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사는 외국인이라면 대부분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에 놀란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가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이 말을 거의 날마다 들었던 것 같다. 실제로 한국은 ‘빨리빨리’의 나라다. 기다리는 버스는 정시에 오고, 주문한 음식은 바로 나온다. 인터넷 속도는 놀라울 만큼 빠르고, 택배는 하루 만에 도착한다. 관공서 업무도 신속하게 처리된다. 이런 속도는 미얀마에서 살았던 나에게는 놀라움 그 자체였다.
그런데 한국에 조금 오래 살면 이와는 다른 모습도 목격하게 된다. 유명한 맛집 앞에는 두 시간 넘게 줄을 선 사람들이 있었다. 인기 콘서트 티켓을 사기 위해 몇 시간씩 기다리고, 새로 문을 연 카페에 들어가기 위해 긴 줄을 서는 모습도 흔했다. 한정판 상품을 사기 위해 새벽부터 줄을 서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래서 ‘빨리빨리의 나라라면서 왜 이렇게 인내심을 가지고 오래 기다릴까?’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먀닌이셰인(예진) 이화여자대학교 다문화·상호문화협동과정 박사과정
한참 생각한 끝에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얻게 되었다. 그것은 한국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은 ‘의미 없는 기다림’이지 ‘가치 있는 기다림’은 아니라는 것이다. 행정 절차가 느린 것, 배달이 늦은 것, 약속시간에 늦는 것은 불편하게 느낀다. 하지만 정말 먹고 싶은 음식, 보고 싶은 공연, 갖고 싶은 물건이라면 기꺼이 시간을 투자한다. 기다림 자체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기다릴 만한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내가 개인적으로 얻은 답이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자못 궁금하다.
아무튼 이 점은 미얀마와도 조금 다르다. 미얀마에서는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경우가 많다. 무엇을 기다리는 동안 가족이나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낸다. 반면 한국에서는 기다리는 시간조차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모습을 자주 본다. 줄을 서면서도 책을 읽거나 휴대전화를 통해 업무를 보고 공부를 하는 사람들도 많다. 같은 ‘기다림’이지만 그 풍경은 조금 달랐다.
흥미로운 것은 ‘빨리빨리’와 ‘기다림’이 상반되는 문화가 아니라는 점이다. 한국 사회는 일상은 빠르게 움직이지만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순간에는 기꺼이 시간을 투자한다. 그 균형이 한국 사회의 또 다른 매력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유학생인 나도 어느새 그 문화에 익숙해졌다. 예전 같으면 긴 줄을 보면 그냥 다른 곳으로 갔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 정도 줄이면 기다릴 수 있겠네. 기다리다 먹으면 더 맛있겠지.’라는 생각을 하며 자연스럽게 유명 음식점 앞에서 기다리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한 문화가 다른 문화를 만나면 어느 한 문화나 두 문화 모두 약간씩 바뀌기 마련이다. 학문적으로는 ‘문화접변’(acculturation)이라고 한다. 미얀마인인 내가 한국에서 배운 것은 단순히 ‘빨리빨리’가 아니었다. 언제 속도를 내야 하고 언제는 천천히 기다려야 하는지도 함께 배우고 있는 것 같았다. 상호문화는 서로 다른 문화를 비교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서로의 생활방식을 이해하고 그 안에 담긴 가치를 발견하는 과정이다.
한국은 나에게 분명 빠른 나라이지만 한국에서 살아보니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그 빠름이 아니었다. 정말 소중한 것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기다릴 줄 아는 사람들의 모습, 어쩌면 이것이 내가 한국에서 발견한 ‘빨리빨리’ 문화의 진짜 모습인지도 모른다. 빨리 가는 것만큼 무엇을 위해 기다려야 하는지를 아는 것이 내가 한국에서 배운 진짜 ‘빨리빨리’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