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댈러스의 두 공화당

부시 중심 전통적 공화당원들
트럼프 앞세운 마가와 대립각
美 우선시 고립주의 흐름 비판
주류 세력 향한 경고 의미심장

지난 9·10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열린 공화당 ‘중간선거 전당대회’ 기간 텍사스 안에서 드러난 것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필두로 한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진영과 민주당 진영 간의 균열뿐만이 아니었다. 마가 대 민주당이 서로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집회 등을 통해 눈에 띄는 방식으로 대립했다면, 조지 W 부시 대통령으로 대표되는 댈러스 안의 전통적 공화당원은 마가와 조용히 맞섰다.

부시 전 대통령은 전당대회가 열리는 9일 9·11 테러 25주년을 이틀 앞두고 전당대회장인 아메리칸에어라인스센터에서 차로 10여분 떨어진 댈러스 부시도서관에서 “미국인들이 9·11의 교훈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며 미국의 고립주의 부상을 비판했다. 9·11 테러 당시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냈고 이후 국무장관을 역임한 콘돌리자 라이스도 함께했다.

홍주형 워싱턴 특파원

부시 전 대통령은 “우리가 군대를 보낼 필요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그들과 함께하고 그들 곁에 서야 한다”며 “250년 전 우리 역시 그런 일을 겪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는 모든 사람이 자유를 원한다는 믿음”이라고 말했다. 미국 건국 250주년인 올해 미국 독립전쟁의 정신을 소환하며 해외의 자유를 위한 투쟁에 미국이 관여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으로,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현 트럼프 시대의 고립주의 흐름을 비판한 것으로 해석된다.



부시 전 대통령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자신의 잠재력을 실현하는 법을 배운 여성들이 이제 그 기회를 갖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미국은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아프가니스탄 철군의 길을 열었고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철군을 완료했다. 다시 집권한 트럼프 대통령은 2025년 4월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개발·인도적 지원도 중단했다.

코네티컷주 뉴헤이븐에서 태어난 부시 전 대통령은 2살 때 텍사스로 이주한 뒤 사업가로 젊은 시절을 보내고 1988년 댈러스에 자리를 잡았다. 텍사스 주지사, 대통령 임기를 마치고 2009년 다시 댈러스로 돌아온 그는 이곳에 살며 2013년 부시 도서관·박물관 등을 세웠다. 댈러스는 부시 전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이자 ‘노년의 터전’인 셈이다. 이곳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에 그는 참석도, 언급도 하지 않았다. 대신 그가 내놓은 것은 고립주의에 대한 비판이었다.

부시 전 대통령에는 늘 민주·공화 양쪽이 모두 각자의 이유로 비판하는 이라크 전쟁의 그림자가 따라붙는다. 하지만 적어도 고령의 전직 대통령이 자신의 대통령 임기 중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던 9·11 25주년을 앞두고 현재 미국의 고립주의 흐름과 관련해 내놓은 메시지에는 진정성이 있다고 본다.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는 물론이고, 미국의 정체성을 뒤흔들고 있는 현재 공화당의 주류 세력에 대한 경고라는 점에서 그렇다. 당시엔 적어도 ‘세계의 자유를 위해 투쟁한다’는 미국 보수의 긍지가 있었다. 지금 마가가 장악한 공화당과는 결이 분명히 다르다.

9·11 추모 세션이 없지 않았지만, 이번 전당대회에서 더 큰 목소리가 나온 것은 지난해 9월10일 피살된 마가 지도자 찰리 커크에 대한 추모였다. 많은 연사가 커크를 추모하고 영웅시했으며, 미국 보수가 오랫동안 결집했던 촉매제가 됐던 9·11에 대한 언급은 피상적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따로 워싱턴에서 추모식을 가졌지만, 전당대회에서는 민주당 측 인사가 미국이 9·11 테러를 당할 만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는 공격의 맥락에서만 9·11을 언급했다.

마가는 민주당뿐만 아니라 공화당 내 미국의 오래된 보수주의와도 싸우고 있다. 물론 마가라는 ‘변종 정치세력’이 출현한 것 자체가 기존 정치세력의 실패와 무관하지 않지만, 공화당 내에 이 같은 목소리가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이번 텍사스 공화당 상원의원 경선에서 마가 성향의 켄 팩스턴 후보에게 패한 전통 공화당원 존 코닌 상원의원 등이 대표적이다. 현직 의원 중에도 로저 위커 상원 군사위원장과 톰 틸리스 상원의원, 미치 매코널 상원의원 등이 목소리를 낸다. 이들의 목소리가 남아 있는 한, 마가가 즉 공화당이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