터 이달 11일까지 약 150개 브랜드가 참여하는 '2026 FW 패션 쇼케이스'를 진행했다. 입추 이후 10일간 주문량을 분석한 결과 점퍼와 코트 주문량이 직전 10일보다 각각 29%, 14% 늘었고 스웨트셔츠 주문량은 338% 증가했다.
명절과 가을철 패션 수요가 겹치는 시기를 겨냥해 식품 일변도였던 명절 판촉 범위를 패션으로 넓힌 셈이다.
롯데홈쇼핑도 온라인몰을 중심으로 추석 선물 수요를 공략하고 있다.
올해 추석 기획전에서는 한우·갈비부터 과일, 수산물, 버섯, 건강식품, 육포, 한과, 커피·차, 생활용품 등 상품을 폭넓게 구성했다. 별도의 과일·견과 선물세트 기획전에서는 사과와 배, 혼합과일, 견과류, 곶감, 버섯 등 40여개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특히 하루견과와 같은 간편 건강 먹거리도 추석 선물 상품으로 전면에 배치했다. 과거 햄·식용유 등 정형화된 명절 선물세트에서 벗어나 건강과 개인 취향을 함께 고려하는 상품 구성이 늘어난 모습이다.
홈쇼핑 밖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나타난다.
쿠팡은 오는 27일까지 '식품 추석맞이 할인전'을 열고 명절 식재료와 간식 등을 판매한다. 추석 선물 상품도 건강식품과 음료, 통조림, 조미료·오일, 견과류, 커피·차 등으로 구성하고 가격대별·프리미엄 선물 추천관을 따로 운영한다.
결국 홈쇼핑과 이커머스 업체들이 올해 추석에 힘을 주는 상품은 비슷한 방향을 향한다. 직접 장시간 조리해야 하는 상품보다 바로 먹거나 조리가 쉬운 식품, 부모 세대를 겨냥한 건강 상품, 연휴 외출에 필요한 패션·뷰티 상품이 앞자리로 올라오고 있다.
10년 전 추석 소비가 '온 가족이 모여 무엇을 만들 것인가'에 맞춰져 있었다면 이제는 '각자 연휴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가 상품 선택을 가르는 기준이 되고 있다. 냄비와 프라이팬이 밀려난 자리를 간편식과 건강식품, 옷과 여행이 채우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