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쓰는 문자를 넘어 그리다… 창현 박종회 ‘한글사랑전’

16일부터 동덕아트갤러리서…‘한글조형 어떻게 할 것인가’ 화두
선비 정신 계승에서 한글 서예의 회화적 모색까지

한글이 글씨를 넘어 그림이 된다. 자음과 모음의 획 하나하나가 화면의 선이 되고, 글자 사이의 빈 공간은 사유가 머무는 여백이 된다. 문인화 명인 창현(創玄) 박종회가 한글을 회화적 조형언어로 풀어낸 작품들을 선보인다.

 

‘문인화 명인 창현 박종회 한글사랑전’이 16일부터 21일까지 서울 동덕아트갤러리에서 열린다. 동덕여대 박물관·미술관 기획초대전으로 마련된 이번 전시의 주제는 ‘한글조형 어떻게 할 것인가’다.

 

문인화 명인 창현(創玄) 박종회 선생이 자신의 작품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종회가 던지는 질문은 ‘한글을 어떻게 쓸 것인가’가 아니라 ‘한글을 어떻게 조형할 것인가’다. 궁체 등 기존 한글서예의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나 자음과 모음 자체가 지닌 형태미와 조형성을 회화의 영역으로 확장한다.

 

그의 실험은 붓이라는 전통적 도구에도 머물지 않는다. 이쑤시개와 나무젓가락 같은 비정형적인 도구까지 활용해 운필의 규칙을 흔든다. 거칠고 날카로운 선, 가늘게 이어지다 순간적으로 굵어지는 획의 대비를 통해 한글을 추상회화의 영역으로 끌어올린다. 세필로 거친 질감을 구현하는 역발상도 시도한다.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세종대왕과 월인천강지곡’은 가로 약 8m, 세로 2.05m에 이르는 대작이다. 세종대왕상을 화면 전면에 배치하고 ‘월인천강지곡’ 9986자를 거대한 마지(麻紙)에 완필했다. 한글 창제 초기의 원형이 지닌 힘과 금속활자·목판본 특유의 질박하고 육중한 맛을 붓으로 되살리려는 작업이다.

 

‘용비어천가’ 역시 해설을 포함해 가로 7m에 이르는 대형 화면에 담겼다. 옛 문헌을 단순히 옮겨 적는 데 그치지 않고 한글의 원형을 들여다보면서 이를 현대적 조형물로 재해석했다.

 

‘한글 인류의 자산’

‘한글 인류의 자산’은 이번 전시의 지향점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한글을 특정 시대나 민족에 국한된 문자가 아니라 인류가 함께 누릴 수 있는 문화적 자산으로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담겼다. 한글의 구조적 단순성을 오히려 무한한 조형적 가능성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한글과 문학의 결합도 눈길을 끈다. 박종회는 김소월·백석·신동엽·윤동주·이육사·정인보·한용운 등 우리 시인들의 작품을 화제로 삼아 글과 그림을 결합했다. 판소리 ‘춘향가’의 ‘사랑가’, ‘진도아리랑’, ‘정선아리랑’ 등의 구절은 물론 배호·현인·남인수 등의 대중가요 가사까지 화면에 끌어들였다. 전통 문인화의 시서화(詩書畵) 정신을 오늘의 문학과 대중문화로 확장한 셈이다.

 

‘진도아리랑’은 민중의 삶과 정서가 담긴 노랫말을 문자와 화면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한글의 조형미와 한국인의 정서를 한 화면에 결합해 문인화가 특정 계층의 고아한 취향에 머무는 예술이 아니라 다양한 삶과 감정을 담아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재료 실험도 이번 전시의 특징이다. 박종회는 삼베로 만든 종이인 마지를 주요 작업 매체로 활용한다. 거친 표면은 붓의 움직임에 저항하면서 독특한 갈필을 만들어내고, 먹의 번짐을 절제해 묵직하고 깊은 화면을 만든다. 종이의 거친 뒷면을 일부러 사용하는 것도 그의 특징이다.

 

이는 박종회가 평생 이어온 문인화 현대화 작업과 맞닿아 있다. 그는 먹과 한지라는 전통 재료에 머물지 않고 유화물감과 캔버스까지 적극적으로 끌어들였다. 먹의 깊이와 유화의 강렬한 색채를 결합한 ‘묵유채(墨油彩)’는 그의 독특한 조형세계 가운데 하나다. 동양의 정신을 서양의 재료와 표현방식으로 풀어내면서도 문인화의 구도와 여백, 생략과 과장의 미학은 유지했다.

