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억원 번호판과 ‘888’ 결혼 열풍까지…숫자에 꽂힌 사람들

일본 도쿄도, 지난 8월8일 혼인신고 접수 7650건
‘죽을 사(死)’ 피하고 ‘13’ 지우고…불운을 지우는 심리
전문가, “불확실성 낮추려 ‘운’ 구매”…미신에 기댄 심리적 안전장치

200억원짜리 두바이 ‘황금번호판(골드번호)’부터 하루 만에 한 달 치 혼인신고가 몰린 일본의 ‘888’ 결혼 열풍까지, 숫자 하나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현상은 나라를 가리지 않는다. 단순해 보이는 숫자가 누군가에게는 막대한 돈을 지불할만한 의미가 되고, 삶의 중요한 순간을 결정하는 기준이 될 수도 있다. 특정 숫자를 선호하거나 기피하는 다양한 사례와 그 이면에 작용하는 심리를 짚어봤다.

 

경기 수원시 팔달구청에서 체납 차량 영치 번호판을 확인하고 있는 세무과 징수팀 직원.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수원=뉴시스

 

◆ 자릿수가 부의 상징…억대 ‘황금번호판’ 등장

 

지난 9일 광주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가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서구청 공무원 10여명에 대해 강제수사에 착수했다. 이들은 차량등록 대행업체로부터 식사 접대 등을 받고 약 3년간 ‘황금번호판’을 불법 배정하기 위해 차량등록 시스템을 임의 조작한 혐의를 받고 있다. 감사 결과 국산차 118대, 수입차 228대 등 총 346건의 불법 배정 사실이 확인됐다. ‘황금번호판’은 ‘7777’이나 ‘1004’ 등 외우기 쉽거나 특정 의미가 있어 희소성을 띠는 번호를 가리킨다.

 

‘황금번호판’을 향한 관심은 해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2023년 4월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열린 한 자선 경매행사에서는 ‘두바이 P7’이라고 적힌 자동차 번호판이 5500만디르함(약 202억원)에 낙찰돼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자동차 번호판 신기록을 세웠다. UAE 당국이 발급하는 자동차 번호판은 보통 5자리로 구성되지만 자릿수가 줄어들수록 왕족이나 정부 고위급 인, 부유층이 소유한 차량을 의미한다. 

 

이날 경매에서는 ‘AA22’ 번호판이 840만 디르함(약 31억원), ‘AA19’가 490만 디르함(약 19억원)에 각각 낙찰됐다. 자동차 번호판뿐만 아니라 같은 숫자가 반복되는 휴대전화 번호 ‘971548888888’ 번호는 230만디르함(약 8억원)에 팔려 나갔다. 

 

‘두바이 P7’ 자동차 번호판이 5500만디르함에 팔린 장면. 엑스(X·옛 트위터) 계정 ‘emiratesauction’ 캡처

 

◆ ‘888’ 행운 잡아라…하루 만에 한 달 치 혼인신고 몰린 일본

 

지난 8일 일본 요미우리신문과 도쿄도 등에 따르면 지난달 8일 도쿄 62개 구·시·정·촌에 접수된 혼인신고는 총 7650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8월 한 달 동안 접수된 혼인신고 7274건 전체를 하루 만에 넘어선 수치다. 

 

일본인들은 8의 한자 ‘八’이 아래로 갈수록 넓어지는 모양을 보고 ‘번영과 발전’을 가져다준다고 여긴다. 특히 ‘8’을 옆으로 눕히면 무한대를 의미하는 기호 ‘∞’로 변한다. 이에 따라 숫자 8이 세 번 겹치는 ‘레이와 8년(2026년) 8월8일’에 맞춰 혼인신고를 하려는 인파가 집중된 것으로 보인다. ‘레이와’는 현 나루히토 일왕의 연호로 일본은 관공서 등에서 서기 대신 연호를 흔히 사용한다.

 

또한 일본어로 숫자 ‘8(하치·はち)’과 ‘3개(미쓰·みつ)’를 합친 발음이 ‘꿀(하치미쓰·はちみつ)’과 같다는 점에 착안해 도쿄도는 이날을 ‘꿀 인연의 날’로 정하고 다양한 이벤트를 열었다. 도쿄도는 이날 혼인신고 후 전용 포토 프레임에서 촬영한 사진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커플 중 8000쌍을 추첨해 ‘도쿄 포인트’ 8888포인트를 지급하는 등 다양한 혜택을 제공했다. 

 

신부에게 반지를 건네는 신랑. 게티이미지뱅크

 

◆ 4층 없는 엘리베이터와 13번 없는 탑승구

 

이처럼 숫자에 특정한 의미를 부여하는 현상은 오래됐다. 한자문화권에서는 ‘넉 사(四)’가 ‘죽을 사(死)’와 발음이 같다는 이유로 숫자 ‘4’를 피해야 할 불길한 숫자로 인식해 왔다. 특히 병원 등 일부 건물에서는 4층을 생략해 곧바로 5층으로 표기하거나 알파벳 ‘F(Four)’로 대체해 ‘4’라는 숫자 노출을 피하곤 한다. 

 

서양권에서는 숫자 ‘13’을 불길함의 대명사로 여긴다. 실제로 ‘13’을 두려워하는 심리를 의미하는 ‘트리스카이데카포비아(Triskaidekaphobia)’라는 용어까지 존재한다. 해당 배경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지만, ‘13’은 서양 문화권이 완벽한 수로 꼽는 ‘12’에 1을 더해 균형을 깨뜨린 숫자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대표적이다. 숫자 ‘12’는 1년 12달, 예수의 12사도, 올림포스 12신 등 완전·완성한 수로 통하기도 한다.

 

기독교 문화권에서는 예수의 최후의 만찬에 참석한 13명 가운데 유다가 예수를 배신하고 팔아넘겼다는 이야기에서 비롯해 13을 불운의 상징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서구권 건물에서는 13층이나 13호 표기를 건너뛴 곳이 많다. 공항·철도역, 터미널 등에서 13번 출입구나 탑승구를 배제하는 경우도 있다.

 

엘리베이터에서 숫자 ‘4’ 대신 알파벳 ‘F’를 누르는 모습.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해 구글의 생성형 인공지능(AI) ‘제미나이’로 생성한 이미지

 

◆ 불안 줄이려 ‘운’도 산다…전문가가 본 숫자 심리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을 예측하기 힘든 환경에 대응하려는 심리적 기제로 분석한다. 미신이나 관습을 맹신하지 않더라도 혹시 모를 불운을 피하고 불안감을 줄이기 위해 따른다는 것이다. 

 

곽금주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미래가 불투명하거나 자신감이 결여될 때 운이나 미신 등을 믿을 가능성이 커진다”며 “이미 부를 가진 부유층이라도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추가 비용을 감수하고서라도 일종의 ‘운’을 구매해 불운을 피하려는 경향이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