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치고, 바람 불면 ‘수소’가 만들어진다 [기웃, 기후]

제주 ‘파력발전 시험장’ 가보니
파도·바람으로 수소 만들고
저장한 수소로 車·자전거 달린다

제주 ‘출력제어 골칫거리’ 해법은 그린수소
그린수소 생산 3.3MW→2030년 21.2MW
잉여 재생에너지 육지로…HVDC 추가 구축 추진

제주시 한경면 용수리 앞바다. 육지에서 1.2㎞ 떨어진 바다 한가운데 높이 30m의 콘크리트 구조물이 홀로 떠 있다. 아시아 최초로 구축된 5메가와트(MW)급 ‘제주 파력발전 실해역 시험장’이다. 컨테이너 두세 개를 이어붙인 듯한 직사각형 구조물 안으로 제주 바다의 거친 파도가 쉴 새 없이 밀려들었다.

제주 한경면 용수리 앞바다에 구축된 아시아 최초 5메가와트(MW)급 ‘제주 파력발전 실해역 시험장’ 모습. 사진=김은재 기자

15일 찾은 용수리 파력발전 시험장에는 직원들이 구조물 안팎을 분주히 오갔다. 구조물 아래 뚫린 입구로 파도가 밀려들면 내부 공기가 구멍을 통해 빠져나간다. 파도의 움직임에 따라 구조물 안팎을 오가는 공기의 힘으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하는 원리다. 이렇게 만든 전기는 수전해 설비로 보내져 바닷물을 수소와 산소로 분해하는 데 씅니다. 파도가 바닷물을 수소로 바꾸는 셈이다.

 

준공한지 10년이 다 되어가는 이 파력발전소가 최근 다시 주목받는 이유는 ‘남는 전기’ 때문이다. 인근 풍력발전소에서 미처 다 쓰지 못한 전기를 끌어와 파력발전에 활용하면서 제주가 골머리를 앓아온 ‘재생에너지 잉여전력’을 줄일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김길원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 친환경해양개발연구본부 책임은 “전력이 남으면 발전할 수 있는데도 발전기를 멈춰야 하는 경우가 생기는데 남는 전력으로 수소를 생산해 저장하면 그런 상황을 줄일 수 있다“며 “수소는 저장한 뒤 다양한 용도로 활용할 수 있는 에너지원이다. 다음 달부터는 생산한 수소를 용기에 저장했다가 다시 활용하는 단계까지 실증을 마무리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제주 파력발전 실해역 시험장 인근 마을에 설치된 육상풍력기 십수 대가 돌아가고 있다. 사진=김은재 기자

◆남는 전기 수소로…제주 출력제어 해법은 ‘그린수소’

 

제주에서는 태양광과 풍력발전이 빠르게 늘면서 재생에너지 출력제어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2025년 말 기준 제주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은 24.3%다. 전국 평균 10.6%의 두 배를 웃돈다. 재생에너지 보급 속도가 빨랐던 만큼 전력 수급 불균형, 그에 따른 출력제어 문제도 다른 지역보다 먼저 경험했다. 픙부한 일조량과 강한 바람 등 재생에너지 자원이 풍부한 제주 특성상 발전량은 많지만, 이를 제때 소비할 수요처와 육지로 전기를 내보낼 송전망은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제주의 재생에너지(풍력·태양광) 출력제어는 2022년 2만8852메가와트시(MWh), 2023년 3만5558MWh, 2024년 6월까지 1만1940MWh에 달했다. 2024년 6월 재생에너지 입찰제도가 시행된 이후에는 출력제어량을 공식 집계하고 있지 않지만, 전력 생산 여력이 있어도 수요와 계통 여건에 따라 발전설비의 가동을 줄이거나 인위적으로 멈춰야 하는 상황은 반복되고 있다.

 

이에 제주는 그린수소 생산과 히트펌프 보급 등 새로운 전력 수요를 늘려 잉여 재생에너지를 활용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정책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특히 수소는 수일·수주에서 계절 단위에 이르는 대용량·장주기 저장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제주는 재생에너지 연계 그린수소 생산 규모를 현재 3.3메가와트(MW)에서 2030년까지 21.2MW 규모로 확대할 계획이다. 버스, 청소차, 승용차 등 수송 부문의 수소 전환에도 속도를 낸다. 현재 181대인 수소전기차를 2030년 1336대까지 늘린다는 구상이다.

 

◆제주대 캠퍼스 누비는 ‘수소 자전거’

 

김상재 제주대 공과대학장이 대표를 맡은 기술창업기업 하이드로라이드가 개발한 ‘수소 자전거’. 사진=김은재 기자

제주의 ‘그린수소 실험’은 대학과 지역 스타트업계로도 확산하고 있다.

 

제주대 ‘그린수소 글로컬 선도연구센터’에서는 수소를 활용한 소형 모빌리티 기술 개발이 한창이다. 센터 소속 연구진과 김상재 제주대 공과대학장이 대표를 맡은 기술창업기업 하이드로라이드는 수소로 전기를 만들어 움직이는 ‘수소 자전거’를 개발했다.

 

이날 제주 서귀포시 국제컨벤션센터(ICC)에서 열린 ‘2026 그린수소 글로벌 포럼’에 수소 자전거가 모습을 드러냈다. 수소의 활용처를 자동차를 넘어 소형 모빌리티까지 넓히려는 시도다. 현재 제주대 학생들이 교내에서 직접 수소 자전거를 타며 주행 성능 등을 실증하고 있다.

 

센터 소속으로 수소 자전거 개발에 참여한 변영철 컴퓨터공학과 교수는 “재생에너지 출력제어를 예측해 남는 전력으로 수소를 생산해 저장하고, 그 수소를 다시 전기로 바꿔 자전거나 수소차 등에 활용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며 “저장한 수소를 필요한 곳에 활용함으로써 RE100(재생에너지 100% 조달) 달성을 앞당길 수 있는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남는 전기는 HVDC 타고 육지로

 

위성곤 제주특별자치도지사가 15일 '2026 그린수소 글로벌포럼'이 열리고 있는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에서 기후에너지환경부 출입기자단과 간담회를 갖고 있다. 뉴시스

제주는 잉여 재생에너지를 육지로 보내기 위한 추가 초고압직류송전(HVDC) 구축도 추진하고 있다. 제주와 육지를 잇는 해저 송전망을 건설해 제주의 잉여 전력을 수요처가 많은 육지에서 활용하겠다는 구상이다.

 

위성곤 제주도지사는 15일 제주 ICC에서 기자간담회를 진행하고 이 같은 구상을 밝혔다. 위 지사는 “제주와 육지는 약 50㎞ 떨어져 있다. 육지에서도 이 정도 거리는 먼 거리가 아니”라며 “정부를 설득해 제주에서 생산한 재생에너지가 국가 전력망에 접속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위 지사는 “앞으로 수도권, 특히 서울에 필요한 에너지를 어떻게 공급할 것인지가 과제다. 서울의 경우 39기가와트(GW)를 사용하고 있는데 석탄발전소를 줄여나가는 상황에 재생에너지를 어떻게 공급할지를 고민해야 한다”며 “제주에서 해상풍력으로 생산한 전기를 HVDC를 통해 수도권까지 연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도청에서는 HVDC 구축에 약 18조원이 들 것으로 보고 있다. 앞으로 기술 발전도 필요하겠지만 서남권 30GW 해상풍력 등을 포함해 앞으로 남게 될 전력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정부 차원의 검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