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8시 40분 서울 도심 주요 업무지구. 출근길 직장인들의 손에는 약속이라도 한 듯 프랜차이즈 로고가 박힌 일회용 플라스틱 컵이 들려 있다. 점심 식사를 마친 직후에도 커피 전문점으로 향하는 줄은 끝없이 이어진다. 직장인들에게 커피는 단순한 기호식품을 넘어 하루 업무를 버텨내기 위한 ‘생존 수액’이다.
하지만 직장인들이 체감하는 가격 저항선은 이미 무너진 지 오래다.
2024년 한국소비자원 조사에 따르면 소비자가 생각하는 아메리카노 한 잔의 ‘적정 가격’은 평균 2635원이었지만, 주요 프랜차이즈의 실제 판매가는 4500~5000원에 달해 기대치보다 14~30% 이상 비쌌다. 응답자의 73.5%가 "커피전문점 판매 가격이 부담스럽다"고 토로했을 정도다. 출근길 한 잔, 식후 한 잔만 마셔도 하루 1만 원 안팎, 한 달(근무일 20일 기준)이면 18만~20만 원이 커피값으로 고스란히 빠져나간다.
서울 시내 기업에 재직 중인 30대 직장인 김 모(37) 씨 역시 매달 날아오는 카드 명세서에서 ‘카페/음료’ 항목만 20만 원이 찍히는 것을 보고 소비 패턴을 바꾸기로 결심했다. 김 씨가 선택한 대안은 거창한 홈카페 도구나 텀블러 세척의 번거로움 대신 가장 현실적인 ‘대용량 페트 커피 박스 쟁여두기’였다.
저가 커피도 하루 2잔이면 월 8만 원… 페트는 ‘1만 원대’로 종결
최근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1800~2000원대 아메리카노나 2000~3000원대 라떼를 파는 저가 커피 프랜차이즈가 대안으로 꼽힌다. 하지만 이 역시 계산기를 두드려보면 지출이 결코 적지 않다. 출근길과 점심 식후 하루 2잔을 마실 경우 한 달(20일 기준)에 최소 7만 2000원에서 많게는 10만 원 가까운 고정 지출이 발생한다.
김 씨의 전략은 이보다 조달 단가를 한 단계 더 낮추는 것이었다. 온라인 오픈마켓에서 470ml 대용량 페트 커피를 24개입 한 박스 기준 2만 2350원에 구매해 책상 밑에 비축해 뒀다. 1병당 가격은 단돈 931원꼴로, 소비자가 생각하는 아메리카노 적정 가격(2635원)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대용량(470ml)이라 하루 한 병으로 온종일 마실 수 있어, 한 달(20일) 커피 비용은 1만 8620원이다.
저가 커피 2잔(월 약 8만 원)과 비교해도 매달 약 6만 원, 연간으로는 70만 원 이상을 추가로 아낄 수 있는 셈이다. 대형 프랜차이즈(월 18만~20만 원)와 비교하면 연간 절감액은 210만 원을 훌쩍 넘긴다.
뚜껑이 달린 페트병 커피는 실용성 면에서도 만족도가 높았다. 얼음이 녹아 밍밍해지거나 회의 도중 쏟을 염려 없이 종일 뚜껑을 닫아두고 마실 수 있어 업무 집중도 쉬웠다. 무엇보다 식후 동료들을 따라 무의식적으로 카페 키오스크에 카드를 긁으러 가던 발걸음이 자연스럽게 멈췄다.
월 18만 원 통장 방어… “무의식적인 결제 관성을 깼다”
김 씨는 “커피값 절약의 본질은 무조건 참는 고통이 아니라, 출근길과 점심시간마다 관성처럼 카드를 긁던 ‘무의식적 결제 습관’을 끊어내는 데 있다”며 “저가 커피조차 쌓이면 부담스러운 고물가 시대에 책상 밑 커피 한 박스로 지출 구멍을 완벽히 메웠다”고 말했다.
월급 빼고 다 오르는 고물가 시대, 책상 한구석을 채운 대용량 페트 커피 한 병이 직장인들의 얇아진 지갑을 지키는 든든한 방패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