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코트 최강자 꺾고… 리바키나, ‘테니스 퀸’ 등극 자축

US오픈 여자단식 첫 정상

“전혀 예상 못해… 뉴욕이 좋아져”
8강서 이미 세계 랭킹 1위 확보
한 해 메이저 2관왕, 역대 3번째
‘커리어 그랜드 슬램’ 佛오픈 남아

사발렌카, 대회 3연패 도전 고배
4년 만에 메이저 무관 시즌 ‘굴욕’

승부가 끝나는 순간 요란한 세리머니는 없었다. 얼굴을 감싸며 눈물짓지도 코트에 무릎 꿇거나 드러눕지도 않았다. 엘레나 리바키나(27·카자흐스탄)는 올 시즌 테니스 마지막 메이저대회인 2026 US오픈(총상금 1억800만달러) 우승이 확정되자 잔잔한 미소와 함께 두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인 뒤 네트를 향해 걸어갈 뿐이었다. 하지만 이는 세계 여자 테니스의 권력이 그의 손에 들어오는 장면이었다.

 

여자 테니스 세계 2위 리바키나가 13일 미국 뉴욕의 플러싱 메도스에서 열린 대회 14일째 여자 단식 결승에서 1위 아리나 사발렌카(벨라루스)를 2시간21분 만에 2-1(6-4 5-7 6-2)로 물리쳤다. 리바키나의 US오픈 첫 우승이자 2022년 윔블던, 2026년 호주오픈에 이어 통산 세 번째 메이저대회 우승이다.

 

불과 3주 전만 해도 이런 상상하기 어려운 결말이었다. 지난달 신시내티오픈 8강전 도중 발 부상으로 기권한 그는 이번 대회를 앞두고는 이레 동안 훈련조차 하지 못했다. 대회 전날까지도 출전 여부가 불투명했을 정도였지만 정상에 오르는 쾌거를 달성했다.

대권교체 엘레나 리바키나(오른쪽)가 13일 미국 뉴욕의 플러싱 메도스에서 열린 US오픈 테니스 대회 여자 단식 결승에서 아리나 사발렌카를 꺾고 우승을 차지한 뒤 밝은 표정으로 트로피를 들어 올리고 있다. 뉴욕=AFP연합뉴스

무엇보다 리바키나는 올 한 해 4개 메이저대회 중 두 대회를 석권하면서 사발렌카를 제치고 여자 테니스 ‘최강자’로 올라섰다. 최근 10년간 춘추전국시대가 이어졌던 여자 단식에서 한 해 두 대회에서 우승하는 선수가 나온 건 2022년 이가 시비옹테크(프랑스오픈·US오픈·8위), 2024년 사발렌카(호주오픈·US오픈)에 이어 올해의 리바키나까지 세 차례뿐이다. 우승 뒤 리바키나는 “이런 결과가 있을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어쩌다 보니 모든 게 내 편으로 맞아떨어졌다”면서 “10년째 이 대회에 왔는데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이제 뉴욕이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며 웃었다. 리바키나는 우승 상금으로 550만달러(약 74억원)를 받는다. 리바키나는 프랑스오픈에서 우승하면 4대 메이저대회에서 모두 정상에 서는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이룬다.

 

리바키나는 이미 8강전에서 정친원(중국·121위)을 꺾고 준결승에 오를 때 대회 후 발표될 새로운 세계랭킹에서 1위를 확보해 둔 상태였다. 이번 우승은 이를 자축하는 선물이기도 했다. 모스크바에서 태어나 6세에 라켓을 잡기 시작한 그는 투어 활동에 필요한 충분한 지원을 받기 어려웠던 2018년 카자흐스탄의 제안을 받아들여 국적을 바꿨고 프로 데뷔 이후 처음으로 세계 1위가 됐다.

 

리바키나는 사발렌카와 통산 전적도 8승10패로 격차를 좁혔다. 무엇보다 사발렌카가 가장 강한 하드코트 대회 결승 대결에서 이겼다는 점에서 리바키나에게 의미가 컸다. 사발렌카는 최근 4년 동안 호주오픈과 US오픈 결승에 모두 진출해 우승과 준우승을 각각 4차례 일궈낼 만큼 하드코트의 강자였다. 그러나 이번 패배로 사발렌카는 US오픈 3연패에 실패했고 통산 5번째 메이저대회 우승도 다음 기회로 미뤘다. 랭킹 2위로 내려앉게 된 사발렌카는 올해를 메이저대회 무관으로 마친다. 2022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리바키나는 184㎝의 큰 키에서 내리꽂는 강력한 서브로 약한 리턴을 끌어낸 뒤 두세 번의 스트로크 안에 승부를 결정짓는 경기 방식을 선호한다. 이날 결승에서도 리바키나는 장기인 강한 서브에 이날 따라 다소 불안했던 사발렌카의 백핸드를 집요하게 노리는 샷을 엮어 1세트를 챙겼다.

 

사발렌카는 팽팽했던 2세트를 가져오며 반격에 나섰지만 3세트 들어 실책을 쏟아내며 무너졌다. 감정 표현에 숨김이 없는 사발렌카는 라켓으로 바닥을 내리치는 등 여러 번 좌절감을 드러냈고, 냉정한 리바키나는 흐름을 가져갔다. 리바키나가 3세트 사발렌카의 두 번째, 네 번째 서브게임을 브레이크하면서 승기는 기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