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속도조절을 둘러싸고 미국 정치권과 유럽이 제각각 셈법을 보이면서 논쟁이 격화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AI 인류 멸망론’을 사기로 규정하며 개발 경쟁에 속도를 내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가운데, 미 민주당뿐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 핵심 지지층인 마가(MAGA)에서도 다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유럽에서는 미국·중국과의 AI 격차를 좁히는 일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14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 AI와 관련된 게시글 6건을 잇달아 올리며 미국의 AI 개발 속도를 늦추지 않겠다고 거듭 밝혔다. 그는 “AI와 데이터센터를 겨냥한 역겨운 음모가 있으며, 이를 기뻐할 유일한 나라는 중국”이라며 “AI에서 이기는 자가 승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AI가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인류를 위협할 수 있다는 경고에 대해서도 “AI가 세계를 장악하고 인류를 파괴하며 다른 모든 일을 나쁘게 한다는 것은 사기”라고 일축했다.
AI업계 선두 주자들이 자신에게 유리한 규제를 만들기 위한 술책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J D 밴스 미국 부통령은 ‘속도조절론’에 대해 “트로이 목마 같다”며 “수많은 AI 기술 기업들이 정부에 찾아와 자신들을 규제해달라고 애원하는 사실이 다소 이상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민주당 지도부는 정부가 더 신속하게 AI에 대응해야 한다고 트럼프 대통령을 압박했다. 하킴 제프리스(뉴욕) 하원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AI의 폭발적인 성장과 그로 인해 제기되는 도전 과제들은 결코 허구가 아니다”라며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조만간 의원총회를 열어 AI 속도 조절 계획에 합의할 계획이다. 다만 미 온라인매체 악시오스는 “민주당 의원들은 사태 시급성에는 공감하지만 초지능 AI의 전면 금지부터 AI 특위 구성까지 일치된 해법은 없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이 AI를 이슈화하는 속내는 중간선거에서 실직과 불평등 심화, 전기요금 상승 등 트럼프 행정부 실정을 부각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반면 트럼프 행정부는 거대한 성장동력인 AI의 거품이 터져 자신의 정치적 입지가 약화할 수 있기에 AI 성장 속도를 늦추는 것을 반대하고 있다고 CNN은 평가했다.
한편, AI 경쟁에서 뒤처진 유럽에서는 AI 개발에 무게를 싣고 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이날 오스트리아 빈에서 한 연설에서 미국과 중국 중심의 AI 경쟁에서 유럽이 배제될 위험에 놓였다고 경고했다.
그는 수년 안에 AI가 국경 검수와 환자 관찰, 은행 결제 등 핵심 업무에 활용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 과정에서 유럽이 AI 강국에 의존할 경우 이들 국가가 AI 접근을 차단하거나 이용 조건을 바꾸는 방식으로 유럽 경제를 압박할 수 있다며 유럽 자체 컴퓨팅 역량 증진을 촉구했다.
AI 개발 속도라는 화두가 전 세계에 던져지면서 관련 논의도 분주하게 진행되고 있다. ‘친(親)인간 AI 선언’을 주도했던 미 비영리 단체 미래생명연구소는 15일 AI 인류 위협론을 진단하는 ‘친인간 총회’를 연다. 여기에는 마가 여론을 주도해 온 스티브 배넌과 민주당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참석한다. 마가 인사가 AI 위험성을 꾸준히 경고해온 급진 진보 성향의 샌더스 의원과 같은 목적으로 한자리에 서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르면 이번주 AI 기업 경영자들과 만나 AI 안전성 규제 방안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찰스 3세 영국 국왕도 엔비디아와 구글, 오픈 AI, 앤트로픽 등 주요 기업 대표들과 17일 스코틀랜드에서 회동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