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일방적으로 폭파한 북한이 남한 정부에 446억여원을 배상하라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남한 정부가 북한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건 이번이 처음으로, 2023년 6월 소장 접수 3년3개월 만에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46부(재판장 김형철)는 16일 대한민국 정부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정부가 청구한 446억2641만원을 그대로 인정했다.
재판은 북한에 소송이 제기된 사실을 알릴 방법이 없어 소장을 공시송달하는 등 방식으로 진행됐다. 공시송달은 소송 서류를 전달할 수 없을 때 법원이 게시판이나 관보 등에 송달할 내용을 게재한 뒤 내용이 전달된 것으로 간주하는 절차다. 다만 북한에 손해배상 이행을 강제할 수단은 없는 상황이다.
정부는 법원의 판단을 존중한다는 입장이다. 통일부는 이날 판결 직후 배포한 언론 안내문에 “법원의 판단을 존중하며 필요한 조치를 검토해 나가겠다”며 “남북대화가 재개돼 모든 남북 간 문제가 대화와 협력을 통해 해결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통일부는 소송을 제기한 당시 “북한이 폭력적인 방식으로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것은 법률적으로 명백히 불법행위이고 아울러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 등 남북 간 합의를 위반한 것”이라며 “남북 간의 상호 존중과 신뢰의 토대를 근본적으로 훼손한 행위”라고 비판했다.
이번 판결은 북한의 연락사무소 폭파가 우리 정부의 재산권을 침해한 행위라는 점에 대해 법원의 판단을 받았다는 데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남한 정부가 북한 당국에 법적 책임을 물은 선례가 생겼단 점에서 향후 남북관계의 부담 요인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북한이 이번 판결을 ‘남한의 대결적 태도’로 규정할 경우, 법적 책임을 묻는 것과 남북관계 개선을 추진하는 정부의 대북정책이 맞물리면서 후속 대응이 복잡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는 “북한이 두 국가 정책에 따라 무시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북·미 대화 재개 시 ‘한국 패싱’의 명분으로 삼을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한편에서는 남북관계 전반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란 관측이 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석좌연구위원은 이날 통화에서 “어쨌든 불법행위와 남북합의 위반을 아주 없던 일로 할 수는 없는 문제”라며 “북한은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을 것”고 말했다. 조 위원은 이번 판결이 남북관계에 미치는 영향보다는 국내 정치적 갈등 소지에 주목해 “어떻게든 북한에게서 배상을 받아내야 한다는 주장과 현실론이 대립하는 양상이 될 수 있다”고 예상했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는 2018년 문재인 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4·27 판문점 선언’에 따라 그해 9월 문을 열었다. 그러나 북한은 2020년 6월 탈북민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를 문제 삼으며 건물을 일방적으로 폭파했다. 통일부는 2023년 6월 연락사무소 폭파의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3년)를 중단하고 국가채권을 보전하기 위해 북한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