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스며든 자리마다… 되살아난 고향의 잔상 [신리사의 사랑으로 물든 미술]

韓 기하추상 선구자 이준의 ‘회향’ ‘월영’

남해서 태어난 작가, ‘빛과 자연’ 탐구
초기 인상주의·입체주의 기법 주목
구상 거치며 추상으로 화면 단순화
색면과 패턴 활용 달·산봉우리 표현
“영원한 노스탤지어” 찬란한 풍경 담아

가을 달빛이 가장 좋은 밤, 추석. 달은 가득 차고, 곡물은 익고, 열매는 여문다. 자연은 한 해의 시간을 순환하여 결실이라는 자리로 되돌아온다. 떠난 이들이 고향으로 발걸음을 옮기듯, 시간도 계절도 다시 돌아온다.

◆돌아가는 길



한국 기하 추상의 선구자 이준(1919-2021)의 ‘회향(回鄕)’은 ‘고향으로의 귀환’을 찬란한 색채와 기하학적 구성으로 펼쳐낸다. 넉넉하게 차오른 보름달을 연상시키는 형상 아래, 솟아오른 산봉우리를 닮은 직선들이 화면을 가로지른다. 빛을 향해 가지를 뻗는 생명처럼, 선들은 하늘을 향해 솟구친다.

이준, ‘월영(月影)’(1992), 캔버스에 아크릴릭, 164×219㎝. 작가 유족 제공

중앙에는 씨실과 날실로 직조된 듯한 작은 패턴들이 가득하다. 프리즘을 통과한 빛의 결정일까. 우측 하단에는 수평의 선들이 프레임 너머로 이어질 듯 뻗어나간다. 화면 안으로 들어오는지, 밖으로 나아가는지 알 수 없는 선들은 끝없이 펼쳐진 공간을 항해하는 돛단배처럼 또 하나의 움직임을 만든다. 달의 인력이 밀물과 썰물을 만들어내듯, 오고 가고 떠나고 향하는 움직임들이 한 화면에서 역동한다.

◆빛의 화가

이준은 1919년 경남 남해에서 태어났다. 1939년 일본 태평양미술학교에 입학해 서구의 회화 기법을 익혔다. 특히 유럽 인상주의에서 빛을 다루는 방식과 입체주의적 형태 표현에 주목했다. 초기에는 이러한 관심을 반영한 도시의 인물과 풍경, 정물 등 구상 회화를 많이 남겼다.

광복 이후 귀국한 그는 자신이 나고 자란 한국의 모습을 표현하는 데 집중하기 시작했다. 한국전쟁 중에는 동료 예술가들과 함께 종군 문인단인 ‘문총구국대’의 일원으로 활동하며 현실에 깊이 천착했고, 휴전 이후에는 노점에서 과일을 파는 소녀의 모습 등 지극히 일상적인 주제를 그렸다. 그러나 구체적인 장면을 그리는 동안에도 그의 관심은 단순한 재현에 머무르지 않았다. 형태를 과감하게 변용하고 빛과 어둠의 대비를 실험하는 등, 화면에는 이미 추상을 향한 조형적 탐구가 자리 잡고 있었다.

1960년대부터 본격적인 추상의 길로 들어선 그는 100세가 넘는 고령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법을 실험하며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러나 그의 일생을 관통하는 변하지 않는 주제는 ‘빛’과 ‘자연’이었다. 고향 남해의 굽이진 산과 바다, 타오르는 태양과 안온한 달빛은 평생에 걸친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그는 남해를 “빛의 고향”이자 “색의 원천”이며 “영원한 노스탤지어”라고 불렀다. 그리고 빛과 형체, 색채가 어우러진 자연을 보며 “색을 통해 빛을 느끼고 싶었고, 빛을 통해 색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자연에 대한 순수한 인상과 심상을 담아내는 과정에서 구상과 추상의 경계는 무화되었다. 산의 능선을 따라 흐르는 빛과 바다 위에 번지는 색, 나뭇가지 사이로 스며드는 햇빛과 밤하늘에 떠오른 달의 형상은 점차 단순한 형태와 색채로 환원되었다. 기하학적으로 구성된 화면은 분명 추상화의 과정을 거친 결과물이지만, 이는 누구나 직관적으로 감응할 수 있는 정갈하고 단순한 형태로 대상의 정수를 남겨두기 위한 선택이었다. 구체적인 대상을 지워내는 것이 아니라, 빛과 어둠, 색과 형태의 관계를 직관적으로 조직함으로써 오랫동안 마음에 품어온 자연의 감각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이준, ‘회향(回鄕)’(2002), 캔버스에 아크릴릭, 130×130㎝. 작가 유족 제공

◆달의 그림자

‘회향’이 달이라는 상징을 중심으로 고향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을 표현했다면, ‘월영(月影)’은 고향을 향한 마음의 깊이를 그린다. 달의 형태는 둥근 원으로 직관적으로 제시되지만, 화면을 채우는 것은 달 그 자체라기보다 달빛이 품은 아득한 세계에 가깝다.

어둠 속에서 달빛이 닿은 곳들은 색면과 촘촘한 패턴으로 분절되어 그려진다. 희미하게 수평으로 뻗어나가는 직선들은 은은한 달빛의 광선을 연상시키고, 작은 격자들은 달이 머금은 빛처럼 화면 곳곳에서 반짝이며 달빛이 남긴 잔상으로 머문다. 화면을 넓게 가로지르는 검은 면조차 자세히 들여다보면 수많은 격자들로 채워져 있다. 칠흑 같은 어둠으로 보이던 화면은 수많은 빛의 조각으로 풀어지고, 빛과 어둠은 서로를 밀어내지 않은 채 한 화면 안에 함께 머문다.

달빛이 어둠을 몰아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스며들듯, ‘월영’의 어둠 역시 빛의 부재로 남아 있지 않다. 깊고 검은 면 안에도 촘촘한 격자들이 빛의 결정처럼 곳곳에 남아 있다. 달의 그림자는 그렇게 빛이 사라진 자리가 아니라, 빛과 어둠이 겹쳐진 깊이로 다가온다.

우리가 떠나온 고향, 남겨두고 온 것들도 물리적으로는 부재하지만 기억 속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아득한 시간과 거리 속에서 그것들은 희미한 잔상으로 다시 되살아난다. ‘월영’의 달빛은 그렇게 어둠에 가려져 있던 곳까지 스며들며, 잊혀져 있던 것들과의 거리를 촘촘하게 꿰어낸다. 어둠과 정적 속에서 더욱 선명해지는 기억. ‘월영’은 떠나온 이들의 마음에 남은 고향의 풍경이다.

◆본래 있던 자리로

고향 남해의 찬란한 자연이 그에게 “영원한 노스탤지어”였던 것처럼, 이준의 작품에는 언제나 회귀의 감각이 흐른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과거의 시간이나 지나온 장소로 되돌아가는 일에 대한 것만은 아니다.

이준의 작품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산과 바다, 태양과 달, 빛과 어둠은 모두 시공간을 넘어 ‘자연’이라는 근원적 세계를 가리킨다. 이준이 그려낸 ‘고향’은 우리가 때때로 잊고 살아가는, 그러나 결코 잃어버릴 수는 없는 인간 존재의 본질이다.

따라서 이준의 노스탤지어란 지나간 것을 슬퍼하는 마음이 아니라,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음에도 망각하며 지내온, 찬란한 자연과 하나되어 느끼는 생의 환희에 대한 재발견이다. 이곳에서 ‘돌아감’이란 자연과 빛의 본래적 감각 속으로 다시 스며드는 일이다.

신리사 미술사·학고재 기획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