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투자 넘어 주식·채권까지… 토큰증권 ‘자산 쟁탈전’ 점화 [심층기획]

2027년 2월 제도 시행 본격화

미술품·부동산 등 비정형증권부터
금융상품인 정형증권까지 토큰화
자체 ‘메인넷’·공동플랫폼 양분화 속
증권사 자산 직접 발굴·상품화 속속

신한증권, 음원 IP 펀드 운용사 계약
미래에셋은 해외서 디지털채권 발행
수익 관건은 ‘좋은 자산’ 선점·판매
상품 다양성·후속입법 지연은 과제로

내년 2월 토큰증권 제도 시행을 앞두고 전통 금융권의 발행·유통 인프라 선점 경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단순한 디지털 시스템 구축을 넘어, 우량 자산을 직접 발굴해 금융상품으로 만들고 계좌 관리와 유통까지 전 과정을 틀어쥐는 ‘수직계열화’가 핵심 승부처로 떠올랐다. 조각투자 중심으로 논의되던 토큰증권 시장이 주식·채권·펀드 등 기존 금융상품 전반으로 확대되면서 경쟁의 무게 중심도 자산확보 역량으로 옮겨가는 모습이다.

 

14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내년 2월4일 시행되는 개정 자본시장법과 전자증권법에 따라 토큰증권으로 만들 수 있는 자산의 범위가 조각투자에서 주식·채권·펀드 등 기존 금융상품 전반으로 넓어진다. 우선 기관투자자 전용 사모 머니마켓펀드(MMF)와 사모사채, 신탁방식을 이용한 비상장주식부터 토큰화가 허용되고, 이후 시장 상황을 봐가며 공모 증권과 온라인으로 대금까지 주고받는 결제 방식으로 단계적으로 범위를 넓히는 방향이다. 일반 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공모 조각투자증권 토큰화는 제도 시행과 동시에 가능해진다.

토큰증권은 자산의 소유권을 기록하는 방식을 바꾸는 개념이다. 지금은 증권사나 예탁결제원 같은 한 기관의 전산 장부에 누가 무엇을 얼마나 갖고 있는지가 기록되지만, 토큰증권은 이 장부를 여러 기관이 함께 나눠 갖고 검증하는 블록체인 방식의 디지털 장부로 옮기는 방식이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는 통째로만 사고팔 수 있던 부동산이나 미술품 같은 자산도 여러 사람이 지분을 나눠 갖는 조각투자 상품으로 수월하게 만들 수 있다.

 

◆자체 구축이냐 공동 플랫폼이냐

 

제도 시행으로 토큰증권을 다룰 수 있는 사업자 범위가 넓어지지만 별도의 새로운 인가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금융당국이 기존 투자매매·중개업 인가 범위 안에서 증권사가 토큰증권을 취급할 수 있도록 하면서, 발행 인프라 구축과 자산확보 경쟁에는 증권사들이 가장 먼저 뛰어들고 있다.

 

전략은 발행 인프라를 구축하는 방식에서 먼저 갈린다. 자체 구축은 증권사가 직접 디지털 장부 시스템을 만들어 발행 절차와 고객 데이터를 스스로 관리하는 방식으로, 초기 비용 부담은 크지만 이후 상품 설계와 운영에서 자유도가 높다. 공동 플랫폼은 여러 증권사가 하나의 시스템을 함께 쓰는 방식으로, 구축 비용은 줄어드는 대신 상품 설계나 운영 방식에서 다른 참여사와 보조를 맞춰야 한다.

 

미래에셋증권은 하나금융지주·SK텔레콤과 함께 자체 ‘메인넷’(디지털 장부 시스템)인 ‘넥스트파이낸스이니셔티브’(NFI) 구축을 마쳤고, 한국투자증권은 채권과 MMF를 아우르는 통합 발행 시스템 구축을 위해 관련 사업자들에게 제안요청서(RFP)를 발송한 상태다. 반면 키움증권과 대신증권을 비롯한 중소형 증권사 12곳은 코스콤이 주도하는 공동 플랫폼 ‘코스토’(KoSTO)에 참여해 구축 비용을 나눠 부담하는 길을 택했다.

