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호르무즈해협과 홍해 지역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고조되면서 국제유가와 정제마진이 급등하고 있다. 일시적으로 정유사들의 수익성이 개선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국내 정유업계에선 이를 반기기보다는 장기적인 생태계 악화와 손실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15일 정유업계에 따르면 최근 호르무즈해협을 둘러싼 미국과 이란 간 갈등이 재점화하면서 싱가포르 복합정제마진은 9월 첫째주 배럴당 33.6달러로 전주보다 0.3달러 하락했다. 최근 5주 연속 내림세가 나타났지만 업계가 통상 손익분기점으로 보는 4~5달러를 크게 웃돌았다. 복합정제마진은 정유사가 원유를 수입해 휘발유와 경유 등 석유제품을 만들어 팔 때 남는 최종 마진(이익)을 뜻한다. 국내 복합정제마진은 지난 2월 배럴당 11.8달러에서 미국과 이란의 무력 충돌이 시작된 3월 29.3달러로 뛰었다. 원유 1배럴을 사와 정제한 뒤 팔면 이론상 30달러가 남았다는 의미다.
이처럼 정제마진이 급등하면서 언뜻 정유사들의 수익성도 개선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체감하는 수혜는 크지 않다. 원유 수급 난조로 공장 가동률을 전년 대비 대폭 늘리기 어려운 데다 수출 물량 역시 전년 동기 대비 100% 이내로 제한되어 있어 마진 상승폭만큼의 이익을 거두기 힘들다는 게 정유사들의 입장이다. 정부는 국내 주유소 공급 물량이 부족해지는 사태를 막기 위해 휘발유, 경유, 등유 등의 월별 수출량을 지난해와 같은 수준(100%)을 넘지 못하도록 통제하고 있다.
최근 국제유가가 천정부지로 뛰고 있는 점도 부담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송유관 공격과 예멘 후티 반군의 바브엘만데브해협 장악 우려가 겹치면서 최근 물류 차질 리스크가 극대화됐다. 전날 기준 두바이유는 배럴당 126.70달러, 브렌트유는 105.68 달러까지 치솟았다. 최고가격제가 적용된 상황에서 국제유가 급등은 정유사에 ‘양날의 검’이다. 유가 급등으로 장부상 이익과 마진은 늘어나지만 운임이 올라도 최고가격제로 인해 내수 판매 가격에 반영할 수 없어 내수시장에선 오히려 손익이 악화할 우려가 있다. 실제 호르무즈·바브엘만데브해협 봉쇄 위기로 인해 중동 원유 운송을 위한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운임이 폭등하고 있다.
고유가와 수급 불안이 장기간 지속하면 글로벌 산업 전반에서 석유 의존도를 낮추고 신재생에너지나 대체 소재로의 전환을 가속화할 가능성도 크다. 이는 결국 석유제품 소비 자체를 줄여 정유·석유화학 산업 전반의 장기적인 생존을 위협할 수 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일시적인 마진 상승은 착시일 뿐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원유 수급 불안과 장기 수요 감소라는 이중고에 시달리게 된다”며 “단기 마진보다 시장 안정을 통한 수급 정상화가 절실한 상황”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