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여름 전 세계는 이례적인 재해들로 동시에 신음했다. 유럽은 40도 넘는 극심한 폭염에 시달렸고 한국에서는 기록적인 폭우로 도로가 강으로 변했으며, 네팔에서는 해발 5000m의 산이 통째로 무너져 내렸다. 세계 각지에서 벌어진 이 재난 뒤에는 통제 불능에 빠진 이상 기후가 있다.
◆ 뚜껑 닫힌 유럽, 44도 ‘열돔’에 갇히다
유럽 대륙은 지난 여름 ‘열돔(Heat Dome)’으로 인한 기록적인 폭염에 갇혔다. 스페인 일부 지역은 기온이 44도까지 치솟으며 50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프랑스도 41도를 웃도는 폭염 탓에 1300여개 학교가 문을 닫고 열차 운행이 중단됐다.
열돔은 상공에 머무는 강한 고기압이 지표면의 열기를 뚜껑처럼 가두는 현상이다. 고기압 중심부의 하강 기류가 공기를 압축하며 온도를 끌어올리고, 구름 형성을 막아 지표면에 태양 복사 에너지가 직접 닿도록 만든다. 이번 폭염에는 상공 제트기류가 그리스 문자 오메가(Ω) 형태로 솟구치며 고기압을 한자리에 묶어둔 ‘오메가 블록’이 결정타로 작용했다.
문제는 온난화가 열돔의 위력과 체류 시간, 강도를 키워 이런 자연 현상이 ‘괴물’로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2024년 국제학술지 ‘커뮤니케이션스 지구와 환경’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북미 북서부 태평양 연안의 열돔이 기후변화로 인해 범위가 34% 더 넓어지고 지속 기간도 59% 길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 1시간에 124mm…거제 덮친 ‘물폭탄’
유럽이 열기로 타들어 가는 동안 한반도는 6월의 선선한 날씨부터 7월 폭염, 8월 남부 지방을 덮친 폭우까지 다사다난한 여름을 지냈다. 특히 8월 중순 경남 거제와 통영에 내린 극한 호우는 순식간에 삶의 터전을 집어삼켰다.
광복절 연휴부터 18일까지 거제에 쏟아진 누적 강수량은 968.1㎜이었다. 8월 16일 밤부터 17일 새벽 사이에는 시간당 124.5㎜라는 물폭탄이 떨어졌다. 1972년 관측 이래 1시간 기준 최다 강수량이었다.
도로가 강물처럼 변해 차량이 급물살에 떠내려갔고, 옥포동의 한 아파트는 산사태로 1층 일부가 매몰돼 1명이 숨지고 2명이 다쳤다. 인근 통영 역시 시간당 97.4㎜의 비가 내려 1986년 관측 이래 최고치를 경신했다. 반면 내륙 지역인 경남 거창은 강수량이 49.6㎜에 그치는 등 극심한 국지성 편차를 보였다.
이런 현상은 저기압 정체와 풍부한 수증기, 지형 조건 등 복합적인 요인이 맞물린 결과였다. 기상청은 한반도 북동쪽의 강한 고기압이 저기압의 이동을 막은 점을 가장 큰 원인으로 꼽았다. 거제의 해안선과 산 지형도 비구름을 키웠다. 해안선을 따라 바람 방향이 바뀌며 ‘중규모 저기압’이 생겨났고, 해발 500m가 넘는 산에 부딪히며 비구름대가 더욱 발달했다. 여기에 북태평양고기압의 하층제트를 타고 유입된 다량의 고온다습한 수증기가 대기 중 수분 포화도를 높이면서 집중호우로 이어졌다.
◆ 5000m 고지의 붕괴, 온난화가 무너뜨린 영구동토
비슷한 시기 아시아의 히말라야 산자락에서는 상상을 초월한 비극이 벌어졌다.
지난달 26일 네팔-중국 접경지인 해발 5150m 랑탕 리룽 산 북사면에서 거대한 암석과 빙하 덩어리가 쏟아져 내려왔다. 이 붕괴로 규모 5.2 지진에 해당하는 에너지가 방출됐고 암석과 융해수가 뒤섞여 평균 시속 188㎞의 대규모 급속 토석류를 형성했다. 불과 15분 만에 국경 시설과 강변 마을들이 매몰됐으며 3050만㎥에 달하는 막대한 토사가 농경지와 주거지, 수력발전소를 덮쳤다. 네팔 재난관리청에 따르면 9월 16일 기준 1403명이 사망하고 6150명이 실종되는 등 막대한 인명 피해가 집계됐다.
세계기상특성(WWA) 연구진은 지난 17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이번 재해가 특정한 단일 기상 이변 때문이 아닌, 장기간 이어진 기후변화가 고산지대의 안정성을 무너뜨리며 터진 복합 작용이라고 봤다.
보고서에 따르면 온난화로 히말라야 지역의 기온이 오르며 빙하가 매년 0.5m 이상씩 얇아졌고, 영구동토층이 녹아내리며 암벽 틈새를 메우던 얼음의 결합력이 급격히 약화됐다.
고지대에서 눈보다 비가 내리는 비율이 증가한 점, 지난해 말의 폭설로 녹아내린 물이 불어난 점도 영향을 줬다. 대홍수 직전인 7~8월 해당 지역은 관측 사상 가장 뜨거운 달을 기록하기도 했다. 2015년 네팔에서 발생한 규모 7.8의 지진도 기반암을 약화시켰을 가능성이 있지만, 구체적인 영향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WWA 연구진은 기후변화가 붕괴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기보다는 수십 년간 지반 구조를 취약하게 만들며 재해의 발생 가능성과 심각성을 키운 배경이라고 평가했다.
◆ 일상이 된 기후위기…더 짙어지는 경고
유럽의 열돔, 거제의 폭우, 네팔 대홍수는 제각기 다른 양상으로 나타났지만 이면에는 통제력을 잃은 전 지구적 기후 변동이 자리잡고 있다.
각 재난을 기후변화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으나 기상 이변의 강도가 거세지게 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문제는 이 같은 기후 변동의 위험이 더욱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세계기상기구(WMO)는 최근 엘니뇨·라니냐 전망을 통해 엘니뇨가 올해 말 정점을 찍고 내년 초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았다.
엘니뇨는 적도 동태평양의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0.5도 이상 높은 상태가 수개월 이상 지속되는 현상이다. 다만 지난 7월 기준 이미 평년보다 2도 이상 높은 ‘슈퍼 엘니뇨’를 뛰어넘는 수준이어서 이번 엘니뇨가 역대 최강급에 달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WMO는 “매우 강한 엘니뇨가 세계 곳곳의 기온과 강수 양상에 두드러진 변동을 일으킬 여지를 키울 것”이라고 경고했다.
엘니뇨는 온난화를 부추기며, 엘니뇨 현상이 심해지면 열대성 폭풍의 발생 가능성이 커지는 등 기상 변동성이 한층 증폭된다. 올 한 해 각 대륙을 휩쓸고 간 기상 이변들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앞으로 더 복합적이고 예측하기 힘든 형태로 반복될 수 있음을 예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