 

인프라를 갖췄다고 곧장 상품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결국 어떤 자산을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토큰증권 발행 경쟁의 관건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 일환으로 신한투자증권은 지난 7월 뮤직카우인베스트와 400억원 규모의 음원 지식재산권(IP) 펀드 운용사 계약을 맺었다. 국내 제도 시행 전인 만큼 해외 시장에 먼저 발을 들이는 곳도 있다. 미래에셋증권은 지난 1월 홍콩에서 약 1000억원 규모의 디지털채권을 발행해 실제 발행·유통 실무 경험을 쌓아가고 있다.

 

홍진현 삼성증권 연구원은 “증권사의 시장 생존 전략은 독자적인 블록체인을 가졌는지가 아니라 자산 발굴부터 유통까지 여러 수익 단계를 얼마나 하나로 묶어낼 수 있는지에 달렸다”며 “우량 자산을 선점해 구조화하고 판매하는 역량이 가장 중요한 수익원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넓어진 판, 속도는 제각각

 

이번 정책방향에서 눈에 띄는 변화는 토큰화 대상이 조각투자에서 기존 정형증권으로 확대했다는 점이다. 정형증권은 주식·채권·펀드처럼 발행과 거래 방식이 이미 표준화된 증권이고, 미술품·한우·음원처럼 자산마다 구조가 제각각인 조각투자 상품이 비정형증권이다. 그동안 토큰증권 논의는 비정형증권인 조각투자에 머물러 있었지만, 이번 정책방향으로 정형증권까지 토큰화 대상에 처음 포함됐다. 윤유동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다소 늦었지만 국내 시장의 관심도 정형증권 토큰화로 옮겨가는 것은 글로벌 흐름과 방향을 같이하는 모습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두 자산군이 같은 속도로 확대되는 것은 아니다. 정형증권은 기관투자자 전용 사모 시장부터 안정성을 검증한 뒤 공모로 확대되는 반면, 조각투자는 제도 시행과 동시에 일반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공모가 허용된다. 한국거래소 컨소시엄(KDX)과 넥스트레이드 컨소시엄(NXT)은 이미 지난달 조각투자 장외거래중개업 본인가를 신청했고, 한국거래소 신종증권시장은 11월 개설을 목표로 인프라를 정비하고 있다. 심수빈 키움증권 연구원은 “초기에는 사모 상품처럼 권리구조가 비교적 단순한 증권부터 도입돼 기존 인가체계 안에서 시장이 형성될 것”이라며 “결국 국내 토큰증권 시장의 성장은 공모 및 상장증권으로 범위를 넓히는 로드맵이 얼마나 빠르게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지에 따라 좌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상품 공급과 후속 입법은 과제

 

향후 시장 확대의 관건은 실제 공급 가능한 상품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새 상품이 나오려면 자금과 유통의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술품·한우처럼 발행사가 자산을 먼저 사들여 상품을 만드는 방식은 위탁자 의무보유 요건이 강화되면서 오히려 필요한 자금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여러 자산을 묶어 발행하는 ‘풀링’ 방식과 앞으로 들어올 매출채권까지 활용하는 방식이 조건부로 허용되면서 상품을 다양하게 설계할 여지는 커졌지만, 그만큼 발행사가 미리 마련해야 할 자본도 함께 늘어나는 셈이다.

 

공동사업의 수익을 나눠 갖는 방식으로 발행된 미술품·한우 투자계약증권은 증권을 팔아도 기초자산에 대한 권리까지 자동으로 넘어가지 않는다는 문제도 있다. 가령 소 한 마리에 100명이 함께 투자했다면, 증권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도 소에 대한 공동 소유권까지 자동으로 함께 이전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발행사가 부실해질 경우 소를 비롯한 기초자산이 발행사의 다른 채무를 갚는 데 쓰일 위험도 있다. 이런 문제들로 투자계약증권은 유통 자체가 우선 미뤄진 상태다. 상품 구색을 늘리는 과제와 별개로 발행 근거를 담은 법 개정 자체도 늦어지고 있다. 비금전신탁 수익증권의 발행 근거가 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국회 정무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법안 내용에 대한 별다른 반대 없이도 안건 순서에 밀려 심사가 미뤄지고 있다”며 “국회 논의에 속도가 붙지 않으면 초기 상품 공급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