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랑천에서 투망하던 시절…큰물이 지나간 뒤 그물이 날았다 [사진기자 이제원의 30년 된 외장하드]

Kodak 필름 한 롤 서른여섯 번의 셔터를 누르며 사진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카메라에 표시된 필름 카운터가 25 정도가 되면 고민이 시작됐다. 필름을 새걸로 갈아야 하나 남은 거로 찍어도 될까? 제한된 서른여섯 번의 셔터를 누르는 순간의 신중함과 긴장감, 설렘은 지금의 디지털카메라 시대에는 느낄 수가 없는 감정이다.

 

사진기자는 본인이 취재했던 사진을 나름의 방식으로 보관한다. 개인의 차이는 있지만 나는 사진의 중요도를 떠나 보관을 많이 하는 사진기자이다. 역사의 중요했던 순간도 있었고, 상황이 기억도 없는 시답지 않은 사진도 있다.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담은 기념사진도 있고 취재와 출장 중에 보이는 나의 모습도 있다.

 

아주 먼 옛날의 모습은 아니지만 타임머신을 타고 열어본 나의 외장하드를 독자들과 같이 꺼내보고 추억하는 시간을 가져보려 한다.

1999년 8월 4일 서울 성동구 중랑천 살곶이다리에서 주민들이 비가 그친 뒤 물고기를 잡기 위해 투망하고 있다.
1999년 8월 4일 서울 성동구 중랑천 살곶이다리에서 주민들이 비가 그친 뒤 물고기를 잡기 위해 투망하고 있다.

1999년 8월 4일 서울 성동구 한양대와 성수동을 잇는 중랑천 살곶이다리 위에서 주민들이 힘껏 투망을 던졌다. 허공에서 둥글게 펼쳐진 그물이 물 위로 내려앉는다. 주변에는 물고기를 담을 커다란 통을 놓고 주민들이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또 다른 사진에는 물에서 끌어올린 그물이 둔치까지 길게 펼쳐져 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물에 잠겨 다가설 수 없는 곳이었다. 7월 말부터 서울과 경기 북부에 집중호우가 이어지면서 중랑천 수위가 급격히 높아졌다. 8월2일에는 월계1교 지점 수위가 위험수위를 넘어섰고, 동부간선도로 양방향 전 구간의 차량 통행이 통제됐다. 노원구 상계동 주민들에게는 대피령까지 내려졌다.

 

비가 잦아들고 중랑천의 물이 빠지면서 풍경은 달라졌다. 동부간선도로가 모습을 드러내자 도로 위에는 불어난 물을 따라왔다가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붕어 등 물고기들이 남았다. 인근 주민들은 투망과 그물채, 바구니를 들고 나와 중랑천 물길에 갇혀있던 물고기를 잡았다. 당시 기록에는 주민들이 물고기를 주워 담으며 잠시 수해의 시름을 잊었다는 내용도 남아 있다.

 

기자가 카메라에 담은 사진은 그 이튿날의 모습이다. 주민들은 중랑천 살곶이다리 등 가장자리로 내려와 투망을 던졌다. 물난리가 지나간 자리에 사람들이 다시 모였고, 불과 하루 전까지 범람을 걱정했던 하천은 잠시 물고기를 잡는 일상생활의 공간이 됐다.

 

당시 비의 규모는 엄청 컸다. 나흘간 이어진 중부지방 집중호우와 제7호 태풍 ‘올가’의 영향으로 8월 3일 밤까지 서울에는 538㎜의 비가 내렸다. 서울 중랑천변에서도 강풍에 가로수 60여 그루가 쓰러졌다.

 

큰비가 남긴 상처와 그 뒤로 되돌아온 일상. 27년 전 중랑천에 펼쳐진 한 장의 그물에는 물난리를 겪고도 다시 평소의 생활로 돌아가던 사람들의 모습이 함께 담겨 있다. 물난리가 지나간 중랑천 위로 둥글게 펼쳐진 투망. 큰비가 바꿔놓은 서울의 어느 여름날 풍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