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문화] 네팔의 편린

20여년 전 혼자 여행하며 힐링
호숫가 ‘거리의 이발사도 추억
홍수 참사에 기후 변화 죄책감
환경 위해 생활 속 작은 실천 노력

콧등까지 오는 앞머리를 잘랐는데 또 삐뚜름하다. 자주 셀프커트하지만 실력이 좀체 늘지 않는다. 그 이발사가 생각났다.

2002년 나는 네팔 여행 중이었다. 살벌하게 장갑차와 무장 군인이 오가던 카트만두와는 달리 포카라는 여유로웠다. 히말라야 설산에서 녹아내린 물이 만든 페와호수가 혼자 떠나온 나의 두려움을 잔잔히 달래주었다. 그날 호숫가 한국인 식당에서 점심 먹고 숙소로 돌아가던 길. 한 노인이 길가에서 남자 머리를 자르고 있었다. 이발사의 날렵한 가위 놀림과 상황이 재밌었다.

김이듬 시인·서울대 강사

잠시 후 나는 이발사가 가리키는 평평한 바위에 앉아, 긴 머리칼을 한 손으로 말아쥐고 다른 손으로 가위를 만들어 귀밑에서 싹둑 자르는 시늉을 했다. 내 보디랭귀지에 이발사는 듬성듬성한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는 내 목덜미에 부드러운 연보라색 보자기를 둘러줬다. 가위질 소리가 경쾌했다. 바람이 보리수 아래로 불어왔고 진흙 묻은 맨발의 아이들과 동네 개들이 나를 둘러싸며 구경했다.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재빨리 다가와 이발사에게 속삭였다. 이발사는 다급하게 몇 가지 물품을 챙기며 나에게 뭐라고 말했지만 나는 그게 네팔어인지 소수민족 언어인지 알 수 없었다. 순식간에 무슨 일이지? 나는 쏜살같이 달아나는 그의 등에 대고 “나마스테, 나마스테!”라고 소리쳤다. 아! 이게 뭔가. 잘못 자른 나무젓가락처럼 내 머리칼 반쪽만 짧은 걸 확인한 건 노점 단속반인지 경찰인지 하는 이들이 내 앞을 지나쳐 간 이후였다. 그 황당한 사건을 모티프로 하여 쓴 시가 있다. 오래전에 발표한 건데, 부끄럽지만 여기 1연만 옮겨본다.

이럴 때 나도 신중해져서 가위 든 손이 주춤거린다

혼자 머리칼 자를 때마다 까만 손가락이 목덜미에 닿아 간지럽다

선불 받고 사라진 이발사

그 시커먼 늙은이는 길거리에서 내 머리를 자르다

경찰이 보이자 달아나버렸다

반만 잘라놓고 어쩌라고

기우뚱 앉아 한나절 기다렸으나

그 이발사, 아니 빼빼 마른 사기꾼, 아니 넝마주이, 숙맥

돌아오지 않는 호숫가 그날

- ‘페와 이발사’ 부분

이발사를 걱정하며 그리워하는 진심을 삐딱하고 투박하게 표현한 나. 요즘도 그가 가위 들고 호숫가를 서성이는지, 번듯한 이발소를 차렸을지, 살아 있긴 한지 나는 그곳으로 다시 떠나보려고 했다. 내 허벅지 피를 흠씬 빨았던 안나푸르나 거머리들과 산 중턱 학교 마당에서 과자를 나눠 먹으며 놀았던 아이들은 잘 있는지 종종 그리웠다. 다시 볼 수 있을까? 아무런 죄 없이 그저 거기 산다는 이유만으로 참변을 당한 이들을 애도하며 몇 주가 지나간다. 죄책감이 든다. 내가 네팔에서 살았던 닷새 동안 밤늦도록 켜놓았던 전등, 매일 하수구로 흘려보낸 비누 거품과 샴푸, 한국에서 가져갔던 일회용품 쓰레기들. 심지어 내가 일으킨 미세먼지와 수시로 내뿜은 한숨까지 마음에 걸린다.

마음으로 네팔을 아름답게 복원하고 싶지만 이번 홍수, 산사태의 충격이 기억의 잔해마저 쓸어갔다. 그해 난생처음 떠난 배낭여행은 끔찍이 꼬였고 허둥지둥했고 힘겨워서 일기는커녕 시 한두 편도 쓰지 못했다. 글로 기록하지 않은 경험은 떠내려갔다. 대신 사진을 많이 찍었다. 네팔 풍경과 현지 사람들, 히말라야 설산을 향해 가는 산악인의 행렬 등. 하지만 애지중지했던 수동 필름 카메라를 귀국 전날 분실했기에 어쩌면 나는 다시 갈 명분이 있다. 우선은 지구온난화 완화를 위한 소소한 실천부터 하고 있다. 포도 줄기는 음식쓰레기가 아닌 것도 알았다. 달라진 삶의 태도와 실천이 환경 파괴자라는 죄책감으로부터 우리를 구할 것이다.

 

김이듬 시인·서울대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