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0년 전 어머니가 딸들에게 남긴 당부…영양 두들마을 ‘음식 디미방’ [여행+]

350여 년 전 조리서 ‘음식디미방’ 상차림, 그 상을 받는다
누마루 기둥 사이로 내려다본 장계향문화체험교육원 한옥 마당. 사진=한국관광공사 제공

유리 진열장 안에 놋쟁반이 줄지어 있다. 접시마다 이름표가 서 있는데 적힌 말이 낯설다. ‘가제육’·‘석류탕’ 등 지금은 좀처럼 듣기 어려운 말들이다.

 

경북 영양군 석보면 두들마을에 있는 장계향문화체험교육원의 전시실 풍경이다. 여기 놓인 음식은 350여 년 전 이 마을에 살던 여성이 한글로 쓴 조리서 ‘음식디미방’에서 나왔다.

 

전시실에 놓인 옛 책과 글씨첩. 표지에 ‘정부인 안동장씨 실기(貞夫人安東張氏實記)’라고 적혀 있다. 사진=한국관광공사 제공

◆ “눈 어두운데 간신히 썼으니” 350년 전 어머니가 딸들에게 남긴 당부

 

책을 쓴 이는 장계향(1598∼1680)이다. 그는 일흔을 넘긴 나이에 붓을 들어 이 책을 쓴 것으로 전해진다.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에 실린 이 책의 마지막 대목은 조리법이 아니라 당부다.

 

책 마지막에는 “이 책을 이리 눈 어두운데 간신히 썼으니 이 뜻을 알아 이대로 시행하고 딸자식들은 각각 베껴가되 이 책을 가져갈 생각일랑 생심 말며 부디 상치 말게 간수하여 수이 떠러 버리지 말라”는 글이 담겼다.

 

딸들에게는 책을 가져갈 생각은 말고 각자 베껴 가라고 했다. 원본은 상하지 않게 간수하라는 말도 덧붙였다. 눈이 어두워 글씨 쓰기가 힘들었다는 사정까지 그대로 적어 두었다.

 

조리법을 하나씩 늘어놓은 교육원 전시실 진열장. 사진=한국관광공사 제공

◆ 146가지 가운데 54가지가 술

 

책의 겉장에는 한자로 ‘규곤시의방(閨壼是議方)’이라고 적혀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향토문화전자대전에 따르면 후손이 격식을 갖추려 뒤에 붙인 표제로 본이라고 전해졌다.

 

정작 본문 첫머리에 적힌 이름은 한글 ‘음식디미방’이다. ‘디미’는 맛을 안다는 뜻으로, 풀면 ‘음식 맛을 아는 방법’이 된다.

 

담긴 조리법은 모두 146항목이다. 국수와 떡을 다룬 면병류가 18가지, 생선과 고기를 다룬 어육류가 74가지, 술과 식초를 빚는 법이 54가지다.

 

특히 술과 식초가 전체의 37%를 차지하는데, 조리서의 3분의 1이 넘는 분량이 술과 식초를 빚는 법이다.

 

이 필사본은 지금 경북대학교도서관이 보관하고 있다.

 

‘여중군자 장계향’이라는 제목이 붙은 전시실 소개 자료와 연보. 사진=한국관광공사 제공

◆ 300년 넘게 ‘안동 장씨’…이름은 신주 함에서 나왔다

 

정작 이 책을 쓴 사람의 이름은 오래 비어 있었다. 세상은 그를 ‘정부인 안동 장씨’로만 불렀다.

 

이름이 돌아온 것은 2012년쯤 일이다. 학술지 실천민속학연구에 실린 배영동의 논문은 불천위 신주의 함 속 기록에서 ‘장계향(張桂香)’이라는 이름을 찾았다고 밝혔다.

 

신주 함은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문건이어서 실명을 적을 수 있었다는 것이 이 논문의 해석이다.

 

영양군 자료에 따르면 그는 1598년 안동 금계리에서 태어났다. 열 살 무렵 ‘소학’과 ‘십구사략’을 깨쳤고, 열세 살에 시를 지었다.

 

당대 서예가 정윤목은 그가 쓴 초서를 두고 “기풍과 필체가 호기로워 우리나라 사람의 글씨와는 다르다”고 평했다.

 

그는 열아홉이던 1616년 재령 이씨 이시명과 혼인했다. 남편에게는 이미 1남 1녀가 있었다.

 

전처 소생을 포함해 10남 2녀를 길렀고, 그 가운데 이휘일·이현일·이숭일 삼형제가 영남을 대표하는 학자가 됐다. ‘여중군자’라는 말은 뒷사람들이 붙인 이름이다.

 

두들마을 언덕 위에 선 교육원 한옥 건물. 사진=한국관광공사 제공

◆ 남편이 1640년 들어온 언덕…두들마을

 

두들마을은 이 집안이 만든 마을이다. 영양군에 따르면 남편 이시명이 1640년 병자호란의 국치를 부끄러워하며 들어와 터를 닦았다. 조선시대에 광제원이 있던 자리라 ‘원두들’ ‘원리’로 불렸다.

 

지금 마을에는 석계고택과 석천서당이 남아 있고, 음식디미방 체험관과 정부인 장씨 유적비, 예절관, 전시관이 함께 있다.

 

광산문학연구소와 북카페 ‘두들책사랑’도 마을 안에 있는데, 언덕을 따라 걸으면 한 바퀴가 이어진다.

 

‘가제육’ ‘석류탕’ 등 조리법 이름을 붙여 놓은 전시실 음식 모형. 사진=한국관광공사 제공

◆ 석류탕과 동아누르미…지금 상에 오르는 것들

 

교육원은 이 조리법대로 차린 상을 예약제로 낸다. 상차림은 두 가지다.

 

소부상은 도토리죽으로 시작해 잡채와 연계찜, 어전법, 동아누르미, 가제육, 빈자법, 연근적이 오른다. 밥과 국, 찌개와 반찬이 따로 붙고 후식은 화전 또는 석이편에 오미자차다. 값은 3만3000원.

 

정부인상은 도토리죽과 감향주로 열고 석류탕, 섭산삼, 잡채, 수증계, 어만두, 동아누르미, 가제육, 빈자법, 연근적이 나온다. 5만5000원이다.

 

이름만 보아서는 무엇이 나올지 짐작이 잘 가지 않지만 전시실에는 음식마다 이름표가 세워져 있고 그 아래 조리법과 재료가 함께 적혀 있어, 상을 받기 전에 먼저 읽어 볼 수 있다.

 

한옥 여러 채가 마당을 둘러싼 교육원. 사진=한국관광공사 제공

◆ 혼자보다 가족과 함께

 

이 상은 혼자 가서 받을 수 없다. 식사 체험은 1회 최소 8명부터 받고 최대 60명까지다. 또 2일 전 유선 예약만 가능하다. 직접 만들어 보는 조리 체험은 최소 3일 전에 예약해야 한다.

 

한옥에서 묵을 수도 있다. 15개 객실이 있고 2인실, 3인실, 4인실이 있다. 입실은 오후 3시, 퇴실은 오전 10시다. 전시관 관람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연중무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