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출혈 후유증으로 혼자 걷기도 어려웠던 근로자가 회사의 요구에 따라 조기 복직한 뒤 숨졌다. 법원은 과중한 업무와 스트레스가 기존 질환을 악화했다며 업무상 재해를 인정했다.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8부(양순주 부장판사)는 숨진 A씨의 배우자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 취소 소송에서 최근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제조기업 총무팀 부장으로 근무하던 A씨는 과중한 업무에 따른 스트레스를 호소하던 중 2021년 11월 자택에서 잠을 자다가 뇌출혈이 발생해 입원 치료를 받았다.
A씨는 퇴원 후에도 시신경 손상으로 왼쪽 눈의 시력이 절반가량만 회복됐고, 근력이 충분히 돌아오지 않아 혼자 걷기 어려운 상태였다. 의료진은 퇴원 후 약 12주 동안 경과를 관찰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A씨도 회사 임원에게 건강을 회복하려면 최소 3개월이 필요해 당장 복직하기 어렵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회사는 퇴사자가 생겨 결산 업무를 맡을 사람이 없다며 조기 복직을 요구했다. A씨가 재차 복직이 어렵다는 입장을 전했지만 회사는 결산 업무만이라도 처리해 달라고 요청했다.
결국 A씨는 퇴원한 지 약 10주 만인 2022년 2월 회사로 돌아갔다. 복직 후에는 당초 요청받은 결산 업무뿐 아니라 총무팀 업무 전반을 담당했고, 업무와 관련해 질책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이 과정에서 동료에게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서 타이레놀을 세 알 먹었다. 화가 나서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이후 A씨는 기존에 앓던 궤양성 대장염 증상이 악화해 다시 입원했다. 입원 중에도 노트북으로 회사 업무를 처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퇴원 후 출근을 재개한 A씨는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고, 이후 위약감과 혈변, 발작, 혼수상태 등의 증상을 보여 중환자실에서 치료받다가 2022년 9월 숨졌다. 사망진단서에 기재된 직접 사인은 자발성 뇌내출혈이었다.
A씨의 배우자는 남편의 사망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며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와 장의비를 청구했다. 공단은 업무와 사망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며 부지급 처분했고, 배우자는 이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A씨가 건강을 충분히 회복하지 못한 상태에서 회사의 요구로 복직한 뒤 과도한 업무 부담에 시달렸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A씨는 퇴원 후에도 12주간 경과 관찰이 필요한 상황이었는데, 회사의 요청에 따라 10주 만에 복직할 수밖에 없었다”며 “복직 이후 과중한 업무와 업무상 질책 등 극심한 육체적·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어 “업무상의 스트레스가 망인이 기존에 앓고 있던 뇌출혈을 자연적인 진행 속도 이상으로 악화시켰거나, 기존에 앓고 있던 궤양성 대장염을 자연적인 진행 속도 이상으로 악화시켜 뇌출혈을 유발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과로와 스트레스가 A씨의 병세를 악화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신경외과와 소화기내과 감정의의 소견도 판단 근거로 삼았다.
재판부는 “설령 스트레스와 궤양성 대장염 사이에 의학적·자연과학적 인과관계가 명백히 증명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규범적 관점에서는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