 

‘부석’

이번 전시에서는 ‘부석(浮石)’ 연작도 주목할 만하다. 최근 집중적으로 작업한 시리즈로 7점이 출품된다. 맑은 냇물이나 허공에 무거운 바위가 떠 있는 초현실적인 장면을 통해 현실의 부조리와 상실된 인륜에 대한 문제의식을 드러낸다. 배경을 과감하게 지우고 바위를 ‘유허(留虛)’의 공간에 홀로 남겨놓는 방식은 관람객이 빈 공간을 바라보며 스스로 의미를 사유하도록 한다.

 

박종회에게 여백은 단순히 비워둔 공간이 아니다. 작가의 뜻과 정신을 머물게 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남겨둔 ‘유허’다. 관람객은 그 빈 공간에 자신의 생각을 채워간다. 외부의 것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를 뜻하는 노장사상의 ‘소요유(逍遙遊)’와도 연결된다.

 

송하진 서예가(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 조직위원장)는 박종회의 작품에 대해 “붓끝이 묵직하면서도 거침이 없다”고 평가한다. 오랜 법고(法古)의 과정에서 익힌 전통의 법도를 품으면서도 인습적인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과감한 점획으로 현대적 조형미를 구현한다는 것이다. 작품 곳곳에 동양적 분위기와 선기 어린 사유가 배어 있으며 현대인의 현실적 피로를 정화하는 정신적 향기도 지닌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조형세계의 바탕에는 자신의 편견보다 사물의 본질을 바라보는 ‘이물관물(以物觀物)’의 태도가 자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글은 세계 최고의 문자’

박종회의 예술 인생은 어린 시절 붓을 잡으면서 시작됐다. 여덟 살 때부터 서예와 그림을 익힌 그는 한학과 서예를 토대로 문인화의 세계에 들어섰다. 이후 전통 문인화의 틀을 답습하기보다 새로운 재료와 기법을 끊임없이 실험하며 자신만의 조형언어를 구축해왔다.

 

1977년 고미당에서 첫 개인전을 연 이후 지금까지 19차례 개인전을 열었으며 국내외 초청전과 단체전에 수백 차례 참여했다. 1981년 동아미술제에서 대상을 수상했고, 1983년에는 이탈리아 Astro Labio Arte 화랑 초대 6인전에 참여하는 등 해외에서도 작품을 선보였다.

 

서울시 미술장식품 심의위원, 문화관광부 미술은행 추천·심사위원 등을 지냈으며 고려대 미술교육과 강의와 원광대 동양학대학원 초빙교수 등을 역임하며 후학 양성에도 힘썼다.

 

서예가로서 역사와 기억을 기록하는 작업도 이어왔다. 고하 송진우 선생과 유일한 박사 등의 비문을 비롯해 여러 금석문을 휘호했으며, 1986년 독립기념관 어록비에는 광복군 선언문과 조선의열단 선언문, 권율 장군 격문 등을 새겼다.

 

2014년에는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 광장에서 대형 소나무 휘호 퍼포먼스를 펼쳤고, 로또서예문화상·한국예술상·미술인의날 문인화 본상 등을 수상했다. 2019년에는 대한민국전통예술전승원 문인화 명인으로 선정됐다.

 

팔순을 맞은 2023년 개인전의 제목은 ‘산수(傘壽), 변혁은 시작됐다’였다. 당시에도 대형 화폭에 거대한 붓으로 강렬한 필획을 선보이며 전통 문인화의 변화를 강조했다. “한국성을 찾아 달려왔다”는 그의 말처럼 민화와 단청 등 우리 고유의 미감을 문인화로 발전시키려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세종대왕 어록’

반세기 가까이 붓을 잡아온 박종회에게 이번 한글사랑전은 새로운 출발이면서 오래된 질문에 대한 또 하나의 답이다. 전통은 무엇으로 이어지는가. 그가 찾는 답은 형식이 아니라 정신이다. 시대가 달라지면 전통 역시 새로운 표현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먹과 한지에서 유화와 캔버스로, 문인화에서 한글 조형으로 영역을 넓혀온 박종회가 이번에는 우리 문자의 획과 여백에서 새로운 미의 세계를 찾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