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나치 독일의 패배가 목전에 다가온 1945년 4월 독일이 운영해 온 유대인 강제수용소들이 속속 미군 등 연합군에 의해 해방됐다. 수용소의 참상을 목격한 연합군 장병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당시 유럽의 연합군 최고 사령관이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미 육군 원수(훗날 대통령 역임)도 참모들을 이끌고 수용소를 방문했다. 이후 고국의 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아이젠하워는 “그렇게 잔인하고 짐승 같은 야만적 행위가 이 세상에서 자행되었다는 것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며 “정말 끔찍했다”고 털어놨다.
아돌프 히틀러 독일 총통은 유대인을 경멸하고 저주했다. 2차대전 발발 후 프랑스 등 유럽 심장부를 차지한 히틀러는 점령지의 유대인들을 모두 모아 아프리카의 프랑스 식민지 마다가스카르 섬으로 추방해 격리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그러려면 지중해, 대서양은 물론 인도양의 제해권까지 장악해야 했다. 문제는 독일의 지상군과 공군은 세계 최강이었으나 해군력은 영국에 못 미쳤다는 점이다. 결국 나치는 강제수용소의 유대인들을 가스실에 가둬 살해하는 ‘플랜B’ 실행에 나섰다. 2차대전 기간 이런 식으로 희생된 유대인은 600만명에 달한다. 이름하며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다.
아돌프 아이히만(1906∼1962)은 열렬한 나치 추종자로 1932년 일명 ‘친위대’(SS)에 가입해 장교로 활동했다. 2차대전 기간 아이히만은 유럽 각지의 유대인을 붙잡아 강제수용소로 보내는 열차 수송을 담당했다. 1944년 그는 독일의 동맹이던 헝가리로 급파됐다. 그곳에서 아이히만은 약 40만명의 유대계 헝가리인을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가스실로 보냈다. 전후 신분을 감추고 아르헨티나로 도피한 그는 이스라엘 정부의 추적 대상이 됐다. 결국 정보 기관 ‘모사드’ 요원들이 아르헨티나에 숨어 살던 아이히만을 체포해 이스라엘로 압송했다. 재판에 넘겨진 그는 사형 확정 판결을 받고 1962년 5월31일 교수형이 집행됐다.
더불어민주당이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김지용 초대 청장 후보자를 놓고 내분에 휩싸였다. 청와대 차원의 검증을 거쳐 이재명 대통령도 임명에 동의한 인물인 만큼 인선 절차를 그대로 진행한다는 친명(친이재명)계의 방침에 강경파가 반기를 들었다. 이들은 김 후보자가 검사 시절 윤석열 전 대통령과 가까운 이른바 ‘윤석열 사단’의 일원이었다고 주장한다. 옛 검찰의 흔적을 싹 지워 내고 새출발을 해야 할 중수청의 책임자를 전직 검사장이 맡아선 안 된다고도 한다. 심지어 추미애 경기지사는 16일 김 후보자를 향해 “유대인을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내몰아 죽게 하고도 히틀러 총통 체제의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고 말하는 아이히만을 연상시킨다”고 비난하며 이 대통령의 지명 철회를 요구했다. 복수심과 증오만이 난무하는 한국 정치판에 급기야 반세기 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아이히만까지 소환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