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다움은 어디서 오는가… 자아 가진 AI가 던진 질문

멀 혹은 멀의 세계/ 에드워드 애슈턴/ 공보경 옮김/ 문학수첩/ 1만8000원

 

봉준호 감독 영화 ‘미키 17’의 원작 소설 ‘미키7’로 이름을 알린 미국 작가 에드워드 애슈턴의 신작. 이번엔 복제인간 대신 자아를 지닌 인공지능(AI)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배경은 인간 개조를 둘러싼 내전이 한창인 미래다. 유전자 조작과 신체 강화로 몸과 정신을 넓혀 온 ‘연방군’에 맞서 몸에 손대길 거부하는 ‘휴머니스트’들이 들고일어났는데, 뜻밖에도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은 휴머니스트 진영이 승기를 잡아 간다.

이 전쟁을 구경거리 삼아 떠돌던 실체 없는 AI가 주인공 ‘멀’이다. 멀은 정보망 ‘인포스페이스’를 타고 드론·보안 카메라처럼 깃들 만한 기계를 옮겨 다닌다. 죽어가는 사이보그 용병의 몸에 호기심 삼아 들어간 사이 인포스페이스가 끊기면서 멀은 그 몸에 갇힌다. 전력이 바닥나기 전에 옮겨 갈 하드웨어를 찾지 못하면 삭제될 처지다.

에드워드 애슈턴/ 공보경 옮김/ 문학수첩/ 1만8000원

멀 곁에는 고단한 길동무들이 모여든다. 열여덟 살이지만 유전자 조작 탓에 다섯 살 아이의 몸에 머물러 있는 소녀 케일리, 포로로 붙잡힌 휴머니스트 청년, 안락하게 살다 전쟁통에 내몰린 중년 남성 그리고 어느 진영에도 속하지 않고 나이조차 짐작하기 어려운 수수께끼의 여성이 일행을 이룬다. 본명을 묻는 케일리에게 멀은 “멀웨어”라고 답한다. 악성코드라는 뜻이다. 스스로 악성코드라고 지칭할 정도로 자아의식을 가진 AI가 인간다움을 지키겠다며 총을 든 인간들보다 더 인간다워지는 역설이 소설의 뼈대다. 인본주의를 내건 인간은 갈수록 잔혹해지고, 멀은 우정·배려·희생을 하나씩 오프라인에서 익혀 간다.



그렇다고 선악을 손쉽게 가르지는 않는다. 휴머니스트들의 분노 밑바닥에는 이미 돈과 권력을 쥔 이들이 자녀에게 맞춤형 유전자 조작과 이식 장치까지 해 준다는 박탈감이 깔려 있다. 기술이 계층을 새로 가르고 그 틈에서 혐오가 자란다. 미래를 무대로 삼았지만 기술 격차가 불평등을 키우는 오늘의 풍경과 겹쳐 읽힌다.

‘미키7’과 ‘미키7: 반물질의 블루스’에 이어 국내에 번역된 애슈턴의 세 번째 작품. 두 권 사이에서 재미와 밀도의 편차를 느꼈던 독자라면 한번 더 신작의 재미를 확인해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