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가 세계 최대 상용차 박람회에서 대형 전기 트럭 ‘세미(Semi)’를 선보이며 유럽 상용차 시장에 뛰어든다. 승용차 중심의 성장세가 한계가 있다는 판단하에 유럽 시장으로 무대를 넓혀 새로운 돌파구를 찾겠다는 행보로 해석된다.
테슬라는 14일(현지시간) 독일 하노버 메세에서 열린 ‘IAA 트랜스포테이션 2026’에서 유럽형 세미의 실물 차량을 전시하고 세부 사양과 현지 출시 일정을 발표했다. 12번 홀에 있는 테슬라 세미 부스 주변은 이른 아침부터 전 세계에서 온 기자·유튜버들과 업계 관계자들로 붐볐다.
테슬라는 미국 네바다 기가팩토리의 대량 양산 체제를 발판 삼아 본격적인 대량 생산 라인을 가동 중이며 내년부터 유럽 현지 고객 인도를 시작한다는 방침을 확정했다. 이번 발표는 테슬라가 2017년 세미를 최초로 공개한 지 약 10년 만에 이뤄졌다. 당초 테슬라는 2019년 양산을 목표로 설정했지만 배터리 셀 공급을 승용차 라인업에 우선 배분하면서 생산 일정이 수년간 연기된 바 있다.
베일을 벗은 유럽형 세미는 유럽의 엄격한 도로 법규와 상용차 운송 환경을 적극 반영해 체질 개선을 거쳤다. 외신과 테슬라가 공개된 제원에 따르면 총중량 40t(유럽 상용차 법정 최대 허용 중량) 상태에서 1회 충전 시 최대 550km(약 342마일)를 주행할 수 있다. 전력 소비 효율은 1km당 약 1.0kWh 수준으로, 현존하는 대형 전기 트럭 중 최고 수준의 에너지 효율성을 확보했다. 차량 공차 중량은 약 9100kg 미만으로 억제해 화물 적재 용량을 극대화했으며, 특장 장비 운용을 위한 최대 25kW 출력의 ePTO(전기 동력 이륙 장치) 기능도 갖췄다.
실내 시승장과 인근 야외에서 진행된 주행 테스트에서 세미는 40t급 체급을 잊게 하는 민첩함과 정숙성을 과시했다. 기존 내연기관 트럭의 육중한 엔진 소음과 진동 대신 특유의 전기 모터 회전음만 남긴 채 매끄럽게 주행하는 모습은 관람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충전 네트워크는 최대 800kW급 출력을 지원하는 테슬라 전용 초고속 충전기 ‘메가차저’ 및 유럽 표준 메가와트충전시스템(MCS) 3.2 규격을 연동한다. 이를 통해 30분 만에 전체 배터리 용량의 약 60%를 충전할 수 있어 물류 업체의 차량 운행 중단 시간(다운타임)을 최소화한다.
유럽형 모델의 차체 외관도 대폭 변경됐다. 유럽 법정 차체 길이 제한을 맞추기 위해 휠베이스(축거)를 줄이고 프런트 오버행을 단축했다. 특히 미 연방법 제약으로 대형 실물 사이드미러를 유지해야했던 미국형과 달리 유럽형 모델은 돌출형 사이드미러를 완전히 제거했다. 대신 총 10대의 고성능 카메라 기반 디지털 모니터링 시스템을 차체 곳곳에 분할 배치해 공기 저항을 획기적으로 줄였다.
해당 카메라 시스템과 독자적인 자율주행 컴퓨터는 레벨 2 수준의 고급 주행 보조 시스템인 ‘오토파일럿’ 및 ‘FSD(Full Self-Driving)’ 구동의 핵심 기반이 된다. 차선 유지, 자동 제동, 차간 거리 조절은 물론 화물 적재 시 트레일러가 꺾이는 잭나이프 현상 방지 알고리즘 등 대형 트럭 맞춤형 제어 기능이 연동된다. 다만 완전 무인 주행이 아닌 운전자 상시 주시가 필요한 단계로, 향후 유럽 현지 자율주행 규제 완화에 발맞춰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통해 기능을 단계적으로 확장할 계획이다.
테슬라는 단순 차량 판매를 넘어 물류 업체의 다운타임을 최소화하기 위한 종합 운영 솔루션도 함께 제시했다. 주행 경로 기반의 맞춤형 충전 스케줄링 시스템과 전용 서비스 센터 네트워크, 소프트웨어 관제 플랫폼을 결합해 물류 기업들의 총소유비용(TCO) 절감을 끌어내겠다는 방침이다.
업계에서는 세미의 진출로 볼보트럭, 메르세데스-벤츠 트럭, MAN, 스카니아 등 전통 상용차 강자들이 점유하고 있는 유럽 대형 전기 트럭 시장의 주도권 다툼이 한층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세미의 최대 주행거리(550km)가 현지 경쟁사들의 최신 라인업을 압도하는 수준은 아니지만, 독자적인 메가차저 네트워크 구축 속도와 높은 전비, TCO 절감 능력이 전통 맹주들에게 강력한 위협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