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대통령이 산업통상자원부의 거듭된 신중론에도 경북 포항 영일만 석유·가스 매장 가능성을 직접 대국민 발표하고, 자신의 임기 안에 가시적 성과를 내도록 시추 일정까지 앞당기라고 지시한 것으로 감사원 감사에서 드러났다. 산업부가 탐사 성공 가능성이 20%에도 못 미치고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며 공개에 난색을 보였지만 윤 전 대통령은 최대 140억배럴이라는 추정치를 발표했다. 시추 일정 단축에도 산업부가 어려움을 호소하자 “정무적 판단은 내가 하는 것”이라고 질책하며 계획을 다시 짜오라고 지시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첫 탐사시추에서는 가스 징후가 확인됐지만 경제성을 확보할 수준에는 이르지 못했다.
16일 감사원에 따르면 한국석유공사는 2023년 10월 영일만 일대의 석유·가스 탐사자원량이 최대 140억배럴 규모라는 용역 결과를 산업부에 보고했다. 산업부는 그해 11월 실제 석유·가스 부존 여부를 확인하려면 추가 분석과 검증이 필요하다며 대통령실에 서면 보고했다.
하지만 대통령실은 2024년 5월 말 산업부 장관이 윤 전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하고 대국민 발표까지 하는 방침을 정해 산업부에 통보했다. 산업부는 시추를 통해 실제 부존 여부를 확인하기도 전에 탐사자원량을 공개하면 시장에 과도한 기대를 불러올 수 있다며 자원량 대신 탐사 면적만 공개하는 방안까지 제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안 전 장관이 6월2일 윤 전 대통령에게 대면 보고하자 성태윤 당시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내용이 외부로 유출되면 주식시장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며 대국민 발표 필요성을 언급했다. 윤 전 대통령은 당일 곧바로 발표하려 했지만 참모진이 준비 시간이 필요하다며 만류해 하루 뒤로 미뤄졌다.
윤 전 대통령은 다음날인 3일 직접 브리핑에 나서 “영일만 일대에 최대 140억배럴의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취지로 발표했다. 산업부가 우려했던 시장 반응도 즉각 나타났다. 한국가스공사 주식은 상장 이후 처음으로 상한가를 기록하는 등 관련 종목이 급등했다. 2025년 2월 첫 탐사시추 결과에서는 가스 징후는 확인됐지만 경제성을 확보할 수준에는 이르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윤 전 대통령은 시추 일정도 자신의 임기 안으로 당기도록 직접 압박한 것으로 조사됐다. 산업부는 당초 2024∼2026년 3개공을 석유공사가 단독 시추하고 2028∼2029년 나머지 2개공을 추가 시추하는 계획을 보고했다. 대통령실은 이를 윤 전 대통령 임기인 2027년 5월 이전에 마치도록 일정을 앞당기라고 요구했다.
산업부가 평가·분석에 필요한 시간을 이유로 난색을 보이자 대통령실은 장관이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하도록 했다. 안 전 장관은 약 1년을 단축한 계획을 보고하면서도 “시추 일정과 관련해 정무적 판단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신중 의견을 냈다. 그러자 윤 전 대통령은 “정무적 판단은 내가 하는 것”이라고 안 전 장관을 질책하며 시추계획을 다시 수립해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산업부는 결국 2026년까지 1개공을 제외한 4개공을 추가 시추하는 내용으로 계획을 다시 짠 것으로 조사됐다.
감사원은 대통령실이 윤 전 대통령 임기 안에 가시적인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시추 일정을 앞당기려 했다고 판단했다. 다만 대통령실과 산업부의 보고 과정이나 대통령의 대국민 발표 행위 자체에 대해서는 적용할 법령·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별도 조치를 하지 않았다. 윤 전 대통령의 탐사자원량 발표가 자본시장법에 위배되는지에 대해서도 금융감독원은 관련 주식 매매와의 연관성을 확인하기 어려워 위반 여부에 대한 의견 표명이 어렵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사업 추진 과정에서는 탐사 결과에 대한 충분한 검증 없이 첫 시추 대상을 정한 문제도 확인됐다. 석유공사는 유망성 평가 용역을 토대로 7개 유망구조를 도출한 뒤 탐사자원량이 가장 많을 것으로 추정된 ‘대왕고래’ 구조를 첫 시추 대상으로 선정했다. 하지만 대왕고래 구조의 지질학적 성공 확률은 19.1%로, 2021년 가스 발견에 실패했던 ‘방어’ 구조보다도 낮았다.
감사원은 석유공사가 충분한 검증 없이 시추 기본계획을 수립한 것을 비롯해 시추선 용역 발주와 업체 선정 과정에서 관련 절차와 국가계약법을 위반한 사실 등 모두 7건의 위법·부당 사항을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