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클라이밍은 벽에 매달리는 순간부터 자신의 한계를 묻는 종목이다. 처음 마주한 루트를 읽고 가장 어려운 구간을 찾아야 한다. 팔에 쌓이는 피로를 견디면서 다음 홀드를 선택하고, 힘이 남아 있는지 판단해 한 번 더 손을 뻗어야 한다. 이도현(24·노스페이스·서울시청)에게 클라이밍이 매력적인 이유도 그 끝을 미리 알 수 없다는 데 있다. 지금도 자신의 한계를 “쉽게 정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런 그가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서 메달 사냥에 나선다.
이도현은 어렸을 때부터 리드에 대한 욕심과 애착이 컸다. 아버지와 함께 자신만의 클라이밍 스타일을 고민했고, 경기마다 다른 루트를 마주하며 자신에게 맞는 등반 방식을 만들어왔다. 그는 최선의 준비를 한 뒤 “경기에서 저만의 등반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은 이도현에게 부족함을 확인한 무대였다. 은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준비한 것을 모두 보여주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컸다.
이도현은 18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제가 준비한 것을 다 보여드리지 못한 게 가장 아쉬웠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시간이 흐르면서 은메달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졌다. 메달의 색보다 당시 자신의 실력을 냉정하게 평가하게 됐다. 그때의 자신은 부족했고, 더 강한 선수였다면 결과 역시 달라졌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항저우에서 확인한 약점은 이후 그가 채워야 할 과제가 됐다. 이도현은 당시를 자신의 “성장의 출발점”으로 짚었다.
그 뒤 세계선수권 리드에서 한국 남자 선수 최초로 금메달을 따냈고, 올해 아시아선수권에서는 볼더링 정상에 올랐다. 항저우 이후 여러 무대에서 경쟁력을 확인하면서 나고야 금메달에 도전할 자신감도 생겼다.
그렇다고 메달을 경기의 출발점으로 삼지는 않는다. 이도현은 “지금까지 해온 것들을 보면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메달을 생각하기보다는 제 몸의 상태와 눈앞에 있는 루트에 집중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경기 당일에는 결과보다 자신에게 주어진 벽과 몸의 상태를 먼저 살피겠다는 뜻이다.
루트를 읽을 때는 가장 먼저 어려운 구간을 찾고, 그 지점을 넘기 위해 필요한 움직임과 힘을 계산한다. 이후 팔에 쌓이는 부담을 살피면서 다음 동작으로 넘어갈지를 결정한다. 그는 “팔에 걸리는 부담이 제가 회복할 수 있는 정도라고 느껴지면 한 동작을 더 가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다”고 설명했다.
선수 생활에서 꼽는 강점은 꾸준함이다. 잘 풀리지 않은 경기뿐 아니라 우승한 경기에서도 복기를 거듭한다. 결과가 좋았다고 모든 것이 완벽했다고 여기지 않고 다음에 고칠 부분을 찾는다. 이도현은 “제 강점은 꾸준함과 끝없이 발전하고 싶은 마음”이라며 “압도적으로 강한 선수가 되고 싶고 제 발전 가능성에도 한계를 두고 싶지 않다”고 힘주어 말했다.
2024 파리 올림픽은 그 기준을 한 단계 높인 대회였다. 충분히 준비했다고 생각하고 나섰지만 세계 정상급 선수들과 맞붙으며 준비의 완성도를 다시 돌아보게 됐다. 이후에는 훈련량 자체보다 무엇을 위해 어떻게 훈련할 것인지에 더 많은 고민을 기울였다. 이도현은 “충분히 준비되어 있다고 생각했지만 세계적인 선수들을 보면서 완성도 높은 준비가 중요하다는 걸 느꼈다”며 “예전보다 저 자신에게 조금 더 엄격해진 것 같다”고 털어놨다.
웨이트트레이닝과 클라이밍 훈련을 늘리는 동시에 효율도 따졌다. 무작정 시간을 늘리기보다 자신에게 필요한 부분을 골라 훈련하고, 경기에서 힘을 배분하는 방법까지 익혔다.
항저우 이후 3년 동안 기술과 체력, 멘털도 달라졌다. 여러 번 실패하면서 부족한 부분을 확인했고, 그때마다 하나씩 채웠다. 이도현은 “기술과 체력, 멘털 모두 성장한 것 같다”고 말했다.
특정 선수를 라이벌로 정해놓지 않는 이유도 분명하다. 상대의 경기력은 자신의 선택으로 바꿀 수 없지만, 자신이 어떤 상태로 벽 앞에 설지는 결정할 수 있다. 그는 “다른 선수들이 얼마나 잘하는지는 제가 바꿀 수 없는 부분”이라며 “제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클라이밍의 미래를 묻자 이도현은 “한국 클라이밍은 이제 시작”이라며 “어린 선수들도 정말 잘하고 있고 훈련 환경도 예전보다 많이 좋아졌기 때문에 재능 있고 훌륭한 선수들이 더 많이 나올 것 같다”고 내다봤다.
후배들에게는 서둘러 하나의 답을 정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같은 루트에서도 선수마다 선택하는 동작이 다르기 때문이다. 여러 대회를 치르며 시행착오를 겪어야 자신만의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하나의 정답이 정해져 있는 스포츠가 아니기 때문에 많은 대회를 경험하면서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 발전해 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이도현에게 클라이밍은 이미 경기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어린 시절 시작한 운동은 오랜 시간을 거치며 그의 삶 한가운데 자리 잡았다. 그는 클라이밍을 “제 전부”라고 표현하며 “단순히 하나의 스포츠라는 의미를 넘어서는 것 같다”고 털어놨다.
좋아하는 운동에 몰두하며 새로운 것을 배워가는 과정은 그가 클라이밍을 계속하는 이유다. 아직 가보지 않은 루트와 만나고, 매번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내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낀다. 그는 “저는 이 운동을 정말 좋아한다”면서 “제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쉽게 정할 수 없다는 게 좋은 것 같고, 계속 발전하고 성장하고 있다는 게 너무 즐겁고 행복하다”고 웃었다.
금메달을 목에 건 순간 가장 먼저 떠올릴 사람은 하늘에 계신 친할머니다. 훈련 때문에 자주 찾아뵙지 못했던 미안함과 자신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던 마음이 남아 있다.
“할머니, 훈련하느라 자주 찾아뵙지 못해서 정말 죄송해요. 이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서 정말 열심히 했어요. 앞으로 더 좋은 모습 많이 보여드릴게요.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