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명 모아 ‘성평등’ 외친 의성군…살처분 인력 모집엔 ‘여성 제외’ [이슈플러스]

공문에 ‘살처분 인력 모집 여성 제외’ 명시
문구 슬쩍 뺐지만…남성 비율 89%
공정한 순번제·보상 체계 마련 시급

경북 의성군의 공식 공문에 가축전염병에 따른 동물 살처분 인력 모집 시 ‘여성은 제외한다’는 문구를 적어 성차별 및 형평성 논란이 일고 있다. 비판이 거세지자 해당 부서는 부랴부랴 해당 문구를 삭제한 공문을 재발송 했지만 내부의 불만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모양새다.

경북 의성군이 공문의 ‘여성은 가급적 제외’ 문구를 삭제해 재발송했으나, 실제 인력 배정에는 변화가 없는 모순을 풍자한 이미지. 공직 사회의 면피성 행정을 신랄하게 드러낸다. 인공지능(AI) 플랫폼 ‘세계온(SEGYE.On)’으로 생성

17일 의성군 소속 공무원들의 말을 종합하면 최근 가축전염병 대응을 위해 전달된 정식 행정 공문의 ‘살처분 인력 제외자 기준’ 항목에 ‘여성은 가급적 제외’라는 문구가 명시돼 각 부서로 전달된 것으로 확인됐다.

 

군 소속의 한 공무원은 “공문에 성별 차별적인 문구가 떡하니 적혀 두 눈을 의심했다”며 “살처분은 남녀를 떠나 정신은 물론 육체적 고통이 극심한 업무인데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전담시키는 것은 성별로 업무를 갈라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실제로 공직사회에서 가축 살처분 현장은 상당한 육체적 노동 강도와 더불어 트라우마를 유발하는 고위험 업무로 분류된다. 그러나 정당한 법적 제약이나 현장 여건 등 타당한 사유 없이 성별만을 이유로 공식 문서에 제외 기준을 설정한 것은 양성평등기본법 및 국가인권위원회의 성차별 방지 권고 취지에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며 내부 반발이 잇따르자 담당 부서는 뒤늦게 사태 수습에 나섰다. 해당 부서는 논란이 된 ‘여성은 가급적 제외’라는 문구를 삭제한 뒤 수정된 공문을 각 부서에 재발송했다.

 

하지만 이 같은 후속 조치에 대해서도 면피성 대응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차별적 행정 절차에 대한 명확한 사과나 구체적인 개선대책 없이 문구만 빼고 넘어가려는 임기응변식 태도가 오히려 불신을 키웠다는 지적이다. 현장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공문 수정으로 문구는 지웠을지 몰라도 공공기관의 행정 수준이 구태에 머물러 있다는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그래도 인력 모집에 남성이 대부분이다”는 등 불만이 이어지고 있다.

경북 의성군이 성차별 문구 삭제 후 재발송한 살처분 인력 모집 공문에서 여성 지원자는 62명 중 7명(11.3%)에 불과해 면피성 대응 뒤에도 구조적 성별 편중이 남아 있음을 드러낸 이미지. 인공지능(AI) 플랫폼 ‘세계온(SEGYE.On)’으로 생성

실제로 공문을 재발송한 후 모집한 살처분 인력 62명 정원 가운데 여성 공무원은 7명(11.3%)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10명 중 9명이 남성 공무원인 셈이다. 논란이 된 공문 문구는 삭제됐지만 실제 인원 모집은 여전히 남성 공무원에게 압도적으로 편중된 것이다.

 

이러한 모순은 군의 대외 행보와 대비되며 비판의 목소리를 더하고 있다. 군은 지난 7일 의성문화회관에서 군민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모두의 성평등, 더 넓고 더 깊게’라는 주제로 양성평등주간 기념행사를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양성평등 증진과 여성 권익 향상에 기여한 유공자 표창 수여 및 성평등 문화 확산을 위한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그러나 겉으로는 대규모 행사를 열어 성평등 실천을 홍보하면서 내부적으로는 성별에 따른 업무 분담과 면피성 행정을 되풀이하는 모습에 공직사회 내 불만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담당부서 관계자는 “성차별적이라는 문제를 인식한 후 여성을 제외한다는 문구를 뺀 공문을 재발송했다”며 “추후에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좀 더 신경쓰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는 공공기관이 공식 문서에서 불분명한 기준으로 특정 성별을 우대하거나 제외하는 행위는 조직 내 갈등을 깊게 만들고 공공 행정의 신뢰를 훼손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한 법률 전문가는 “과거의 관행이나 현장 편의주의를 이유로 공식 문서에 성별 차별 문구를 적시하고 문제가 되자 해명 없이 문구만 수정해 재발송하는 것은 전형적인 면피성 행정”이라며 “남녀를 떠나 한 성별에게 당연한 희생을 강요하는 방식의 행정은 공직 사회 내 남녀 갈등을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문제를 단순한 문구 수정이나 성별 대립으로 몰아가기보다 남녀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공정한 순번제 도입과 실질적인 위험 수당·휴가 등 합리적 보상 체계를 마련해 조직 내 신뢰를 회복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