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란의얇은소설] 집안의 작은 일꾼들

부모 대신 집안일 하는 어린 딸
주변 당연시하는 태도 못마땅
명절 앞두고 “왜 나만?” 되물어
모두 일 나누면 행복하지 않을까

마거릿 애트우드 ‘요리와 접대의 기술’(‘도덕적 혼란’에 수록, 차은정 옮김, 민음사)

이번 학기에도 내가 맡은 강의 과목명이 너무 거창하게 느껴져서 부제로 ‘소설 읽기와 말하기’라고 붙여두었다. 학생들에게 수업에서 가장 원하는 게 무엇인지 물어보곤 하는데 매 학기 거의 비슷하다. 어떻게 하면 소설을 지금보다 잘 이해하고 읽어낼 수 있을까? 그 바람에 도움을 주고 싶지만 나 역시 명확하게 답을 알지는 못한다. 다만 소설을 읽을 때 그 인물의 지배적 정서를 먼저 살펴보려고 한다. 이야기에서 인물이 드러내 보이는 감정 외에 말하지 않는 숨겨진 정서를. 그러면 대개 인물이 왜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 깊이 이해하게 되니까.

조경란 소설가

마거릿 애트우드의 단편 ‘요리와 접대의 기술’을 펼치면 고작 열한 살인 내가 팔의 통증과 서툰 솜씨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집중한 채 뜨개질을 계속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몇 달 후 동생이 태어날 예정인데 엄마는 노산 걱정에 아무 일을 못하고 아버지는 직장 일로 오래 집을 비운다. 아이가 태어나면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 따뜻하게 입힐 ‘배내옷 일습’을 그래서 지금 언니이자 이 집의 맏딸인 내가 인내심을 갖고 뜨는 중이다. 손 싸개, 양말, 모자, 담요까지. 내가 하는 일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청소, 펌프 물 긷기, 빨래, 잡초 뽑기, 나무 운반하기. 어머니 몸이 안 좋으니 “평소보다 더 많이 도와야 한다”고 아버지가 “독려하는 태도”로 말했다.



엄마는 수동적인 상태로 지내고 아버지는 부재한 집. 질서가 있고 안정적인 집을 꿈꾸고 바라는 사람이 집안일을 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은 집, 다가올지도 모를 위험을 상상하면 나는 너무나 두렵기만 하다. 아버지가 말한 나의 침착함과 능숙함은 두려움에서 기인한 줄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뜨개질을 다 완성하고 쉬지 않고 집과 엄마를 돌본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은 ‘요리와 접대의 기술’. 요리하는 법과 시중드는 법을 ‘아트’로 여기고 가르치는 책이다. 체계적이며 맛있어 보이는 음식과 환하게 모여 앉은 가족, 깨끗하게 정돈된 집안이 매혹적인 삶처럼 보여 빠져들 수밖에 없다.

여름이 끝나 다행히 나는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됐지만 출산 후에도 엄마 몸이 좋지 않아 여전히 집안일을 도맡아 한다. 출산을 축하하러 엄마 친구들, 손님들이 와선 아기 옷과 집을 둘러보며 나에게 말한다. “정말 훌륭한 작은 일꾼이구나.” 어쩐지 손님들이 자신이 한 일들을 우스꽝스럽게 여기는 기분이 든다. 일 년이 지나도, 내가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친구들처럼 놀러도 가고 싶은 걸 꾹 참고 집에 돌아온 날, 엄마가 말했다. “가서 아기 좀 재울래?” 나는 처음으로 이 말을 밖으로 꺼냈다. “내가 왜 해야 해요?”

서로에게 상처가 남았지만 그 순간을 계기로 나는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깨달았다. 더 이상 강제로 시중만 드는 삶을 살고 싶지 않다는 걸. 표면적으로는 여전히 “기꺼이 돕는 사람”이겠지만 말이다. 이 단편을 읽는 동안 아무도 이름조차 불러주지 않는 인물에게 그만해도 돼, 너도 너의 시간을 가져야지, 라는 말이 몇 번이고 나왔다. 그 애가 열한 살에서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당시 실재했던 가정학책 ‘요리와 접대의 기술’ 말고 다른 책도 있다고 알려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가족은 소중하지만 가족을 돌보는 노동을 혼자서만 담당해서는 안 된다고 말해주는 사람도.

추석을 앞두고 음식 재료를 주문하고 집의 먼지를 털어내다 이 단편이 떠올랐다. 나도 가족들에게 왜 내가 해야 하냐고 묻고 싶어져서인가. 나이 든 부모를 떠올리면 그 질문 앞에서는 소설집 제목 ‘도덕적 혼란’과 같은 감정 상태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제는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어 다행이다. ‘요리와 접대의 기술’의 원제인 ‘The art of cooking and serving’에 Myself, ‘나 자신’을 붙여야 한다고. 그 말을 어린 화자에게 해주고도 싶었다. 다른 집에서는 가족들이 모일 때 누가 음식을 준비하고 차리고 치우는지 궁금하다. 그 집의 ‘작은 일꾼’이? 모두가 나서서 일을 나눈다면 명절이 서로를 돌보는 아트(Art)의 시간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조경란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