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이치 사나에(사진) 일본 총리는 17일 주요 각료 상당수를 유임하는 방향의 개각을 단행했다. 정권 안정성과 정책 연속성을 겉으로 내세웠지만, 자민당 총재선거 경쟁자들을 내각에 묶어둔 채 당내 기반을 강화해 내년 가을 ‘무투표 재선’을 통해 장기 집권을 하겠다는 노림수가 깔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교도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출범한 다카이치 2기 내각에서는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 가타야마 사쓰키 재무상, 아카자와 료세이 경제산업상 등이 유임됐다.
지난해 10월 당 총재선거에서 맞붙었던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상도 그대로 이름을 올렸다. 전날 당직 인사에서 유임된 고바야시 다카유키 당 정무조사회장을 포함해 경쟁자 4명 중 3명이 각료와 당 요직을 맡아 다카이치 총리와 계속 호흡을 맞추게 된 셈이다. 차기 경쟁 후보군 중에서는 하야시 요시마사 총무상 1명만 내각에서 빠지고 후지이 히사유키 중의원(하원) 의원으로 교체됐다.
요미우리신문은 “최근 다카이치 내각 지지율은 하락세이거나 횡보하고 있어 ‘새로움’을 내세워야 할 상황이었는데 ‘골격 유지’에 그쳤다”며 “내년 총재선거를 둘러싼 역학이 작동했다”고 지적했다. 닛폰뉴스네트워크 역시 “무투표로 재선되는 것을 염두에 둔 인사”라고 해설했다.
이날 개각에서는 옛 아베파의 입각도 눈에 띈다. 야나 가즈오 신임 농림수산상, 사사가와 히로요시 신임 환경상이 주인공이다. 야나 농림상은 2023년 정치자금 수입지출보고서에 1746만엔(약 1억5500만원)의 기재를 누락해 당직 정지 6개월 처분을 받은 바 있다. 자민당 파벌 비자금 스캔들에 연루된 인사가 각료로 임명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현지 매체들은 전했다.
전날 당직 인사와 이날 개각에서 옛 아베파와 당내 유일 현존 파벌인 아소파가 중용된 가운데 일본유신회에서도 처음으로 각료(나카쓰카 히로시 규제개혁상)가 배출됐다. ‘각외 협력’ 틀에서 벗어나 연립여당 간 협력 관계가 더욱 강화됐다는 관측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새 내각은 ‘책임 있는 선제적 재정 정책’ 방침을 제시하고, 강한 경제 실현과 번영을 가속화하는 정책을 추진할 것”이라며 “이를 위해 중요한 과제를 담당하는 장관들을 유임시켰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총재 선거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나카쓰카의 내각 합류에 대해서는 “자민·유신 연립 정권이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는 상징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