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밤 먹다 남긴 찌개를 다시 꺼냈다. 냄새를 맡아봐도 이상하지 않고 색도 그대로다. 표면에 곰팡이도 없다. 이 정도면 한 번 더 끓여 먹어도 되지 않을까.
남은 음식을 다시 먹을 때 누구나 한 번쯤 하게 되는 생각이다. 문제는 식중독을 일으키는 병원성 세균이 냄새나 색의 변화로 존재를 알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코와 눈으로 멀쩡해 보여도 안전하다고 볼 수는 없다.
◆냄새 멀쩡해도 안심 못해…지난해 식중독 환자 9780명
음식이 상했는지 확인할 때 가장 먼저 보는 건 냄새와 겉모습이다. 시큼한 냄새가 나거나 표면이 끈적해지고 곰팡이가 보이면 먹지 않는 게 좋다.
하지만 음식을 상하게 만드는 부패균과 식중독을 일으키는 병원성 미생물은 다르다. 부패균은 냄새·맛·질감을 바꾸지만, 병원성 세균은 별다른 변화 없이 음식에 남아 있을 수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최근 발표한 ‘2025년 식중독 발생 통계’를 보면 이런 우려가 숫자로 드러난다. 지난해 국내 집단식중독은 319건 발생해 환자 9780명이 나왔다. 2024년 265건·7624명과 비교하면 발생 건수는 20%, 환자 수는 28% 늘었다.
같은 음식을 먹은 2명 이상에게 비슷한 증상이 나타난 집단식중독만 집계한 수치다. 가정에서 한두 명이 증상을 겪은 사례는 포함되지 않아 실제 식중독 발생 규모는 더 클 수 있다.
◆실온 방치 ‘2시간’이 기준선…32도 넘으면 1시간
남은 음식의 안전을 가르는 건 냄새가 아니라 시간과 온도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차가운 음식은 5℃ 이하, 따뜻한 음식은 60℃ 이상에서 보관하고, 조리한 음식은 2시간 이내에 먹을 것을 권고한다.
미국 농무부(USDA)와 질병통제예방센터(CDC)도 육류·달걀·조리 음식처럼 냉장이 필요한 식품을 실온에 2시간 넘게 두지 말라고 안내한다. 기온이 90°F(약 32℃)를 넘는 환경에서는 이 기준이 1시간으로 줄어든다.
2시간이 지났다고 갑자기 세균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세균은 적당한 온도에 놓이면 서서히 증식한다. ‘2시간’은 음식이 상하는 시점이 아니라, 냉장 식품의 상온 노출을 제한하는 안전관리 기준이다.
음식이 5~60℃ 구간에 오래 머물수록 일부 세균은 증식하기 쉬워진다. 한여름 식탁이나 자동차 안, 야외처럼 기온이 높은 곳이라면 방치 시간을 더 짧게 잡아야 한다.
◆“다시 끓이면 되겠지”도 위험…열에 버티는 독소가 있다
상온에 오래 둔 음식을 다시 끓이면 괜찮다는 생각도 주의해야 한다.
남은 음식은 먹기 전 중심부까지 충분히 재가열해야 한다. USDA는 남은 음식의 중심 온도가 165°F(약 74℃)에 이르도록 재가열할 것을 권고한다. 상온에 오래 방치한 음식을 재가열한다고 안전한 상태로 되돌아가지는 않는다.
대표적인 예가 황색포도상구균이다. 이 균은 음식에서 증식하며 장독소를 만드는데, 일부 독소는 열에 강해 세균 자체가 가열 과정에서 줄어들어도 이미 만들어진 독소는 남을 수 있다.
구토형 식중독을 일으키는 바실루스 세레우스의 독소 ‘세레울라이드’ 역시 열에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상온에 오래 둔 음식은 다시 끓이지 말고 버리는 게 안전하다.
◆곰팡이 핀 부분만 걷어낸다?…수분 많은 음식은 통째로 버려야
눈에 보이는 곰팡이가 생겼다면 판단은 더 간단해진다. USDA는 조리한 고기·가금류, 조리된 곡류·파스타, 요거트, 부드러운 과일·채소처럼 수분이 많은 식품에 곰팡이가 생겼다면 통째로 버릴 것을 권고한다.
표면 아래까지 오염됐을 가능성이 있어서다. 곰팡이 핀 부분만 걷어내고 나머지를 먹는 방식은 피해야 한다.
모든 식품에 같은 기준이 적용되지는 않는다. 단단한 치즈나 수분이 적은 일부 채소는 곰팡이 핀 부위를 넉넉히 잘라내고 먹을 수 있다.
◆냉장 보관도 안심할 수 없다…남은 음식 대부분 3~4일 안에
냉장 보관이 시간을 멈춰주는 것도 아니다. 낮은 온도는 세균 증식을 늦추지만, 모든 미생물의 활동을 완전히 막지는 못한다.
USDA는 적절히 냉장한 대부분의 조리 음식을 3~4일 안에 먹도록 권고한다. 그보다 오래 두려면 냉동하는 게 낫다.
보관 방법도 중요하다. 국이나 찌개처럼 양이 많은 음식은 큰 냄비째 두기보다 여러 개의 얕은 용기에 나눠 담으면 속까지 더 빨리 식힐 수 있다.
완전히 식을 때까지 상온에 둘 필요는 없다. 많은 양의 음식은 작은 용기에 나눠 빠르게 식힌 뒤 되도록 빨리 냉장하는 게 안전하다.
용기에 보관 날짜를 적어두는 것도 방법이다. 언제 만든 음식인지 몰라 다시 냄새부터 맡아보는 상황을 줄일 수 있다.
남은 찌개를 다시 먹을지 고민된다면 냄새보다 보관 시간을 먼저 따져봐야 한다. 상온에 2시간 이상, 무더운 날에는 1시간 이상 뒀다면 버리는 게 안전하다. 냉장 보관했더라도 4일이 지났다면 먹지 않는 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