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2년 96세를 일기로 별세한 엘리자베스 2세 전 영국 여왕이 생전에 가장 자주 방문한 외국은 캐나다였다. 무려 22번에 이른다. 이는 프랑스(13번)보다 훨씬 많은 숫자다. 물론 영연방 회원국이자 영국 국왕을 자국 국가원수로 섬기는 캐나다를 ‘외국’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어폐가 있다. 캐나다는 여왕이 다스린 여러 나라들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렇더라도 여왕이 캐나다를 각별히 아낀 점만은 분명하다. 그래서일까, ‘공화국으로 전환하자’는 목소리가 커지는 호주·뉴질랜드와 달리 캐나다는 여전히 영국 왕실에 대한 충성도가 매우 높은 편이다.
캐나다와 미국은 둘 다 영국 식민지로 출발했다. 18세기 후반 독립을 선언하며 영국과 완전히 결별한 미국과 달리 캐나다는 영국 자치령을 거쳐 20세기 들어서야 독립국이 되었다. 이처럼 역사는 사뭇 다르지만 양국은 기다란 국경선을 공유하는 이웃 나라로서 오랫동안 사이좋게 지내왔다. 2차대전 당시 나란히 연합국 일원이자 동맹으로 나치 독일과 싸운 것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2025년 1월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후 둘의 관계는 완전히 틀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캐나다를 ‘미국의 51번째 주(州)’, 캐나다 정상을 총리 말고 ‘주지사’(Governor)라고 각각 부르며 조롱을 일삼았다.
최근 캐나다·미국 무역 협상이 결렬됐다. 트럼프가 캐나다를 상대로 고율의 관세 부과 방침을 밝히자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는 이를 ‘선전 포고’에 비유하며 상응하는 보복 조치로 맞불을 놨다. 경제·안보 분야에서 미국에 지나치게 의존해 온 캐나다의 기존 정책이 이 같은 폐단으로 이어졌다고 여긴 카니는 유럽연합(EU)으로 눈을 돌렸다. 북미 대륙의 캐나다는 비록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유럽과 떨어져 있으나, 미국 등쌀에 못 이겨 전전긍긍할 바에야 차라리 EU를 새 파트너로 선택하는 편이 낫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1956년 시작해 어느덧 70년 관록을 자랑하는 ‘유로비전’(Eurovision) 가요 경연 대회에 유럽 국가도 아닌 캐나다가 정식으로 참여하기로 한 결정이 의미심장하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3일 캐나다가 EU의 ‘준(準)회원국’ 지위 확보 추진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현행 EU 규정상 준회원국이란 개념은 없다. 카니 역시 이 기사를 즉각 부인하며 “우리나라는 EU 회원국이 되려고 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다만 그는 “EU와 ‘독특한 동맹’(unique alliance)을 맺는 방안을 검토 중이며 곧 협의에 착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를 위해 EU를 주도하는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곧 만날 예정이라고 한다. 북미 대륙의 캐나다가 국경을 접한 미국 말고 유럽 대륙과 더 가까워지고 싶다니, ‘이웃사촌’도 이젠 옛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