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란의시읽는마음] 생물권

이원
비로소 수업이 시작된 듯하다. 어떤 식으로든 인간의 크기가 줄어들면 훨씬 보기 좋아진다고 생각하는 쪽. 비로소 예감이 켜진 듯하다. 빛은 식물들이 새들이 잊지 않고 꼭꼭 물고 오는 쪽지라고 믿는 편. 빛의 시작이나 빛의 끝을 마주친 적은 단 한 번도 없지만 빛은 여기를 통과하는 인간을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다고 믿는 편. 지켜보는 쪽은 이미 선언한 쪽. 제 안을 비운 쪽은 이미 행동한 쪽.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 콕콕 쪼아대는 소리가 들려. 가까스로 매달린 손도끼 그림자처럼 비로소 소곤거리는 수업이 시작된 듯해. 쪽지를 해석할 수 없었지만 의도를 가늠할 수 없었지만 인간은 팔 다리 몸통 머리 이렇게 분류할 때 솔직하다고 생각하는 편.

 

 볕이 내리쬐는 오후의 풀밭에서 뛰어노는 고양이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근교의 평화로운 가을 풍경이었다. 시를 읽고 나자 그 귀한 풍경이 꽃과 나무, 새, 혹은 다른 누군가 공들여 전한 메시지였음을 알게 된다. 빛은 풍경 사이사이 공평하게 머물고, 사람들 주변을 기웃거리던 고양이 역시 키를 낮춰 엉성하게 손을 내미는 사람들을 꼼꼼히 살펴보았을 것이다.

 ‘수업’은 이미 시작되었다. 빛의 수업, “인간의 크기”를 줄이는 수업. 그러나 사람이, 인간이 이 생태계의 중심이라는 낡은 감각이 우리에게는 여전히 잔존해 있다. “인간은 팔 다리 몸통 머리 이렇게 분류할 때” 가장 솔직하다는 일침은 지금 여기 생물권의 의미를 되짚게 한다.

 

 이름이 네로라고 했다. 그 오후의 검은 고양이. 물론 그가 자신을 그렇게 소개한 것은 아니지만. 한때의 풍경 속에서 그 또한 사람들을 조금쯤 귀여워했기를 바란다. 열심히 수업에 임하는 사람들을.

 

박소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