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예술의전당, 마르크앙드레 아믈랭이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와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을 협연하기 위해 무대에 올랐다. 올해 그라모폰 어워드 쇼트리스트에 앨범 두 장을 동시에 올린 사실에서도 드러나듯 그는 지금도 새로운 음악적 성취로 대가의 이름에 걸맞은 가치를 증명하고 있다. 다만 환갑을 넘긴 나이에도 실연에서 그 음악성을 온전히 구현할 수 있을지 기대와 염려가 교차했다.
아믈랭의 연주는 브람스에게 흔히 기대하는 육중한 타건이나 두꺼운 음향을 전면에 내세우는 해석은 아니었다. 대신, 각 성부의 윤곽과 관계를 투명하게 조망하며 작품의 견고한 구조를 정교하게 쌓아 올렸다. 특히 1악장에서 상성부의 선율과 중간 음역의 반주, 저음의 베이스가 서로를 가리지 않으면서 하나의 유려한 흐름을 이루는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무엇이 노래하고, 무엇이 움직이며, 무엇이 전체를 지탱하는지가 또렷이 들렸다. 신체의 힘을 덜어낸 자리에 악보를 꿰뚫어 보는 시야를 채워 넣은 원숙한 해석이었다.
이렇듯 거장의 이름 앞에서 우리는 익숙한 작품에서도 미처 듣지 못했던 경지를 기대한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음악성과 해석도 저절로 깊어진다는 믿음은 환상에 가깝다. 과거의 명성에 기대어 무대를 거듭할수록 오히려 그 명성을 소진하는 이들도 있다. 연륜이 예술적 성취로 이어지려면 익숙한 해석을 되묻는 공부와 꾸준한 연습, 몸을 돌보는 일이 뒷받침돼야 한다. 다만 기량의 쇠퇴를 노력의 부족으로 단정하는 것은 성급하다.
한 음악가의 무대를 오래 찾아온 청중은 그가 어떤 고비를 거쳐 지금에 이르렀는지도 기억한다. 기교가 예전만 못한 연주에서도 한 사람의 삶을 마주하는 감동하는 이유다. 그사이 청중도 나이를 먹었기에, 연주자의 변화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물론 전성기의 소리를 다시 듣고 싶을 때도 있다. 그 바람에는 음악에 벅차올랐던 자신의 지난날에 대한 그리움도 섞여 있을지 모른다. 다시 울리는 음악 앞에서도, 그것을 듣는 우리는 이미 다른 시간을 살고 있다.
그 기억을 간직한 채 오늘의 연주가 이룬 것과 놓친 것을 살필 필요가 있다. 오랜 탐구가 빚은 해석에 감탄하면서도, 그것을 끝까지 구현하지 못하는 순간에는 아쉬움을 느낄 수 있다. 거장의 이름에 높은 입장료까지 더해지면 기대가 커지고, 그에 못 미친 연주의 아쉬움도 깊어지기 쉽다. 이러한 기대와 불안을 함께 헤아려 입장료가 조금 더 부담 없는 선에서 정해진다면, 관객도 한결 열린 마음으로 객석에 앉을 수 있지 않을까.
이상권 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