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개성공단 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데 대해 우리 정부에 446억여원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어제 나왔다. 북한은 2020년 6월16일 탈북민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에 대한 우리 정부 대응을 문제 삼아 연락사무소를 일방적으로 폭파했다. 윤석열정부는 2023년 6월 북한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북한을 상대로 제기한 첫 손배 소송에서 불법적인 재산권 침해에 대한 법적 책임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
통일부는 판결 직후 “법원 판단을 존중하며 필요한 조치를 검토하겠다”면서 남북 대화가 재개돼 모든 현안을 대화와 협력으로 풀어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배상 청구나 연락사무소 폭파에 대한 책임 있는 사과 요구 등 구체적인 후속 조치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북한에 대한 사법적 집행수단이 없고, 북한이 배상 요구에 응할 가능성도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렇지만 북한의 행위에 대한 책임까지 희석되는 건 아니다. 남북 관계 개선과 불법에 대한 원칙적 대응은 별개 문제다.
남북 관계가 개선되더라도 상대방의 일방적인 파괴와 약속 위반을 용인한다면 그 관계는 다시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이번 판결을 단순히 446억여원의 배상금을 받아낼 수 있느냐의 문제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북한의 부당한 행태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는 것은 정부의 당연한 책무다. 이번 판결이 남북 관계에서도 법과 원칙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향후 유사한 사태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현재의 남북 관계는 엄혹하다. 북한은 한국을 ‘적대적 두 국가’의 상대방으로 규정하고 군사분계선(MDL) 일대를 사실상 국경선화하는 한편 대남 군사훈련을 강화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남북 관계 복원을 전제로 의료지원과 관광·철도·경제협력 재개 등을 준비하고 있다. 대화와 교류의 문을 열어두는 것 자체를 문제 삼을 이유는 없다. 그러나 일방적 대북 유화정책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과 국민적 우려가 작지 않다. 179억원의 세금이 들어간 남북연락사무소가 북한의 일방적 결정으로 속절없이 폭파되는 장면은 여전히 국민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