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지난 2월 전쟁 발발 이후 최대 규모의 관제 시위가 열렸다. 미국의 해상 봉쇄와 촘촘한 경제 제재로 최악의 경제난이 이어지자 국민을 결집하고 국가적 통합을 강조하는 한편, 잠재적인 내부 소요에 대비해 시민들을 동원·조직하려는 의도가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18일(현지시간) 이란 관영 매체와 외신에 따르면 이날 테헤란 시내에서는 ‘잔파다’(이란을 위한 희생)로 명명된 군사 퍼레이드 형식의 반미 관제 시위가 열렸다. 국가 방위 및 군사훈련 자원자들은 전투복 차림으로 깃발을 들고 테헤란 도심을 행진했다. 여성 참가자들은 히잡을 착용한 채 총을 손에 들었다.
일부 참가자들은 미국과 이스라엘 국기를 짓밟았고, 곳곳에서 “미국에 죽음을”, “이스라엘에 죽음을”이라는 구호가 터져 나왔다. 이란 국영 매체들은 이날 오전 30만 명 이상이 거리로 나왔다고 추산했다.
이들 자원병은 이란의 정예 군사조직인 혁명수비대(IRGC)와 산하 전위조직인 바시즈 민병대에 더해 추가적인 안보 전력 역할을 맡게 된다고 이란 국영 매체는 설명했다. 하산 하산자데 테헤란 지역 혁명수비대 사령관은 국영방송을 통해 “60만 명 이상이 참여를 신청했으며, 100만 명 이상이 훈련에 참여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호세인 타에브 신임 바시즈 민병대 사령관은 시위 시작 연설에서 자원병들이 전면적인 방어를 준비할 것이라며 조만간 다른 도시에서도 유사한 행사가 열릴 것이라고 밝혔다.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과 군 지휘관, 고위 관리들이 행진을 지켜보는 가운데 타에브 사령관은 “신규 훈련병들이 이란의 적들에게 악몽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타에브의 복귀는 이란 정권이 대외전쟁뿐 아니라 국내 불안에도 대비하고 있다는 정황으로도 풀이된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17일 타에브의 바시즈 사령관 복귀를 두고 이란의 전직 개혁파 관료가 국내 소요 재발에 대한 정권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신호로 평가했다고 보도했다. 타에브는 과거 이란에서 발생한 대규모 반정부 시위 진압에 관여한 인물이다. 미국 전쟁연구소(ISW) 역시 당시 타에브의 기용이 경제적 압박이 커지는 상황에서 이란 정권이 잠재적인 국내 소요를 예상하고 있음을 반영할 수 있다고 지난달 17일 분석했다.
남편과 어린 아기와 함께 시위에 참석한 마르지에 아파기(24)는 “우리 이란인들은 조국을 향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위협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에게 말하기 위해 이 자리에 나왔다”며 “역사상 그 누구도 이란을 침략해 머물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란 정부는 이날 시위에서 호르무즈해협에서 선박을 공격하는 데 사용된 드론과 대공포 등을 전시하며 무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이번 행사는 대외적으로는 미국과 이스라엘에 맞선 국민적 결집을 과시하면서 내부적으로는 전쟁과 경제난 장기화에 따른 사회 불안을 관리하려는 성격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시민들을 단순히 집회에 참여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무기와 군사훈련을 제공하고 추가적인 안보 전력으로 조직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향후 반정부 시위에 대한 대비 성격도 주목된다.
전쟁 발발 직전인 지난 1월 이란에서는 경제난으로 촉발된 대규모 전국적 반정부 시위가 발생했다. 당시 시위는 지난해 12월28일 시작돼 올해 1월 정점에 달했다. 미국에 기반을 둔 인권단체 HRANA는 지난 1월17일 기준 시위 관련 사망자 3090명을 확인했다고 밝혔으며, 이 가운데 2885명이 시위 참가자라고 집계했다.