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산유국이자 이슬람 수니파의 맹주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이란을 중심으로 하는 ‘시아파 벨트’ 공세에 최악의 안보 위기에 처했다. 미국도 홍해 문제에 대해서는 소극적인 태도에 그치면서, 마땅한 대응책이 없는 사우디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15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예멘의 친이란 반군 후티는 연일 사우디에 군사적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다. 사우디군은 전날 후티 반군이 남서부의 킹 칼리드 공군기지를 향해 드론과 미사일을 발사한 데 이어 이날 남부 지역을 공격해 민간인 13명이 부상했다고 밝혔다. 이날 사우디 당국은 중동 전쟁 발발 이후 처음으로 이슬람 최고 성지인 메카와 제다, 타이프 지역에 공격 위협 경보를 발령했다. 사우디 전투기도 이날 예멘 남서부를 공습해 어린이 2명을 포함해 3명이 숨졌다고 후티 측이 주장했다.
후티 반군은 이란을 주축으로 하는 반이스라엘·반미 네트워크인 ‘저항의 축’ 일원으로 시아파의 분파인 자이디파를 기반으로 결성됐다. 이란 정부는 인정하지 않지만, 이번 전쟁에서 후티가 이란의 지원을 받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후티의 공격이 거세지면서 세계 최대 원유 수출국인 사우디는 양대 석유 수송로인 호르무즈해협과 홍해 입구 바브엘만데브해협의 통제력을 사실상 잃어버린 상황이다. 후티는 지난 7월 사우디 선박에 대한 봉쇄를 선언하며 공세를 재개했고, 이달 초 바브엘만데브해협 인근 항구도시 모카와 인근 섬까지 장악했다. 13일에는 또다른 요충지인 하니시 제도도 완전히 통제하게 됐다.
사우디는 지난 11일 이라크 내 시아파 세력인 친이란 민병대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드론 공격도 받았다. 이로 인해 ‘동서 송유관’ 주요 가압장이 파손돼 향후 3∼5주간 가동이 전면 또는 부분 중단될 위기다. 동서 송유관은 호르무즈해협에서 홍해로 하루 최대 700만배럴을 수송할 수 있는 핵심 시설이다.
사우디 입장에선 이란과 후티에 바닷길이 막히고, 우회 송유관마저 가동이 멈추면서 석유 수출로가 사실상 모두 차단됐다. 실제 글로벌 무역 분석업체 케이플러에 따르면 후티의 공격 여파로 지난 6월 하루 340만배럴이던 사우디의 아시아행 원유 수출량은 8월 12만8000배럴로 급감했다.
블룸버그는 사우디가 다시 호르무즈해협을 통한 원유 수출을 늘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했지만, 녹록지 않은 게 사실이다. 호르무즈해협에서는 전날에도 남쪽 제한 구역을 통과하던 파나마 선적 유조선 ‘엘 가이아’호가 파괴됐다. 이란혁명수비대(IRGC)는 이 선박이 기뢰에 부딪혀 폭발했다고 주장한 반면, 미 중부사령부(CENTCOM)는 이란의 드론 공격으로 파괴됐다고 반박하는 등 군사적 갈등은 이어지고 있다.
사우디가 후티 반군을 공격하고는 있지만 군사적 대응 수위를 높이기는 어렵다는 전망이다. 그러나 동서 송유관같이 ‘잃을 게 많은’ 사우디에 후티의 거센 보복은 더 큰 리스크로 이어질 수 있다. 과거와 달리 후티는 드론 등 저렴한 비용으로 원거리를 타격할 수 있는 고도화된 무기 체계를 갖췄다.
외교적 카드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후티 반군이 요구하는 ‘사우디 주도의 봉쇄 해제’를 수용할 경우 수니파 맹주인 사우디로서는 자존심이 걸린 문제다. 장기적으로 ‘시아파 벨트’의 세력만 키워주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일단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는 이날 수니파 우방인 이집트를 방문해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과 회담했다.
이번 사태의 시작이자 동맹인 미국 태도가 미온적이라는 것도 큰 문제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간선거를 앞두고 표심을 의식해 중동 전선을 확대하는 것을 극도로 꺼리고 있다. 아나돌루통신 등에 따르면 J D 밴스 부통령은 취재진에 “계속 주시하면서 미국의 국익이 제대로 반영되도록 할 것”이라고 원론적 입장만 재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