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유일 탈북청소년학교, 지역민 반발에 또 떠돌게 되나

님비에 발목 잡힌 ‘여명학교’

‘기피시설’ 낙인 2019년 신축 무산
강서 가양동에 정착부지 겨우 마련

주민 “시늉만 낸 1차 설명회 무효”
교육청 추가 설명회서 항의 빗발
교장 “아이들 품어달라” 무릎 꿇자
“우리도 살려달라” 반대측 맞불 무릎

북한이탈주민(탈북민)을 부모로 둔 북한배경청소년 대안학교인 여명학교 교사(校舍) 신축에 대한 2차 주민설명회가 열린 17일 오후 7시, 서울 강서구 여명학교 설명회 현장은 시작부터 격앙돼 있었다. 참석 주민 상당수가 ‘주민동의 없는 여명학교 건립 결사반대’란 문구가 담긴 손팻말을 들어올리며 “반대”를 외쳤다. 여명학교 인근 아파트 단지 일부 주민이 중심이 된 ‘여명학교 건립 반대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제대로 고지되지 않은 1차 설명회를 인정하지 않는다”며 신축을 추진 중인 서울시교육청 담당자에게 사과를 요구했다. ‘아이들을 위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비대위가 말하는 ‘아이’ 자리에 여명학교 학생들은 없는 듯했다.

 

부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20여년 간 이곳저곳 옮겨 다닌 여명학교가 어렵게 잡은 자체 시설 확보의 희망이 일부 주민의 강한 반대에 또다시 물거품이 될 위기에 직면했다. 1시간 30분 가량 진행된 설명회는 시종일관 ‘여명학교 결사반대’ 측의 항의와 고성이 이어지는 가운데 진행됐다.

“결사 반대” 1시간30분 고성만 오간 설명회 17일 서울 강서구 여명학교에서 열린 옛 염강초등학교 부지 활용 주민설명회에서 참석자들이 북한배경청소년 대안학교인 여명학교의 건립을 결사반대한다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비대위는 반대 이유로 사전 논의 부재와 절차적 정당성 부족을 꼽았다. ‘비대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소개한 남성은 “2023년 여명학교가 염강초 부지에 들어올 때 임시사용이라고 약속했고, 유아교육진흥원만 들어오기로 했다”며 “하루 전 설명회 일정을 공지한 것도 그렇고, 서울시내 다른 대체부지를 제대로 검토했는지도 의문”이라고 주장했다. 서울시교육청 담당자는 “설명회 공지가 법정 절차는 아니지만 미흡한 부분이 있었다”고 사과했지만, 비대위는 주민 의견수렴 과정과 절차 등을 강하게 문제 삼았다. 주민들은 “다 결정해 놓고 설명회로 의견 수렴을 하는 시늉만 하는 게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명학교 교사 설립에 찬성하는 주민이나 인근 학교인 세현고 교장이 의견을 전달하려 해도 “반대한다”, “듣기 싫다”, “주민 아니면 말 하지 말라”며 발언을 막았다. 설명회가 막무가내로 치닫자 조명숙 여명학교 교장이 무릎을 꿇었다. “제발 아이들을 품어달라”는 호소였다. 하지만 반대 측 주민들은 조 교장에게 “우리도 살려달라”고 맞서듯 무릎을 꿇었다. “왜 여명학교가 여기 오면 안 되냐”는 질문에는 “왜 꼭 여기로 와야하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비대위 단체대화방에는 강서구 가양동 일대에 임대주택과 특수학교 등 ‘기피 시설’이 과도하게 집중돼 있다는 주장이 다수 등장한다. 그중 하나로 대안학교인 여명학교가 지목됐다. 현재 폐교된 염강초등학교 건물을 빌려 쓰는 여명학교는 지난 7월 통일부, 서울시교육청, 현대자동차그룹 등과 업무협약을 맺고 현재 부지에 새 건물을 지어 2029년부터 운영을 이어갈 예정이다. 비대위 측은 여명학교 없이 유아교육진흥원만 들어오길 바라고 있다.

 

2004년 문을 연 여명학교는 교육청이 인가한 서울시 유일의 북한이탈주민 청소년 대안교육기관이다. 2010년 인가를 받은 뒤 서울 중구 남산 건물에 자리를 잡았다. 2019년 자체 학교 건물을 짓기 위해 은평구 부지 매입을 추진했지만 탈북민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이들의 자녀들에게까지 들이대는 주민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폐교된 염강초 건물의 임시 사용 허가를 20234년에 받아 운영해왔지만, 사용 기한이 2027년 2월까지여서 안정적인 거처를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여명학교를 둘러싼 논란은 최근 강서구 일대에서 이어지는 개발·시설 갈등과도 맞물려 있다. 정부는 8·13 주택 공급 대책에서 강서구 염창근린공원 훼손지를 서울 내 유일한 신규 공공택지로 발표하고 1000가구를 공급하기로 했다. 그러나 지난 11일 열린 주민설명회는 해당 부지에 지역 인프라 확충을 요구하는 주민 200여명의 반발로 무산된 바 있다. 이날 설명회에서도 기존 주민들을 위한 시설 확충 요구는 이어졌다. 22개월 아이를 키우는 젊은 세대라고 소개한 한 여성은 “여기 유치원 다녀야 되는 아이들 대비 유치원에서 수용할 수 있는 정원은 50%에 불과해 다른 구로 가고 있는 현실”이라며 ”여명학교는 다른데로 가도 되지 않느냐“고 항의했다. 북한배경학생이라 반대하는 게 아니라 강서구 아이들을 위한 시설이 우선돼야 한다는 논리다.

 

다만 주민들이 말하는 ‘강서구 아이’ 논의에 여명학교 104명의 학생은 포함되지 않았다. 여명학교 전교생 90%이상은 제3국 출생으로 주로 언어·문화적 차이로 정규 학교 적응에 어려움이 큰 아이들이 입학 대상이다. 상당수가 가족해체 경험에 따른 심리적 문제, 한부모가정 등 취약한 가족환경, 언어, 탈북민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선입견 등 학업과 일상생활에서의 어려움도 있다. 여명학교는 이런 사정의 북한배경청소년들에게 안정적인 생활 공간과 양질의 교육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설명회에서는 북한배경 청소년을 위한 대안교육기관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 반복되는 이전과 부지 갈등이 학생들의 교육과 정서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서울시교육청은 염강초 부지에 유아교육진흥원과 여명학교가 둘 다 입주하도록 한 데 대해 절차상 하자가 없고, 계속 추진하겠다는 입장이 분명하다. 부지 갈등 장기화가 학생들의 학습권과 정서 안정에 악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해 주민 설득을 이어가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교육계 관계자는 “여명학교는 인근 세현고와 MIT 과학캠프 등 지역사회 통합에 긍정적 영향을 주고받고 있고 대학 진학률도 높다”며 “기피시설로만 보는 건 어른들의 막연한 불안감에 가깝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